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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가야 한다.

2025/3/28 낭독

by 독자J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데미안』, 민음사, p.66)


주인공이 사춘기가 되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들로 인한 혼란과 그것을 잘 처리하지 못했다는 소회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하며 산다. 선택을 안 한 것조차도 선택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꽤 혹독하고 아픈 것들인 경우도 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써야 하기도 하고, 고난을 감내해야 하기도 하다. 주인공처럼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갈 때도 독립적인 인격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주변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만의 기호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을 정체성(identity)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인생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에 선택하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것을 택한다. 밖에 나가면 추우니까.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인생은 선물(present)이고, 현재(present)이다. 인생은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과거는 지나간(past) 현재일 뿐이며, 미래도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일 뿐이다. 현재의 연속인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결국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과거의 영광은 모두 뒤로 해야 한다. 절벽을 꽉 쥐고 있는 손을 놓아야 한다. 어찌 됐든 선택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물론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절벽을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벽에서 얼어 죽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생은 본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살 길이 열린다. 추위가 무서워서 집에만 있지 말자. 추위를 뚫고 나가야 뭐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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