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충권 Oct 11. 2024

일 년에 한두 번 써먹으려고 안전관리자 둔다.





오후 세시쯤에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상명복지관인데요, 어디서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복지관 전역에 전기가 나갔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아, 그래요?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상명복지관에 마지막으로 들르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가기 직전에 들른 곳이 ㈜금성이다. 금성에 도착하기 5분전이니까, 급히 가면 20분이면 갈 수 있겠다. 금성에서 급한 볼일만 보고 복지관으로 달려갔다. 


  복지관 전기실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반가운 얼굴도 한 사람 있다. 이대엽과장이다. 소위 우리 안전관리 팀에서 박사로 통하는 사람이다. 실무와 컴퓨터에 능해서, 처음 들어간 내가 가장 많이 물어보는 사람이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복지관 관계자들은 다가와 먼저 이야기 한다.

  “부장님,  갑자기 ‘펑’하더니 전기가 다 나갔어요. 우리집, 요양원, 전문요양원 모두 다요.”

  “그래요? 한번 볼게요.”

나는 한번 본다고는 했지만, 사실 어디를 어떻게 봐야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고 사장님은 이과장을 나보다 먼저 보낸 것이다. 내가 여기 안전관리자라고 사람들은 날 의지하지만, 난 이과장을 의지한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정전이 된 것은 처음 본다. 이과장에게 물었다.

  “아니, 과장님이 어떻게 나보다 먼저 와 있어요? 고마워요.”

  “난 여기 한번도 안 와 봤어요. 전기 설치가 어떻게 됐는지 하나도 몰라요. 그런데 사장님이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아, 그랬군요. 어쨌든 나 혼자였으면 헤맬 텐데, 과장님이 있어서 든든해요.”

사고 경위를 물었다. 어떻게 해결할 건가하는 의문까지 담고 길게 물었다.

  “그런데,... 정전은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볼 때는 ASS에 GR이 떴었어요. 그래서 한전 COS가 떨어졌어요.”

GR, Ground라는 말이다. 땅으로 누전이 되어서 한전의 책임분계점에 달려 있는 COS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COS, Cut Out Switch, 전기가 끊기면 퓨즈가 튀어 나오는 스위치다. 지금도 굵은 장맛비가 뚝뚝 떨어지는데, 비 때문에 누전이 심해 떨어졌다는 말이다. 


  한전에 연락을 먼저 했는지, 조금 있으니까 한전 트럭이 도착했다. 한전책임분계점은 100m 정도 떨어진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전신주에 달여 있다. 한전직원이 우산도 바치지 않고 올려다 본다.

  “아니, COS가 하나도 아니고 세 개가 다 떨어졌어요. 문제가 심각해요. 보통은 작은 고장이라면 하나가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세 개가 다 떨어졌어요. 안전관리자님, 전부 다 체크하고 이상이 없으면 연락을 주세요. 우리는 못 올려요.”

  “예, 알았어요. 점검할게요. 점검 마치면 연락을 다시 할게요.”

대답은 내가 했다. 내가 여기 안전관리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뭘 어떻게 점검해야할지 아무 것도 모른다. 그걸 사장님이 알고 박사인 이과장을 먼저 보내 준 것이다. 평생 40년 전기 일을 했고, 여기서 안전관리를 한지도 1년이 넘었잖은가? 나는 이과장이 어떻게 하나 지켜 볼 심산이다.

  “아이고, 이걸 다 체크하려면 2박3일은 걸리겠네....”

하고 전기실로 왔다.


  점검이라, 내가 아는 한 우선 저압을 내리는 것이다. 내릴 때는 작은 것부터 내리고, 이따가 한전에서 COS를 투입하면, 올릴 때는 고압부터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압 판넬의 차단기를 모두 내렸다. 내리기 전에, 이따가 올릴 때 헷갈리지 않으려고, 사진을 먼저 찍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과장이 하는 것을 보았다. 고압에 기기들은 점검을 할 때 육안점검이 전부지, 손을 대서 내리거나 조작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이과장은 ASS를 빙 돌아가면서 살펴본다. MOF를 짚고 이쪽저쪽을 넘어 본다. TR 손을 얹고 고압과 저압을 쓰다듬어 본다. 다시 맨 위에 있는 ASS에 와서 콘트롤러를 보더니 말한다.

  “아까 여기 GR에 불이 들어왔었거든요. 지금은 불이 안 들어와요. 지락이 됐다가 비가 그치니까 지락이 해결 된 것 같아요.”

  “그러면 문제가 해결이 된 겁니까?”

  “예, 저절로 됐어요. 비가 그치니까 저절로 됐어요. 한전을 다시 불러서 전기 투입을 해 봅시다.”

이번에는 내가 한전에 전화를 했다. 내가 안전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점검 상황을 지켜보는 복지관 관계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해결 된 거예요?”

  “그렇답니다. 우선 저압을 다 내려놓고 전기를 투입할 겁니다. 이상이 없으면 전기는 금방 들어 올 겁니다.”

  “지금 할머니들이 엄청 불편해해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에어컨도 못 켜고, 선풍기도 못 돌리잖아요. 여기는 전기 나가면 물도 안 나와요. 지하수를 써서요.”


  한전에서 금방 다시 왔다. 한전 책임분계점에 COS를 올리려면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라가며 바가지를 올려야 한다. COS를 교체하려고 봤더니 이번에는 아까 터질 때 Grip부분이 벌어졌다고 여기는 직결을 한단다. 내가 투입에 대한 확인서를 써 주고, 나중에 직결한 것을 갈 때 다시한번 와 줄 것을 당부받고는 직결을 하라고 했다. 


  한전에서 전기를 투입하니까 우리 전기의 ASS 1차까지는 전기가 들어 온 셈이다. ASS, 자동고장구분개폐기(Auto Select Switch)다. 보통 수용가 쪽에서 고장이 나면 자동으로 개방이 되어서 한전의 COS까지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데, 이번의 고장은 커서 ASS를 그대로 개방을 한 후에 한전의 COS까지 떨어지게 한 모양이다. 이제 ASS의 Controller에 있는 GR에 불이 나갔으니 지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전기를 제대로 투입을 하자는 것이다.

  “부장님, VCB를 올려 보세요. 이제는 될 겁니다.”

  “그래요? 올려 봐요? 알았어요.”

내 구역이니까, 또 내가 올려야 한다.


  VCB, Vacuum Circuit Break, 진공차단기다. 저압에서 고장이 난 것을 고압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하고, 고압에서 고장이 났으면 저압으로 내려가 기기를 파손하는 것을 예방하는 장치다. 전기가 다시 연결되는 곳을 진공상태로 만들어서 전기를 투입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를 소호하는 장치다. 저압이든 고압이든 고장이 났으니 지금은 차단된 상태이다. 우선 판넬 위벽에 붙어 있는 Pull Turn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앞으로 당겨서 작동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것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 단계가 VCB 수동으로 놓고 VCB 장치에 붙은 On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이것도 두 번은 연거푸 해도 전기가 투입되지 않는다. 

  “왜 안 돼지? 가만 보자. 과장님 여기 PF가 나갔네. 퓨즈의 아래 빨간 뚜껑이 떨어져 나갔어요.”

이과장도 그때서야 파워 퓨즈가 나간 걸 알았다. PF, Power Fuse, 내부에서 문제가 있어서 전기 사고가 나면 밖으로 사고가 확산되지 않게 하는 퓨즈다. 이것도 안전장치의 하나다. 


  전기 안전장치는 여러 단계로 설치가 되어 있다. 우선 저압에 분전반에 ELB가 있다. Earth Liquid Breaker로 누전차단기라고 부른다. 그 위에 MCCB, Molded Case Circuit Breaker, 배선용차단기다. 배선용 차단기를 모두 모은 저압의 가장 위에 ACB가 있다. 여기까지가 저압니다. 고압으로 가서는 VCB가 있다. 그 위에 PF가 있고, 그 위에 ASS가 있다. 여기까지가 수용가의 차단기다. 그래도 사고여파가 밖으로 미칠까봐 한전에서는 COS를 전주에 달아 다른 전기선로에 사고가 확산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한전에서 전기를 다시 받았으니 ASS를 투입하고, 다음 차단기인 VCB를 작동시켰는데 되지 않자, PF가 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PF를 갈았다. 둘이서 몽키를 들고, 리드봉을 빼서, 퓨즈를 빼고 홀드를 부착해서 다시 끼웠다. PF는 하나가 터져도 세 개를 다 갈아야 한다. 하나가 끊어질 동안 다른 두 개도 충격을 입어서 이미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흔히 PF는 전기 판넬에 미리 비치가 되어 있다. 지금처럼 불시에 나갈 수 있고, 값이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나 혼자 했다가는 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둘이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PF, Power Fuse를 갈아 끼고 ASS를 투입했더니, 이번에는 한전 계량기까지 전기가 들어온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계량기에 아래에 붙은 ‘변성기부 전력량계용 시험단자대’에 파란 불이 들어와 있고, 빨간불이 깜박이면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 변성기판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p1, p2, p3에 L1, L2, L3의 계기용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표시다. 그런데 경고음이 울린다는 것은 필시 무슨 문제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MOF야 수용가의 것이지만, 여기에 연결된 계량기와 그 아래 붙은 변성기판은 한전의 소유다. 한전소유에서 경고음이 울리니 나는 한전에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장님, 이건 한전 소유인데 한전에 연락을 해 볼게요. 왜 경고음이 울리는지....”

  “한전에 연락하지 마세요. 한전은 스위치 올리고 내리는 것 밖에 더 합니까? 내가 연락해 볼게요.”

어디로 전화를 한다. 우리 점검부에 부장 같지는 않다. 몇 마디 물어 보더니, 별거 아니란다.

  “부장님, 별거 아니랍니다. 그냥 VCB 스위치 올려 봐요.”

  “올려요? 경고음이 울리는데....?”

  “올려 봐요.”

PF를 갈았으니, 이번에는 VCB를 올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과장이 올려 보자는데 달리 대안이 없었다. 


  “VCB 투입.”

  “투입”

한전에서 투입을 할 때, 위에 바가지를 탄 사람과 아래에서 보조하는 사람이 서로 소리를 지르듯이, 우리도 둘이 있는 이상 투입할 때 가까이 있지 말고 준비가 다 됐다는 신호로 서로 소리를 질렀다. 풀턴 스위치를 작동했다. 전기가 투입이 되었다. 3초가 흘렀을까, 웬걸 다시 멀리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고 전기가 나갔다. 길을 찾을 때 헤매던 원점으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조금은 두렵다. 


  이거 큰일이다. 처음 상태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어디가 터졌을까? ‘펑’ 소리는 났어도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어디 연기가 나는 것도 없다. 복지관 전체는 다시 전기가 나갔다. 

  “부장님, 사장님한테 전화해 보세요. 우리 힘으로는 안 된다고 전화 하세요.”

사장님은 불렀더니, 어디까지 점검을 했느냐고 묻는다. 이과장이 안다고 이 과장을 바꾸어 주었다. 이과장도 뭐라고 답변을 한다. 그 사이 VCB를 투입하기 전에 이과장과 통화를 한 사람인지, 공사부장이 도착했다. 공사부장도 삐쭘거리며 판넬을 돌기만 했지, 뭘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있지 않아서 사장님이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경차로, 씨에스전기 로고가 붙은 법인차를 타고 왔다. 거기에는 사장님의 장비가 잔뜩 들어 있다. 

  “지금 다시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한전책임분계점의 COS는 멀쩡합니다. 그래서 우리측 ASS 1차까지는 전기가 들어옵니다. ASS 2차는 개방을 했고요. 여기 한전 계량기 하단의 시험단자대에서 가장 오른쪽에 파란불이 들어왔었습니다. 파란불 바로 옆에 빨간 불이 깜빡이면서 경고음이 울렸고요. 그 상태에서 VCB를 올렸더니 다시 펑하고 터졌습니다.”

  “여기 단자대 끝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읽어 보세요.”

  “그래요? 읽어 봐요? 잘 안 보이는데....”

휴대전화를 켜서 사진을 찍어 확대를 해 보았다. 그제야 보인다. 거기에 글씨가 있는지도 몰랐다.

  “‘고장표시등’이거, 빨간 불은 ‘경고’입니다.”

  “이 불 하부에 어느 기기엔가 고장이 났다는 말입니다. 어디까지 점검했어요?”

  “점검요? 저압 판넬을 내린 것 밖에는 없는데요.”

  “이과장 어디 있어요. 오라고 그러세요.”

이과장은 판넬 뒤에 있었다. 이과장도 똑같이 대답을 했다. 

  “...., 이과장님, 리드봉으로 정전기 방전 시키세요.”

하고는 사장님은 장갑을 끼고 자기 장비를 준비한다.


  이과장은 전선을 하나 펼치더니 한 끝은 접지 부스바(Bus Bar)에 대고, 다른 끝은 리드봉에 묶어서 ASS, PF의 L1, L2, L3 모두를 툭툭 치면서 남은 전기를 흘려보냈다. 사장은 자기 메가를 들고 판넬 속으로 들어가 MOF의 배꼽을 풀고, 접지에 컴먼(Common)을 물리고, 라인(Line)을 L1, L2, L3에 각각 대고 점검을 한다. MOF를 마치더니 변압기로 건너간다. 변압기도 컴먼은 물리더니 라인으로 각각의 선의 절연저항을 측정한다. 그 큰 몸집이 작은 판넬을 이리저리 비켜 다니면서 측정을 하는데, 몸집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듯, 땀을 비오듯이 쏟는다. 

  “이사장님, 여기 좀 들어와 보세요. 제가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알려 드릴게요.”

온 복지관에 수용된 노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처음부터 근심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사장을 판넬 속으로 부른다.   

  “접지를 여기에 물렸어요. 저항이 무한대면 정상입니다. 접지저항이 0이라는 것은 절연이 전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잘 보세요, 여기 측정기에 숫자가 어떻게 변하는가?”

변압기와 MOF와 VCB를 돌아가면서 측정해 보여 준다.

  “잘 보셨지요? 여기 MOF가 한 선이 접지저항이 0이 나왔어요. 이게 고장입니다. 이걸 갈아야 합니다.”

이제야 문제를 찾았다. 


  진단이 나왔다고, 급히 고압 기기상에 전화를 했다. 지금 출발을 하면 한 시간은 걸린단다. 시간은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 7시를 넘었다. 사장님은 그만 퇴근을 하란다. 장비가 오면 자기가 와서 마무리를 하겠단다. 우리는 소나기가 내리는 걸 맞고 다니면서 이미 옷이 다 젖었고, 소나기가 그치자 땀으로 범벅이 되어 또다시 젖었다. 몸이 다 젖은 줄도 모르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살피다가, 사장님이 MOF 고장을 밝혀내자 그제야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걸 느꼈다.


  이튿날은 아무도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하루를 더 묵혀 사장님이 아침에 우리 책상으로 왔다. 

  “그저께 저는 점검팀에 적잖이 실망을 했습니다. 그날 12시까지 작업했습니다. MOF와 전문요양원 ATS를 갈았습니다. 김부장님, 이번이 처음이니까 팔장을 끼고 쳐다만 보는 걸 허용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작접 다 하셔야 합니다. 아셨지요?”

  “예, 알겠습니다.”

이과장도 할 말이 없는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 두 가지는 알겠다. 리드선으로 방전을 시키고, 기기를 일일이 메가로 찍어 보면서 절연저항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다음에는 내 구역에서는 내가 다 하라’고? 한번 본 것만 가지고는 못 하겠다. 유튜브로 그동안 공부를 했지만, 실재 현장에서 닥치는 것과는 또 달랐다. 다른 사람은 파일을 손에 들고 차를 타고 점검을 나갔다. 나는 아무래도 그냥은 못 가겠어서 사장님을 찾아 나섰다. 뒷문으로 나가 사장이 있을법한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했다. 저기 그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장님, 제게 한 20분만 시간을 내 주시겠습니까? 엊그제 상명복지관 정전사고로 물어 볼 것이 많아서요.”

  “예, 말씀하세요. 뭐가 궁금하세요.”     

  “기기 점검을 하는 걸 처음 봤어요. 어떻게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좀 알려 주세요. 유튜브에서도 ‘점검을 해야 한다’고만 하지, 어디를 찍고 어디를 대야한다는 것은 안 나와요.”

  “뭐 20분도 안 걸려요.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수변전실 전기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잖아요. 내가 읽어 보라고 한 시험단자대에 글씨요, 그게 고장표시등이거든요. 수변전실에 모든 기기가 거기에 연결되어 있어요. 그 파란불이 없어질 때까지 기기를 일일이 체크해야 해요. 거기에 불이 들어왔다는 것은 어느 기기든 고장이 난 것이 있다는 표시예요.”

  “아, 그래요?” 

  “기기마다 선을 분리를 해서, 컴먼은 접지에 대고, 라인은 L1, L2, L3에 일일이 찍는 겁니다. 변압기도 그렇고, MOF도 그렇고, VCB도 그렇고, ASS도 그래요. 아니 모든 전기기기가 다 그래요. 하다못해 형광등도 그래요. 그걸 응용하면 됩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부장님은 처음 왔으니까 그러려니 해도, 난 지난번에 이과장님에게 크게 실망했어요. 점검을 하나도 못했어요. 그 때 공사부장도 함께 있었는데, 공사부장도 점검을 하나도 안 했어요. 뭘 했는지, 모두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전기기기는 고장이 나도 겉으로 표시가 안 나요, 철저하게 찍어 봐야 해요. 겉으로 표시가 났다하면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고장이 나도 파손되지 않게 튼튼히 만든 겁니다. 찍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이과장이 MOF를 붙들고 유심히 쳐다보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마치 ‘너 어디가 아프니’하고 물어 보는 것 같았다. TR에 먼지를 쓸면서는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라, 좀’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제가 안전관리자를 고용해서 일을 맡기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이럴 때 써 먹으려고 월급 주고 쓰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못 했어요. 3시부터 7시까지 네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그것도 직원이 셋이서.... 만일 나도 가서 헤매고 있었다면 어쩔뻔 했어요. 거기 있던 사람이 다 웃지 않았겠어요? 내가 이제 전기일을 한지 20년이 됐는데,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부장님과 같이 무서웠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살아있는 전신주에 맨몸으로 올라가기도 했어요.....”

  “그랬군요. 알았어요.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내가 할게요. 이번에 공부 많이 했어요.”

물으러 온 것이 대견해 보이는지, 웃으면서 마무리를 한다.

  “언제든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세요. 내 시간이 되는 한 뭐든지 가르쳐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이만 점검 나갈게요.”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날은 맑다. 그런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이부장은 못한 걸까, 안한 걸까? 공사부장은 이걸 하는 것이 일인데, 왜 안 한 걸까?’ 아직은 장마라서 아침부터 푹푹 찌는 걸 보니, 오늘은 엄청 더울 판인가보다. 아무리 더워도 비가 오는 것보다는 낫다. 비 삐쭘한 더위라도 환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