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7 낭독
나의 세계가, 행복하게 아름다운 나의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는 얼어붙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빨아들이는 새 뿌리가 되어 바깥에, 어둠과 낯선 것에 닻을 내리고 붙박혀 있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은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데미안』, 민음사, p.27)
주인공이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이 잡히게 된 이후 모든 일상이 무너져 내린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그가 처한 상황은 별거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두렵고 걱정이 되어도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안전한 장소를 벗어나야 하며,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지도조차 없더라도. 오히려 지도가 없는 경우가 더 흔하다. 누구나 인생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부모 노릇도 처음, 자식 노릇도 처음, 사회생활도 처음, 결혼 생활도 처음, 애인 노릇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이다. 삶도 처음이고 죽임도 처음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그 자체가 모험이며 그렇기에 우리 각자는 모두 여행자가 아닐까? 이것을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며,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고, 운이 없다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물에게는 비극이지만) 죽은 생물이 거름이 되어 새 생명을 위한 토대가 되듯, 만일 내가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위기는 경험으로 탈바꿈하여 나에게 거름이 될 것이다. 마치 죽음이 탄생이 되고, 탄생이 죽음이 되는 것처럼. 죽음과 탄생은 동전의 양면이며 서로 맞붙어 있고 순환한다. 그러므로 죽음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걱정 없는 인생은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그들로 인해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