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가 넘었다. 이제 회사에 들어가 오늘 점검한 것을 정리하고 퇴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막 회사로 향했는데, 전화가 왔다.
“부장님이시죠? 여기 써니빌인데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 대표님. 무슨 문제인데 이리 급히 전화를 하십니까?”
“여기 마을에 전압이 떨어져요. 선풍기가 잘 안 돌아가고, 지하수를 상수로 쓰는데 모타도 안 돌아갑니다.”
“아 그래요? 제가 내일 점검하러 갈려고 계획해 놓았는데, 내일 아침에 일찍 가도록 하겠습니다.”
“안됩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 합니다. 전압이 떨어져서 온 마을이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요? 왜 그러는지 알아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마을 전체에 전압이 떨어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우선 달리던 차를 길 가에 세웠다. 내가 연유를 알지 못하니까 우리 팀의 팀장은 이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10년을 했다니 문제를 들으면 척하고 원인을 알까 싶어서다.
“전압이 떨어져요? 왜 갑자기 떨어진데?”
“그 마을에 전기를 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전압계로 재보니까, 125볼트가 나오더래요. 아마 콘센트에서 단상을 쟀는가 봐요.”
“그래도 그렇지 전압이 갑자기 그렇게 떨어질 리가 있나?”
“한전에서 그쪽으로 전압을 더 세게 쏘아 달라고 해 봐야하나? 아니면 변압기의 탭을 더 올려서 높은 전압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요?”
“부장님이 변압기 탭을 조정할 줄 알아요? 나도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변압기 탭은 변압기 명판에 결선도와 함께 붙어 있어서 조작을 하면 되기는 하는데....”
써니빌 이진휘대표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전화를 했다. 급한 소리를 한다. 내일 일찍 간대도 안 된단다.
“여기는 이 장마와 열대야에 정전까지 되어서 오늘 밤을 넘기기도 힘들어요. 한전에도 연락을 해 놨으니까, 부장님도 빨리 오셔서 해결을 해 주셔야 해요.”
“예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얼마나 걸리시겠습니까?”
“여기서 40분은 걸립니다. 여섯시 가까이 될 것 같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차를 돌려 써니빌로 출발을 했다. 가서 변압기 탭을 조정해서라도 정상적인 전압을 받도록 할 참이다.
가면서 탭을 조정할 방법을 생각을 했다. 모듈 판넬을 열고, ASS, 즉 자동구분개폐기라고, 한전에서 오는 첫 번째 전원차단기를 개방한다. 혹시라도 달라붙지 말라고 ASS의 컨트롤러에 DC전압을 분리한다. 또 하나 있다. PF, Power Fuse도 3선을 모두 개방한다. 접지선을 꺼내서 리드봉에 달고 혹시라도 남아 있는 충전 전압을 방전시킨다. 그런 다음에 변압기로 다가가 손을 봐야 한다. 머릿속으로 할 일을 연상하며 운전을 했다.
변압기는 두 가지가 있다. 3상을 모듈로 만들어 세 개를 세워 놓은 모듈변압기가 있고, 3상을 한 통에 집어넣은 유입식변압기가 있다. 써니빌에 변압기가 모듈변압기 같기는 한데, 또 모른다, 유입식변압기라면 달라진다.
“이걸 각각 어떻게 조정하는 거더라?”
운전을 하면서 가도 어사무사하다. 공부는 해 뒀는데, 유투브로도 여러 번 봐 뒀는데, 막상 손을 댈 생각을 하니 또 헷갈린다.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켜서 동영상을 틀었다. 귀로 들으면서 상상을 하며 운전을 한다. 이제 이해가 간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정확히 작업하려면 실제로 보기도 해야 한다. 이번에는 차를 세웠다. 한적한 곳에 새워 두고, 동영상을 다시 돌려 눈으로 확인도 했다. 모듈변압기는 2-3탭에서 한 단계 높이려면 2-5탭으로 올려야 한다. 유입식변압기는 상부에 빨란 레버를 올리고 틀어서 한 탭을 올린 다음에 다시 내린다.
변압기 탭 조정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저는 지금 써니빌에 전압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동 중입니다. 전압에 떨어지면 변압기 탭을 조정해서 한 단계 높여 주면 되겠습니까?”
“아, 그래요? 그럼, 현장에 도착해서, 판넬을 열고, 전압을 체크한 다음에, 제게 전화 주세요. 그 다음 단계를 알려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미지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그것만이라면 다행이다. 어떤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판넬을 열었을 때 소낙비가 갑자기 내리면 또 전기 작업을 어떻게 할까? 변압기를 만질 때라도 비가 그치면 좋겠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울릉도로 가는 가슴이 울렁울렁 댄다더니, 지금 써니빌로 달려가는 내 가슴도 울렁댄다.
까리띠스 수녀회를 지나 단석리마을 다 지날 쯤이다. 이제 오르막이 시작되어 써니빌, 산 중턱에 집터를 개간하고 10채 쯤 집이 들어선 써니빌에 막 오르려는 참이었다. 한전 작업차가 서 있다. 막 정차를 해서 자리를 잡고, 유압지지대를 내려 차를 받치는 참이다. 나보다 한전이 한발 빨랐다. 차에서 내려 작업자에게 다가갔다.
“이 마을 전기안전관리자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예, 여기 전신주에 한전 COS가 떨어졌어요.”
“COS가 왜 떨어졌어요?”
“비가 와서 땅이 물러졌고, 거기다가 바람이 불어서 큰 소나무가 기울었어요. 기운 가지에 전선 하나가 눌려서 COS가 떨어졌어요. 우리가 올라가서 확인을 했고요. 가지를 잘랐어요. 지금은 COS를 갈아 끼울 겁니다.”
“갈아 끼우기만 하면 전압에 이상이 없어요?”
“예, 그러면 이상이 없을 겁니다. 전압이 정상이 되지요. 그 대신 임시로 소나무 가지 하나만 잘랐는데, 이제 날이 개이면 다시 와서 나무 하나를 모두 벨 겁니다. 그때는 COS를 다시 내려야해요. 그때는 정전도 해야 해요.”
한전 직원이 전신주에 리드봉으로 COS(Cut Out Switch, 퓨즈가 끊어지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스위치. 그래서 재보지 않고 멀리서 봐도 퓨즈가 나간 줄 알 수 있다.)를 갈아 끼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것만 갈아 끼면 전압은 되돌아 올 모양이다. 변압기 탭 조정은 안 해도 될 모양이다. 다행이다 싶어 작업하는 사진을 몇 개 찍어 두었다. 길 가에 콩밭을 어슬렁거리던 마을 주민이 다가 온다.
“안녕하세요?”
“예, 여기 불이 어제 났어요.”
“예? 불이 나요? 어디에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전기선에서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는데, 조금 타다가 말더라고요. 우리 집사람이 한전에다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그냥 뒀어요.”
“그게 언제였다고요?”
“어제 이맘 때였어요.”
“어제요? 벌써 24시간이 됐다는 말씀이세요?”
“그렇게 됐지요.”
참, 이상하다. 3상 중에서 한 상이 불이나 퓨즈가 끊어졌는데도 하루를 살았단 말인가? 엊그제 상명복지회에서는 3상에 모두 끊어졌었는데, 당장 전기가 모두 나가 난리를 겪었었다. 한 상이 나가면 그래도 아주 정전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 소식을 먼저 사장님에게 알려야 한다. 자초지종을 보고를 했다.
“부장님, 한전에서 작업을 마치는 대로 수변전실로 가서 전압을 체크하세요. 그전처럼 각 상이 380V정도 나오면 정상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철수하세요.”
한전 직원이 이상 없다고 알려왔고, 나는 마을로 올라가 수변전실을 열고 후크메타를 꺼내 전압을 쟀다. 387V, 385V, 387V. 이상 없다. 전류도 쟀다. 20A, 17A, 18A. 전기가 들어가는 양이 고르다.
수변전실을 잠그고 써니빌 이진휘 대표를 만났다. 전화를 해서 불렀으니 해결 된 상황은 알려야 한다.
“대표님, 한전에서 퓨즈 하나 나간 걸 갈아 끼웠습니다. 이제 전압이 정상입니다.”
“예, 한전에서 작업하겠다고 왔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신 것으로 한번 점검한 걸로 점검기록표 작성하시고, 한번 안 오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돌아오는 길은 아직 한여름 더위가 길을 덮고 있다. 소나기를 맞은 아스팔트 길은 여기저기 말라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언덕 아래로 흐르고 있다. 아직은 한낮 태양이 쪼이니 젖은 길과 마른 길이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지금 돌아가 사무실에 도착을 하면 모두 퇴근을 하고 아무도 없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퇴근이 늦는 셈이다. 뭐 이정도야 일을 하다가 보면 늦을 수도 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휑하니 비어있고, 사무실에 불은 희미하게 켜져 있다. 누가 있는 모양이다.
“어, 사장님 계셨어요? 다녀왔습니다. 전압과 전류가 이상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장님 수고하셨어요. 어서 퇴근 하세요.”
“사장님, 그런데 한 선이 결상되어 있는데, 24시간을 지나서까지 끊어진 줄을 모르고 전기를 쓸 수가 있어요?”
“아마도 판넬에 결상계전기가 울었을 겁니다. 마을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아서 몰랐던 겁니다.”
“그럼, 24시간까지 두 선으로 쓸 수가 있어요?”
“처음에 한 선이 끊어지면 그냥 전압이 조금만 낮아져요. 시간이 지날수록 전압이 더 떨어져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부장님. 다음부터는 그런 문제가 있으면, 한전에 전화부터 하세요. 어디 고장이 난 데가 있는지 확인 하세요. 확인을 한 다음에 움직이세요. 오늘도 한전에 먼저 전화를 했으면 가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한전에서 COS만 갈아 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이 일을 왜 이부장은 몰랐을까? 내가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한전에 고장 여부를 확인하라고만 했어도 될 걸, 왜 그 걸 못 알려 준 걸까? 하기야 내가 몰랐는데 남 탓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경험 한 켜 또 쌓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이튿날은 가까운 까리띠스 수도원에 점검을 했다. 어제 왔던 써니빌이 까리띠스 수녀회와 가까워서 한 묶음으로 점검을 했는데, 오늘은 오후에 까리띠스 수녀회만 들러 갈 참으로 왔다. 점검을 마치고 사인을 받으려는데, 관리소장이 한 가지 해결해 달라고 한다.
“부장님, 여기가 전압이 낮아요. 여기 와 보세요. 367V예요. 수녀원 사무실에서 쓸 때도 220V가 다 안 나와요. 이거 좀 해결해 주세요.”
전압이 낮다는데 또 귀가 번뜩 뜨였다. 어제도 전압이 낮아서 소란을 한번 치지 않았는가?
“어, 그러네. 본래는 380V가 나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낮지? 13V 정도가 낮네. 여기도 어디 한 상이 끊어졌나?”
어제 생각이 났다. 어제도 전압 때문에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먼저 한전에 전화를 했다. 전압이 낮은 걸 보니 어디 한 상이 끊어진 모양이라고, 와 달라고 전화를 했다. 양평한전에서 출동을 한단다. 나는 또 한전에서 와서 정상화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관리소장에게 일러두었다.
“한전에서 작업해서 손을 보면, 여기 전압이 380V가 될 거예요.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이것만 확인 하면 되요.”
나는 길을 내려오면서 가까운 한전 전주에 달린 COS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내려왔다. 수녀원 대문 밖에 세워진 전주에서 지중으로 들어간 전주에 COS가 달려 있다. COS는 Cut Out Switch 아닌가. 전기가 끊어지면 퓨즈가 떨어져 나가는 스위치 말이다. 멀리서도 눈으로 확인이 되는 퓨즈다. 이상이 없다. 그 주변에 몇 개 더 달린 COS를 확인을 해도 문제 있는 곳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차를 타고 다름 장소로 이동하다가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좀 바쁘더라도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낫지, 부장은 필요도 없다. 꼭 집어 해결해 주지 못한다.
“사장님,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까리띠스 수녀원에 갔더니 전압이 낮답니다. 그래서 어제처럼 한전에 먼저 전화를 해서 출동해 달라고 했습니다. 수녀원을 나오면서 한전 전주에 COS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내려왔는데, 떨어진 것은 없어요.”
“전압이 얼마나 낮은 데요?”
“367 정도 됩니다.”
“부장님, 잘 들으세요. 지금 전압이 좀 낮기는 하지만 정상입니다. 380이 3상 전기의 기준전압인데, 아래위로 10%씩을 정상이라고 봅니다. 직류전기와는 달리 교류전압은 일정하게 흐르지 않아요. 367은 정상이예요. 거기다가 변압기 탭을 하나 더 올리면 전압이 400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전기기기들이 모두 과전압으로 고장이 나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지금 바로 한전에 전화를 해서 출동 취소를 하세요. 한전에서 도착하기 전에 빨리 하셔야 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급히 전화를 끊고, 조금 전에 연락을 했던 한전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 취소를 했다. 또 까리띠스 수도원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전에서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오늘은 문제를 만들어 경을 칠 뻔 했다. 변압기 탭을 조정 하는 것이나, 교류전기의 정상 범위에 대해서는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시험을 볼 때는 문제를 풀 수 있을 만큼 알았는데, 책을 덮고 실무에 나와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현실이 되었다. 어떨 때는 전혀 새로운, 듣도 보도 못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몸으로 배워서 체득을 해야 진짜 내 실력이 되는가보다. 팥 한 켜 쌀 한 켜씩 쌓여 시루떡이 되듯이, 지식 한 켜 경험 한 켜씩 쌓여 실력이 되는 모양이다. 또 한 가지 배웠다. 시루떡 한 켜를 쌓았다. 녹음이 짙어진 여주 북내길에 그늘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