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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Jungle)에 누가 또 지나간다.

by 기추구



조부장이 사임을 표시하고 그 다음 월요일에 인수인계자가 출근을 했다. 남은 보름동안 인수를 하면 조부장은 회사를 떠난단다. 회사를 떠나는 것 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것이 그를 가까이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자판기가 사라진다. 문제점을 말하기만하면 뚝딱 답이 나오는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도 물었다. 조부장이나 새로운 직원이 오기 전에 먼저 와 업무를 보고 있는 앞자리에 앉은 이과장에게 물었다.

“누가 온데요. 혹시 안진과장이 다시 온답니까?”

“어데예? 그 양반이 지금 나이가 얼만데 다시 온답디껴?”

“아니, 하도 수상해서....”

“그 양반이 지금 80이 훌쩍 넘었는데요. 지난번에 근무할 때도 겨우 걸어 다녔어요. 1,000Kw가 넘는 태양광 발전소를 다 돌아다닐 수나 있답니까? 말도 안돼니더.”

“그래요?”

어디 들은 소리는 아직 없는가보다.


조금 있다니까, 정말 새로운 사람이 왔다. 경리가 데리고 온다.

“김부장님, 조부장님 아직 안 오셨어요? 이 분이 새로 오신 분인데 조부장님 오시면 소개 좀 시켜 드리세요.”

아직 60은 되어 보이지 않는 작달막한 사람이 들어선다. 나는 손을 먼저 내밀어 인사를 했다. 서로 통성명은 했지만, 한번 이름을 들어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이 금방 외워지지 않아도 며칠 함께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조부장이 오고 우리는 먼저 편의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새로 온 사람은 나이가 56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기기사 2급을 따서 KT에도 15년을 근무했단다. 요즘말로 하면 전기산업기사를 딴 것이다. KT 구로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단다.

“야, 이분도 전기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네. 대단하십니다.”

“아이고, 뭐 별거 아닙니다. 통신전기는 전기도 아니지요. 약전류인데요, 뭐.”

“이분은 이제 전기를 본격적으로 한지 2년도 안 되신 분이십니다.”

조부장이 나를 소개한다.

“그런데 어떻게 전기안전관리를 하십니까?”

“자격증을 딴지는 좀 되는데, 자격증과 전기 실무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그게 얼마 안 됐다는 겁니다.”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안전관리는 얼마나 되셨는데요?”
“이제 8개월 됐습니다. 조부장님 대신 내가 물으면 대답을 잘 해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조부장과 짝이 되어서 새로 오신 분이 차를 같이 탔다. 조부장과 헤어지면서 인사를 예삿날과 똑같이 했다.

“몸조심 하시고, 저녁에 살아서 봬요.”


낮에는 여주 북쪽에 산북에서 곤지암으로 돌아서 점검을 했다. 태양광들이다. 겨울 햇볕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간신히 전기를 만드는 모양이다. 한여름 발전량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며칠 전 폭설에도 태양광 판넬에는 눈이 쌓여있지는 않다. 얇은 햇볕이나마 발전은 그럭저럭 되고 있다. 1Kw당 한 달에 1만원은 넘는 모양이다. 채은태양광에서는 얼마나 나오는지 물었다.

“겨울이라서 발전이 시원찮지요? 30Kw 발전이라고 했는데, 30만원은 나옵니까?”

“그보다는 더 나와요. 요즘도 40~50만원은 나와요. 우리 판넬은 중국산이 아니라 국산이거든요.”

“아, 그래요? 여름에는 훨씬 많이 나왔겠는데요?”

“예, 여름에는 괜찮았지요. 뭐 지금도 괜찮은 편이에요.”

내가 관리하는 태양광이 벌이가 좀 된다니까 나도 기분이 좋다.


저녁에는 5시가 조금 넘자 조부장과 새로 온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조부장이 점검하고 온 파일을 정리하는 방법을 일러 준다. 컴퓨터 안에 내용물도 일일이 열어가며 알려 준다. 새로 온 사람은 ‘예, 예’ 하며 따라다닌다.

“오늘 정기검사가 하나 들어왔잖아요? 그건 여기 김부장님에게 알려 달라고 하세요. 나도 그건 아직 잘 몰라요.”

“아, 그거요. 이리 와 보세요. 내가 알려 드릴게요.”

내 컴퓨터로 불렀다. 전기안전공사의 홈페이지인 ‘전기안전여기로’에 들어가서 알려 줄 셈이었다. 그런데 컴퓨터의 인터넷이 시원치 않다. 연결됐다가 금방 끊어진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금방 될 겁니다. .... 그러나저러나 오늘 하루 다녀 보니 어떠세요. 할 만 하세요?”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처음엔 다 그래요. 날마다 똑같은 일이라서, 며칠만 지나면 적응이 될 겁니다.”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될 동안 잠깐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분위기를 좀 누그러트리려고 농담을 한마디 했다.

“내가 조부장님 옆에 있다가 유혹을 여러 번 받았는데, 그걸 참고 이기느라고 엄청 힘들었어요.”

“예? 무슨 유혹을 ....”

“이 컴퓨터가 인터넷도 잘 안되고, 어떨 때는 부팅도 잘 안돼요. 그러면 조부장님이 뭐라는 줄 알아요? 자기가 저기 창문을 열어 놓을 테니, 들어다가 던지라는 거예요. 그랬다가는 회사 당장 그만 둬야할 것 같아서, 좀 더 다니려고 참았어요. 그러다가 지난주에는 나도 사표를 한번 썼어요. 다시 다니기로 했지만 말이에요. 지금은 조부장이 그만 둔데요, 글쎄.”

그날은 결국 정기검사신청 절차를 알려주지 못했다. 한번 나간 컴퓨터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다.


이튿날이다. 조부장이 출근을 하자마자 대표가 부른다. 조부장은 놀라기부터 한다. 뭔 이야기를 하는지 심상치 않은 눈치다. 조부장이 책상으로 온다.

“야반도주했데요. 야반도주....”

“에? 뭐야. 야반도주?”

“오늘 새벽에 짐을 싸서는 사라졌데요. 대표에게 문자만 남기고요.”

하루 출근을 해서 조부장을 따라다니더니, 밤 새 고민을 했는지, 아침이 되기 전에 짐을 싸서 기숙사를 나간 모양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조부장님이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내가 커피를 잘 사니까 가만있다가, 어제는 그분이 커피를 사지 않았는지, 꼬집고 때리고 발로 차기도 했구먼. 그래서 오늘 출근하지 않고 도망을 갔구먼.”

“아니에요, 부장님. 내가 어제 얼마나 잘 해 줬는데요. 어제는 커피도 다 내가 샀어요.”

“그런데 왜 출근을 안 해. 왜 하루 하고 도망을 가.”


사무실에서 대표와 다른 사람이 있어서 농담을 그렇게 했지만, 다시 둘이 되어 커피를 마실 때는 사실이야기를 한다.

“부장님, 이 일이 얼마나 어렵고 기술을 요하는 일인지 아시겠지요? 섣불리 덤빌 일이 아닙니다. 이분 도망가는 거 봐요.”

“왜 도망을 간 거야?”

“사실 이야기를 다 했지요.”

“뭔 이야기를 사실 대로 해요?”

“먼저 점수가 장난이 아니다, 이거죠. 전기안전관리법 시행규칙(제44조의 제2항 관련)에서는 60점이 기준입니다. 많아야 78점, 30%를 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배도 넘잖아요. 부장님은 3배를 하고 있다면서요?”

“그건 나도 모르고 들어왔지. 와서 따져보니까 그만큼이었고.”

“또,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하나 점검하고는 30~40분은 가야하잖아요. 이게 전기직인지 운전직인지를 모르겠어요.”

“그건 그래요. 나도 넉 달을 소파에 앉아 있어도 멀미를 하더라니까.”

“또 하나는 이분이 전기를 딴지 오래 됐어도, 점검하는 기술을 많이 익혀야 해요. 초보나 마찬가지에요. 나 같은 사람 없습니다. 부장님이 지금 뭐든지 물어 보시면 재깍재깍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뭐 흔한 줄 아십니까? 저압 고압 가릴 것 없이, 태양광이고 발전기고 구분하지 않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저나 하니까 알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정, 인정해요. 그래서 자판기라고 그러고, 답을 얻으려고 커피를 날마다 넣잖아요. 뭐가 필요해요. 내 또 사드릴게....”

“어제 같이 다니면서 많이 생소해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오늘 안 나왔어요. 안전관리는 전기 기술의 꽃이에요. 공사를 하면서 배선을 익혀야 하고, 고압을 하면서 고장 난 것을 찾아야 하고, 태양광을 설치해 봐야 점검을 할 수 있어요. 지금 와서 그걸 언제 다 익히겠어요? 앞이 캄캄한 거지요.”

“나는 그걸 어떻게 해 냈겠어요. 완전 어거지지.”

“부장님은 겁이 없으신 거예요. 하여튼 용감하세요. 그게 걱정이에요. 제가 없어도 한 가지 걱정이 그거예요. 제발 전기를 만지지 마세요. 열 번 생각하고, 한 번 만지세요.”

“알았어요. 내 명심할게....”


‘띵동’하고 조부장 핸드폰에서 문자가 오는 소리가 난다. 각자 일을 하자고 헤어지기 전에, 오늘 도망 간 사람에게서 작별의 문자가 왔단다. 제법 긴 문장이다. 거기에 이런 구절도 있다고 크게 읽어 준다.

“.... 일도 일이지만, 기숙사에서 이틀을 잤습니다. 누우면 벽 아랫단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쓴 것이 보입니다. 이런 데서는 못 살겠습니다.....”

하루를 돌고, 밤새 한 잠도 못자고 고민을 하다가, 새벽에 짐을 싸서 떠났단다. 이름도 모른 채 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나는 용인쪽으로 갔다. 먼저 타지 말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용인에 도착해서 점검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고속도로를 타지 말라는 건 순 억지다. 아니, 고속도로가 얼마나 잘 닦여져서 국민들이 편리하게 사용을 하는데, 타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특히 여주와 이천에는 고속도로가 많이 지난다.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생활권이다. 거기에 딸린 톨게이트도 많다. 여주, 서여주, 남여주, 북여주, 동여주, 이천, 서이천, 남이천, 광주, 곤지암, 동곤지암, 초월 등 톨게이트를 이용해 용인, 양평, 하남까지,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루에도 서너번을 타기도 한다. 또 쉬고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는데 고속도로 휴게소만한 데가 없다. 고속도로비도 내가 낸다. 회사에서는 하이패스 단말기를 달아 주지 않아서 그냥 지나다니면 회사로 고지서가 날아오니까, 혹시나 이미 퇴사한 사람이 쓴 비용을 청구할 수 없을까봐 말리는 모양이다.


그날 아마 고속도로를 타지 않았다면 큰 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용인에서 병원과 요양원을 점검하고 양지에 있는 학원을 점검했다. 학원 점검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니까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 기어가 안 들어간다. 아니, 들어간 기어가 빠지지 않는다. 마치 부러진 노를 허공에 젓는 것 같다.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견인해서 여주까지 왔다. 자동차 기어를 넣는 와이어가 끊어졌단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끊어졌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다행히 주차를 했다가 다시 가려니까 끊어진 것이다. 조부장의 후임자가 고민을 했다는 또 한 가지가 자동차 고민이었을 것이다. 내 차는 그래도 24만km를 운행했다. 조부장이 타고 다니는 차는 30만km를 넘는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쓰-윽, 쓰-윽’소리가 난단다. 조부장의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시가 6만원을 하더란다. 이런 차를 타고 하루 종일 다닐 생각을 하니 아찔했을 것이다.


나는 자동차 수리를 맡겨두고 일찍 퇴근을 했다. 차가 없으니 일을 더 하려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조부장은 마지막 날이라고, 내일은 출근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가 내일 대책을 이야기 해 줬다.

“부장님,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고, 내일은 조부장의 차를 타고 나가세요.”

“예? 왜요? 조부장은요?”

“조부장은 오늘까지만 일 한데요. 공부해야 한다고 갔어요.”

기술사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는 했다. 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안진과장을 데려온다는 뜻이 틀림없다. 80이 넘은 분을 다시 데려 온다는 것은 동료인 우리도 편치 않은 일이고, 사업주인 대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모른 채하는 것이 상책이다. 한 사람이 하루만에 도망을 갔지, 조부장은 이미 마음은 떠났는데 잡아 둘 수도 없지, 고육지책일 것이다.


이튿날은 내 차가 맡겨진 공업사에 가서 내 물건을 조부장이 타던 차에 옮겨 실었다. 하루를 타도 내 장비를 모두 가지고 다녀야 한다. 점검하는 곳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방에 든 내 장비도 싣고, 비상용 베터리 등 물건이 담긴 사과상자도 옮겨 실어야 한다. 박스에 담기지 않는 물건도 있다. 리드봉, 충전전기 방전용 리드선이다.


내 장비는 처음에는 이틀을 쉬는 주말에만 차에 옮겨 싣고 다녔다. 조부장은 오자마자 날마다 자기 장비를 퇴근할 때 옮겨 싣고 다닌다. 내가 물었었다.

“아니, 내일 올 건데 장비를 점검차에 두고 가지 왜 날마다 옮겨 싣습니까?”

“이건 내 장비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 장비입니까? 빌려 온 것입니까?”

아니, 30년을 전기를 했다는 사람이 남에게 전기장비를 빌려서 다니나 싶었다. 이상했다.

“장비(裝備)가 아니라 장기(臟器)입니다.”

“장-기? 와우, 그 정도입니까?”

그 후에 나도 출퇴근할 때마다 차에 옮겨 싣고 다닌다.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을 해서도 긴급출동을 바로 해야 할 때는 회사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쉬고 그 다음날에 역시 안진과장이 다시 왔다. 4개월 전에 앉던 그 자리에 앉았다. 풍경은 옛날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공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조부장에게서 특훈을 받았다.


한 사람이 이름도 모른 채 정글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조부장은 정글 위에 솟구쳐 세운 망대처럼 남아 있다. 떠난 이튿날도 통화를 했다.

“부장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몸조심 하세요.”

“기술사 시험 합격하면 날 불러요.”


여주는 근처에 높은 산이 없다. 좀 높다 싶으면 언덕이고 그 위에 전원주택이 있고, 허허벌판이다 싶으면 아직 숲으로 남아 있는 언덕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탁 트인 맑은 하늘에 찬 바람이 매섭지만, 조부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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