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마리오네트

by 한 올


어딘 가로부터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약간은 회색빛이기도 하고 붉은빛을 띤 광선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어찔했다. 온몸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다시 탁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으려고 걸음을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일정 간격을 두고 연이어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소리가 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걷고 있는 아파트로 통하는 길과 비스듬히 갈라진 옆 골목에서 소년이 공을 벽에 던지고 되돌아오는 공을 받아서는 되풀이해 던지고 있는 소리였다.

별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뒤에서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아 불안하다. 종종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걷는 척하며 고개를 갑자기 휙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있는 집들과 길,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마자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뒤 꼭지에 따라오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또다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누구도 예기치 못할 때 고개를 재빠르게 돌려보았다. 하지만 방금 전에 지나갔던 것 같은 나를 끈질기게 따라오는 광선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것들은 심지어 잠자리까지 쫓아와선 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는 요즈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차도 운전하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뒤에서 불쑥 나타나 쫓아오는 것 같아서 과속으로 달리기를 여러 번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며칠 전 추돌 사고가 있었다. 앞차의 운전자에게 급정거를 했어도 왜 부딪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큰 사고를 유발하기 전에 막연하지만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운전을 피하기로 했다. 기사를 구하려고 하는데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싶지만 대중들의 시선 때문에 하는 수없이 택시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집으로 돌아오려고 택시를 탔었다. 때에 맞지도 않는 짙은 색의 선글라스를 썼었다. 나는 습관처럼 택시 뒷좌석에 앉자마자 차 안의 거울을 통해 운전기사의 얼굴부터 살폈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인 듯했다. 검은 안경 덕분에 운전기사는 내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운전기사의 눈에 초점을 맞췄다. 그 눈이 어느 곳을 쳐다보는가 하고 지켜보았다. 기사는 행선지를 물으며 나를 보았다. 이어서 운전을 하다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보는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거울을 뚫어지게 보는 것이 원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다시 거울을 보았다. 기사가 또 나를 쳐다본다.

“탤런트세요?”

“아닌데요?”

“그럼 모델이군요.”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기사는 자신의 눈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다며 다시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내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벗겨내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사의 시선 때문에 불안해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을 삭이려고 차 창 유리를 내렸다.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이 한꺼번에 차 안으로 밀려온다. 그것도 참기 힘들었다. 다시 창을 올렸다. 나는 동네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가까스로 참다가 내려서 아파트로 향한 길을 걷고 있던 중이었다.

오전에 율동 연습실로 가는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도 지금과 같은 것을 느꼈었다. 복도를 따라 나란히 있는 방마다 문이 조금씩 열려있었다. 그 문틈에서 날아오는 것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엔 사람이 숨 쉬면서 내뿜는 희부연 빛 같기고 했고 맹수의 눈에서 나오는 광채 같기도 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살폈었지만 그 빛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오전 내내 몸이 밧줄처럼 뻣뻣했었다. 율동 연습실에 가서 몸을 풀고 싶었지만 몸보다는 마음이 더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몸만 풀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몸을 관리하는데 소홀하지 않았을 유미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그녀를 얼마나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그녀가 그 위치에 이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스포츠 신문이건 잡지 건 그녀에 대한 기사가 나온 것을 모두 오려 스크랩을 했었다. 국립도서관에 가서 그녀가 최초로 언론에 조명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녀에 관련된 기사들을 모두 복사해서 보관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까지를 수기의 형식으로 써서 예술세계라는 잡지에 세 차례에 걸쳐 투고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토록 정성을 쏟으며 그녀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지만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의 스텝은 어떻게 깃털처럼 가벼우며, 오만하리만큼 자신감 있게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바탕이 무언인가 하는 거였다. 아마도 그건 그녀의 이면에 숨겨진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할 뿐이었다. 나는 그에 버금가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연습을 끊임없이 했었고 그 결과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국립 발레단의 단원이 되었다. 그녀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언론의 추적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그녀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층에서 승강기를 탔는데 그 안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지층에서부터 승강기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그녀와 마주한 순간 나는 흥분으로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허리를 깊이 굽히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을 기대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승강기의 벽을 보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는 겸연쩍어서 그녀에게서 얼른 시선을 거두어 승강기 문 위에서 변하는 숫자를 쳐다보는 척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몇 사람들은 그녀가 먼저 내리도록 몸을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 그녀는 당연한 듯이 먼저 내렸다. 이제 신입 단원인 나는 맨 마지막에 내렸다. 그녀를 중심으로 몇몇 단원들이 방패처럼 그를 둘러싸고는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뒤따라 걸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신문 연예부 기자들이 그녀의 길을 막으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후 열릴 공연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기 위한 것이리라. 일 년간의 잠적을 끝내고 마치 화장실에 다녀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와서는 그녀가 출현하기로 되었다는 것이다.

“숨겨 놓은 애인은 언제 공개하시렵니까?”

“비밀 결혼을 한 건 아니시겠지요?”

그녀는 쏟아지는 질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답변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기자들은 거만한 것은 여전하다며 투덜거렸다.

예정된 공연이 열렸었다. 그녀가 출 독무는 ‘빈사의 백조를 위하여’라는 작품이었는데 여전히 그만의 동작과 작품 해석으로 관람석을 제압했다. 나는 무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관람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무대를 누볐다. 그녀는 처음에 발끝으로 서서 떠는 스텝으로 천천히 무대 위를 원형으로 돌아갔다. 길게 목을 빼고 활 모양으로 뒤를 향하여 젖힌 등 뒤로 뻗친 팔은 떨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백조가 날갯짓을 하듯이 율동을 해 나갔다. 그녀는 한 마리의 백조가 된 듯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서 움직이기 위해,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백조의 모습이었다.

잠시 후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백조가 총에 맞았다. 백조는 점점 기력이 소진되어 간다. 백조는 날고자 힘껏 날개를 움직이려 하나 날개를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살아나기 위해 목을 세우려 해도 몸은 천천히 바닥 쪽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팔은 등 뒤에서 가늘게 파닥거렸다. 죽어 가는 새가 가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매달리듯이 그녀는 눈빛을 끈질기게 버텨내려고 했다. 아름다운 백조는 삶과 날고자 하는 욕망을 힘껏 잡아당기려 하나, 그녀의 힘은 더욱 쇠퇴하여 기진해 간다. 몸은 꺼져가도 날갯짓은 마지막으로 한번 비상해 보려는 듯, 바닥에 푹 닿는 순간 짧게 또 미세하게 한번 떨다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 쓰러진 채 눈을 감았다.

음악도 끊기었다. 잠시 후, 무대 위를 비추던 모든 조명이 꺼지고 하나의 조명이 원을 점점 좁히며 쓰러진 백조를 비춘다. 그 하나뿐이었던 조명도 점점 작은 원이 되다가 한 점으로, 그마저 사라지고 어둠만이 무대 위에 존재하는 가운데 깊은 침묵으로 가라앉는다. 한참 동안 관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있다가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지고 백조를 연기했던 유미라가 일어나 인사를 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다음 날 신문에는 이 무용이 시각적 만족을 줄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통찰마저 가능케 했다던가, 단명한 것들의 순간적인 아름다움과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영구적 삶에 대한 갈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죽어 가면서도 삶을 잡고 있는 하나의 아름다운 피조물에 대한 예술적 승화를 이룬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도 있었다. 매우 높은 기교를 구사할 수 있는 유미라가 있었기에 빈사의 백조가 돋보였다는 글도 있었다. 그녀는 일 년간 잠적한 것이 아니라 일 년간 숨어서 연습만 한 것 같았다. 대중에게 잠적이라는 미끼를 던지고 비웃으며 낚싯줄을 당기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유미라는 이 무용을 담당하기에 알맞은 신체 조건도 가지고 있었다. 표정이 없어 보이는 작고 인형 같은 얼굴은 어떠한 인물로도 연출이 가능했다. 그녀의 몸은 가늘고 팔다리 목이 길었다. 체형이 서구적 이어 발레리나로 손색이 없었다. 이미 유미라는 국제적인 발레 경연대회를 석권한 경력도 가지고 있는 터였다. 유미라는 특유의 미모로 인해 발레리나가 무용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서만 받는 사랑을 넘어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광고 요청이 많이 들어왔고 어디서나 대중들이 그녀를 알아봤다.

나도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같이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또 어디를 가나 나를 알아보는 스타가 된다면 일상이 황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처럼 되기 위해 그녀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모아 왔던 터이다. 그녀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고형음식보다는 녹즙과 과일주스, 유동식을 주로 먹는다. 예술에 대한 감각을 몸에 배게 위해 미술품과 음악 감상도 일상의 일이라고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거의 알고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그녀가 어떻게 발레의 동작들을 익히고 유지시키는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와 같은 독보적인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몸매를 유지하며 어떤 방법으로 율동과 스텝을 익히는지 그 장면을 꼭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다른 단원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녀가 연습하는 장면을 본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다 같은 방법으로 연습할 거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만의 독특한 연습 방법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연습은 필수니까. 그녀의 일과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본다면 틀림없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일과가 끝난 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나오자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승강기 앞에 섰다. 승강기가 서자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하고 같은 승강기를 탔다. 그녀는 지하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내렸다. 나도 따라 내렸다. 그녀가 자신의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맥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계획하게 그녀의 뒤를 따르려다 시작도 못하고 돌아서며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많은 날들이 있으니 성급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후 며칠간 그녀가 퇴근하는 시간을 관찰했다. 그녀는 광고 촬영 등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어김없이 저녁 5시에 국립 무용원을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그녀의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을 택해 렌터카를 타고 그녀의 차가 주차해 있는 곳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렌터카 기사에게 그녀의 차를 미행해 줄 것을 부탁했다.

렌터카 기사는 그녀가 눈치채지 않도록 한 대의 차를 그녀의 차 뒤에 끼어둔 채 능숙하게 뒤를 따라갔다. 나는 기사에게 이런 일을 종종 하는가 하고 물었다. 기사는 더러 해 본다며 자신의 추적이 마음에 들면 요금 외에 팁을 더 얹어줄 것을 은근히 비쳤다. 그녀의 차가 한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늘 차를 운전하며 출근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꽤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차로 10여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녀는 차를 아파트 102동 앞에 주차시키곤 아파트 입구로 올라갔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녀가 올라간 아파트를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느 곳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나는 바로 아파트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102동 아파트 앞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서성이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재등장을 기다렸다. 시간은 흘러 9시가 되고 주변은 어두움에 젖어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날 다시 지켜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때 난 아파트 입구 계단을 오르면서 지금처럼 뒤돌아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사이에 뒤로 돌아선 채로 교도소의 탐조등처럼 두 눈을 휘두르며 살피고 있었다. 나무 뒤에 누가 숨어있지나 않은지, 늘 보던 얼굴이 아닌 낯선 사람이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를 따라온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난 승강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창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상쩍은 사람은 없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달라진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집안은 아침에 보아두었던 그대로다.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어 옷도 갈아입고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셨다. 서서히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8시다.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12시 10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시계 알람이 꺼져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항상 이 시간이면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곤 했었는데 수개월간 계속 불면증에 시달려서 균형이 깨진 지 오래되었다. 이런저런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녀의 뒤를 처음 미행했던 다음 날 무용원에서 그녀의 동, 호수를 알아냈었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잠자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아파트 창을 지켜보았었다. 둘째 날은 10시까지 지켜보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하릴없이 아파트 앞에서 서성이다 왔었다.

삼일 째 되는 날 11시까지 놀이터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았으나 그녀의 방은 지난 이틀간처럼 8시에 불이 꺼지고 창문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밤을 밖에서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아파트를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다. 밤의 깊이에 따라 기온은 빠르게 떨어지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데우려고 놀이터를 가볍게 뛰고 있었다.

갑자기 불빛이 나를 따라왔다. 나는 불빛이 오는 곳을 쳐다보았으나 눈이 부셔서 상대방을 알아볼 수 없었다.

“못 뵈었던 분인데 몇 동 몇 호에 사시는 분입니까?”

나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얼떨결에 그녀의 동 호수를 말해버렸다.

“그 집엔 유명한 무용수가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그녀의 친구이고 오늘 놀러 와 함께 있다가 운동하러 잠시 나왔던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녀를 불러내어 내 신분을 확인할까 봐 무척 초조했다.

“저희는 아파트 순시 중인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운동을 하시면 외부인하고 혼동이 되어 보안유지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젠 그만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아파트를 나와야 했다. 경비원이 뒤쫓아 와서는 잡아갈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때 차 한 대가 뒤에서 전조등을 비추며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길을 비키며 차 쪽을 쳐다보았다.

분명 그녀의 차였다. 순간 그녀가 나를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차가 내 곁을 지나친 것으로 보아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가로등 밑으로 가서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그녀는 이 늦은 시각에 어디로 가는 것이며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일까. 아무리 추측을 해도 미루어 알아낼 수 없었다. 힘없이 걷다가 문득 그녀가 남의 시선을 피해 연인과 깊은 밤에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 지켜보다 따라가 보면 무언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12시 10분 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나는 차를 빌리어 아파트 정문 근처로 가서 그녀의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넘자 그녀의 차가 어제와 같이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를 태운 기사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멀리서 그녀의 차를 따라갔다. 차는 내 눈을 의심할 틈도 없이 국립 무용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는 익숙한 곳이다.

그녀는 정문에서 경비원의 자연스러운 인사를 받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경비원의 눈에 발견되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서서 그녀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혹 사무실에 중요한 것을 빼놓고 와서 찾으러 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럼 어제는 무슨 일로 아파트를 빠져나갔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도무지 그녀의 방문 목적을 추측해 낼 수 없었다.

시간은 새벽 두 시가 지나고 있었다.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그녀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건물 안에서 보내는 것이라면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바로 그것 ̄그녀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이 시간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새벽의 이슬이 몸에 닿아 물방울을 맺고 있었다.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긴 밤을 잠도 자지 않고 연습을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밖에서 떨고만 있을 일인가. 오늘 일과가 끝나면 퇴근하지 말고 연습실에 숨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녀가 나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날 새벽에는 잠깐 눈을 부친 때문인지 몸이 무척 무겁고 버거웠었다. 눈이 뻑뻑한 채로 출근을 했었다. 연습실에 가서 몸을 풀려고 발레의 기본동작도 해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재즈곡을 틀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두었으나 시원하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머릿속은 자정이 넘은 시각에 눈앞에 펼쳐질 그녀의 연습 장면을 상상하는 것으로 꽉 차 있었다.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에 밤이 되기도 전에 잠에 푹 젖어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고 밤 시간을 대비해 휴게실로 가서 소파에 몸을 묻고 깊은 잠에 빠졌었다.

시계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며 12시가 가까워짐을 알리고 있다. 어두운 공간을 숨 가쁘게 날아와서는 고막을 사정없이 때리며 일어나라고 재촉하고 있다. 손을 뻗어 알람 정지 버튼을 눌렀다. 한숨도 못 잔 탓인지 몸이 무겁다. 일어나기 싫다. 오늘은 연습을 그만두고 싶다. 이젠 발레리나로서도 확고한 위치에 있었고 하루쯤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익힌 스텝이 달라질 것은 아니다,라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연습을 게을리한다면 이제껏 쌓아놓은 내 위치가 순식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습용 타이츠를 입고 겉옷을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달리 교통편도 마땅하지 않아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엔진 시동을 걸고 전조등을 켰다. 늦은 시간이지만 혹시라도 날 미행하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차를 몰고 아파트 문을 나가면서 예전의 나처럼 내 차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무용 연습실로 가면서도 백미러를 통해 미행하는 차가 없는지 수시로 쳐다보았다. 12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오가는 차는 많았지만 나와 똑같은 길을 가는 차는 없었다. 몇 년 전 내가 그녀를 미행할 때만 해도 차량의 수는 지금의 반도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었다.

차를 주차시키고 무용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설 때와 같이 나는 경비 아저씨의 미소를 받으며 들어갔다. 곧장 연습실로 올라갔다. 복도 천장에는 탁구공 크기의 미등 몇 개가 아무도 없는 공간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연습실 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켰다. 불을 밝히자 경계가 보이지 않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옷을 벗어 마루 한쪽에 놓았다. 사물함에서 초와 촛대를 꺼내와 바닥 중앙에 놓았다.

그다음에 그녀는 불이란 불을 모두 껐었다. 환했던 공간은 불이 꺼지자 완벽한 어두움의 세계가 되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것보다 갑자기 덮친 어둠에 눌려 내 마음은 움츠러들었었다. 그녀가 발소리를 죽이지 않고 지척에 온대도 어둠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어두움도 빛이 바랬는지 점점 옅어지며 네모난 연습실이 나타났다. 그녀는 마루 중앙에 앉아있었다. 서서히 그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몸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에서 힘을 주고 있던 눈이 시려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신성한 기도로 몸과 마음을 씻어낼 그녀의 자세를 지켜보며 내 마음도 숙연해졌었다. 한참 동안 고요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조용히 팔을 뻗어 초에 불을 붙였다. 삼면 벽을 싸고 있는 대형 거울에 무수히 많은 그녀와 촛불들이 나타나 서로를 비추었다. 촛불이 만들어 낸 세상은 온통 연 주황빛이었다. 그녀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촛불들도 아주 미미하게 흔들렸다. 선명하게 동작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막에 수많은 짙고 옅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반추되고 있어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시선은 손끝을 보면서 천천히 숨을 마시며 두 팔을 들어 올려 잠시 정지 상태에 이르면 다시 숨을 천천히 내쉬며 최대한 낮게 뻗어 내리기를 몇 차례 했다. 이어서 발바닥을 마주 대고 숨을 내쉬면서 양 팔꿈치와 턱이 바닥에 닿도록 굽혔다. 한쪽 다리는 펴고 다른 쪽 구부린 다리의 발목을 잡고 원을 크게 그리며 좌우로 돌려주기도 했다. 다리 뒤쪽 근육을 부드럽게 신전(伸展) 시키기 위해서인지 한 다리를 구부려 손으로 무릎과 발바닥을 잡고 구부렸다 폈다했다. 다리 모아 펴고 전굴 하기를 10회쯤 해도 멈추지 않자 나는 세기 시작했다. 무려 100회를 했다.

다른 단원들이 연습하는 방식과는 너무 판이해서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한 발의 엄지발가락을 잡고 한쪽 다리를 구부려 귀 가까이 당긴 후, 활시위 당기듯이 숨을 마셔 멈추고 있다가 자세가 결정되면 숨을 내쉬며 천천히 원위치로 복귀시키기를 20회 이상했다. 그녀가 하는 동작 중에는 마치 고양이가 기어가는 자세에서 숨을 내쉬며 복부를 수축시킨 후 척추를 둥글게 전굴 시키는 것도 있었다. 검은 타이츠를 입은 그녀의 몸은 너무나 유연하고 날래서 검은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감마저 일으켰다.

무릎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뒤로 구르며 넘어졌다가 그 반동으로 일어나 앉기를 반복하더니 무언가 그녀의 고개를 잡아당기듯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어두움 속에서 그녀의 눈은 쥐를 노려보는 고양이의 눈처럼 보였다. 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시뻘건 야광 빛에 가위눌리어 꼼짝도 할 수 없어 그녀로부터 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내 착시였는지 그녀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서인지 고개를 돌리더니 아예 바닥에 누었다. 잠시 연습을 중지하고 쉬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숨을 마신 다음 천천히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45도 정도 들어 올려 1분 정지하곤 다시 눕기를 10 회 반복하고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서자 연습이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발레의 여러 기본기를 한차례 씩 하곤 제자리에서 한쪽 발끝을 세우더니 돌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게 도는지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였다. 몇 바퀴를 도는지 세지도 못했다. 촛불도 요동을 치며 흔들렸다. 주황빛 세상도 따라서 흔들려 가슴이 울렁거렸다. 춤추는 주연이 그녀인지 촛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은 촛불의 조명을 받으며 주홍색이 되었다. 잠시 후 그녀는 제자리에서 돌면서 연습실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크고 역동적이었다. 나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독무는 큰 연습실마저 좁게 느껴지게 했다.

그녀는 내가 지켜보는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는데 그녀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스텝소리가 내 심장을 쾅쾅 울렸다. 그 숨소리는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한숨이라도 더 쉬려고 하는 것처럼 처절했다. 내 폐활량은 그녀에 비해 턱없이 작다고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사력을 다해 연습하는 그녀를 앞설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격정적인 연습이 끝나고도 그녀는 쉬지 않고 다시 정적인 스텝 연습을 했다. 스텝 연습은 다른 단원들이 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와 똑같은 방법으로 연습을 끝내고 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내 몸은 그때 그녀와 같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시작할 때와 달리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연습이 끝날 즈음엔 촛불도 제 온몸을 오롯이 태우고 검은 심지만 남기고 있었다. 뒷정리를 하고 현관 밖으로 나오며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먼 하늘은 이미 어둠을 반쯤은 잃어버린 듯했다. 급히 차에 오르려는데 건물 모퉁이에서 날아오는 것이 있었다.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퉁이에서 날아왔던 것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며칠 후에 있을 국제 발레 페스티벌 출연도 매우 긴장되었다. 그녀도 그때 그 긴장감으로 종적을 감추었을까. 그러나 한두 번 해보는 출연도 아닌데 대(大) 발레리나가 그만한 일로 주변에 사전 통보도 없이 아주 무책임하게 사라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무도 모르게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은폐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잠적을 메우기 위해 단장은 내가 그녀와 외모와 몸매가 가장 닮았을 뿐 아니라 제2세대 가장 유망주라고 추켜세운 뒤 나를 그녀의 대타로 내보내기로 했었다. 예전처럼 그녀가 공연을 며칠 앞두고 홀연히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단장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같았다. 나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내내 잠자는 것도 잊은 채 긴 연습과 짧은 휴식을 반복했었다. 일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연습실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황홀할 순간을 그리며 연습을 하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어느 날 12시가 되자 수없이 많은 밤, 그녀의 연습장면을 지켜보며 눈으로 익혔던 동작들을 해 보고 싶었다.

그녀가 왜 캄캄한 곳에서 촛불을 밝힌 채 연습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나도 초를 가져온 다음 실내의 불을 모두 껐다. 그녀처럼 고요히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두움이 주는 공포로 인해 내 마음은 잡념이 파도처럼 몰려와 출렁거렸다. 차츰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짧게 명상을 마쳤었다. 명상의 시간이 끝난 후,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깜깜한 공간 속에서 초에 불을 댕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더듬거리며 벽의 스위치를 켜고 초에 불을 붙인 다음 다시 전깃불을 모두 껐었다.

삼면에 비친 수많은 허상들이 키득거리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쪼그라들기도 했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사방에서 유령들이 덤벼드는 것 같은 압박감에 온몸이 짓눌려서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공포의 한계점에 이를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독한 마음이 내부로부터 용솟음치듯 끓어오르며 그 격동적인 힘을 빌려 눈을 떴다. 기절밖에 더하겠냐고 옹골차게 마음을 다졌다. 왜 그녀가 이런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연습을 감행했는가를 막연히 알 수가 있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집중력이 커지고 연습에 전념할 수가 있게 되었었다. 물론 불을 켜지 않고도 초에 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공포 속에서의 연습을 통해 아무리 넓고 비중이 큰 공연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자 그녀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안위는 내 안중에 없었다. 그녀가 사고로 실종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편의대로 그녀가 어느 실낙원 같은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했었다. 공연이 열리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녀가 잠적한 것이 아니고 사고로 죽어서 실종이 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 바람대로 그녀에겐 여전히 아무 소식도 없었고 예정된 공연이 열렸었다. 나는 그녀의 전유물이다시피 되어있는 ‘빈사의 백조를 위하여’를 추기 위해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입구에서 잠시 포즈를 취하자 어두운 객석으로부터 수많은 눈동자들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난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된 기분이었다. 옛날에 관람석에서 보았던 그녀의 잔상이 내 머리에 가득했다. 아무 의식이 없이 그녀가 추었던 그 하얀 무대 위로 스텝을 밟아 나아갔다. 예전에는 눈만 그녀를 따랐으나 그때의 나는 온전히 그녀였기에 어떻게 무용을 마쳤는지 몰랐었다. 꺼졌던 조명이 다시 켜지고 관객에게 인사를 하자 울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나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했었다.

공연은 완벽한 대타 역할을 한 내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일로 나는 그녀와 같은 반열의 발레리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광고 모델 요청이 많이 들어왔고 수입은 하룻밤을 자고 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느 곳을 가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며 사인 공세를 폈었다. 나는 황홀감에 젖어 매일을 보냈다.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호의적이든 아니면 호기심에 찬 시선이든 시선들이 늘어날수록 내가 가지고 있던 자유로운 공간은 점점 시선으로 채워졌다.

그것들은 바람처럼 형체도 없고 무게도 없지만 속도와 길이는 늘 있었다. 어떨 때는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다가왔다 뒤통수만 들키고 달아나곤 했다. 어떤 이는 내가 바라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긴 꼬리를 감출 생각도 않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나를 응시했다. 대부분은 나와 숨바꼭질을 하듯이 나타났다간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라진 후에도 내 마음에 늘 선명한 궤적을 남겨선 내 속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나를 속박해 왔다. 심할 때는 한참을 그 존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그것들이 다가와 나를 괴롭히고 쉴 새 없이 들볶았다.

한 번 자리를 차지한 것들은 내가 아무리 냉정하게 굴어도 자리를 비워 줄 생각을 않았다. 그 후론 음식 한 끼 맛있게 음미하며 먹지 못했다. 기꺼이 즐겨 웃지도 못했다. 이건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외침이 자유가 없는 그 공간과 시간의 작은 틈새로 늘 비집고 들어오며 송곳처럼 나를 찔러댔다. 그 날카로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최고의 발레리나든 스타든 모두 태워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싶었다. 내가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 자리를 길거리에 팽개쳐 둔 채로 내 몸이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길밖에 없었다. 감시의 눈초리로 인해 자연스럽게 도망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나는 집으로 향하던 길을 돌려 무작정 시골로 연결된 국도를 따라 달렸다. 달리면서도 뒤에서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백미러를 통해 보았다. 시골길은 한적했다. 드문드문 반대편에서 차가 지나가곤 했다. 저 멀리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던 산이 봉우리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외진 곳을 향해 달렸다. 산골마을 어귀에 오백 년은 족히 살아왔을 법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찻길은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렸다. 느티나무가 서 있는 바로 앞에는 이정표가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판자에는 서툰 글씨로 쓰인 선운사라는 절인 듯한 이름 석 자와 그 이름 밑에 그어진 화살표 하나가 산속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었다. 풀숲을 날아가는 바람처럼 자유로움도 잠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흘깃 돌아다보았다. 분명 무언가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두려움 때문에 느끼는 환각 현상일지도 모른다. 절에 머무르며 며칠 안정하노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해도 잡념이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어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어떻든 뒤는 돌아보지 말자 앞만 보고 걷자 스스로를 다잡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땅에서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며 올라오는 흙냄새를 맡을 여유가 없었다. 개울이 나타났다. 어린 시절처럼 신을 벗고 시내를 건너질 못하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신을 신은 채 건넜다.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길을 갈까 저쪽 길을 가면 선운사가 나타날까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작은 돌멩이와 흙이 섞여 있는 길을 걷노라니 발바닥이 아렸다. 숨이 점점 가빠졌다. 아마도 이 길은 경사가 완만해 느껴지지만 오르막인가 보다.

산길과 개울이 번갈아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7개의 개울을 건너고 나니 가파른 고개가 하나 나타났다. 고개 초입에는 마을 어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이정표가 있었다. 판자의 엉성함과 글자체는 같았지만 그 아래엔 화살표 대신 100m 앞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개만 넘으면 선운사다. 조금은 지쳤지만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낼 듯이 고개에 올랐다. 꼭대기에 이르자 그 아래 아담한 규모의 절이 보였다. 반가움에 쉬는 것도 잊은 채 반달음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절의 부엌인 듯한 곳에 이르니 화장기가 전혀 없는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날 보고 두 손을 합장하고 절을 했다. 나도 어느새 합장한 채 마주 절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며칠 머무를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더니 따라오리라 믿는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나는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어느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댓돌에는 정갈한 하얀 고무신이 바깥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스님? 스님?”

방문이 열리고 뼈가 드러나 보이도록 마르고 얼굴이 하회탈처럼 보이는 스님이 나왔다. 나는 며칠 머물게 해 주길 간청했고 스님은 기꺼이 나를 받아 주었다.

“이 보살님이 절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해 주시고 있습니다. 보살님, 이 처자에게 방을 안내해 주시지요.”

보살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방 벽에는 회색의 중의 적삼이 걸려 있었고 구석에 이불 두 채가 잘 개켜져 있었다. 보살은 이 옷을 입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며 내게 회색 중의 적삼을 건네고 쉬라며 밖으로 나갔다. 손끝에 따스한 마음과 인자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몸을 옥죄는 곳이 없다. 몸의 어느 부분도 존재하지 않고 비어 있다고 느낄 때가 몸이 가장 건강한 상태이듯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편안했다. 보살의 말대로 마음도 곧 평안해질 것 같았다.

밖에서 인기척이 난 것 같다. 잠시 후 쪽마루에 무언가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보살이 내 점심상을 차려 와 마루에 놓고 막 문을 열려는 참이었던 같았다. 얼른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보살이 따라 들어왔다.

“절 음식이라 모두 풀밭이라오.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상위에는 밥그릇은 물론 찬기, 수저 모두가 목기였다. 채식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참을 걸어서인지 어느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러나 애써 체면을 지키느라 군침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보살님도 함께 드시지요.”

보살은 마음 편히 먹으라며 내 말을 뿌리친 채 자리를 비켜 주었다. 보슬보슬한 밥이며 구수한 시래깃국, 갖가지 나물이 맛있다.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배부르게 음식 한번 먹지 못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꽤 많은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겠다는 내게 오늘만은 손님으로 있으라며 보살은 나를 떠밀 듯이 부엌에서 쫓아냈다.

저녁 8시가 되자 오랜만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마음껏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자리에 들었고 분명 잠을 자기는 했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다. 애써 잠을 청해보려고 불을 도로 껐지만 정신만 더 또렷해온다. 사방은 물속같이 고요한데 잠도 잊고 산사를 돌아드는 바람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적막한 밤을 울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연습을 해야만 몸이 풀릴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차를 타고 연습하러 가고 싶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팔을 위로 쭉 뻗기도 했고 방 안을 서성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음도 바람소리에 맞추어 흔들리고 있다.

며칠 후에 있을 국제 발레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나는 톱 발레리나로서의 요지부동한 위치에 설 것이 자명했다. 오래전부터 공연 기획에 참여했기 때문에 내가 맡은 공연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는 터였다. 눈부신 빛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설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난 후 팬들로 둘러싸여 있는 내 모습도 보였다. 생각만 해도 그 황홀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곳은 산속 깊은 절간이라고. 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곳까지 오지 않았느냐.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겠다고 여기에 이르러 놓고 이제 와서 그 무수한 시선을 동경한다는 말이냐. 아니지 빛을 열망하려면 그 그림자도 받아들여야지. 강한 빛의 그림자가 더 짙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내 안에 허영과 도피가 같은 농도로 공존하는 것일까. 주변은 깜깜하고 하늘엔 침묵하는 가운데 별들만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이 올 때까지 머릿속은 빡빡했다. 새벽을 깨우는 스님의 목탁소리에도 내 의식은 깨어나질 못했다. 수많은 집착들은 접착제처럼 들러붙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최고의 발레리나로서 책임감 운운하며 점차 내 마음은 바깥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산사의 어둠은 걷혀 가는데 내 안의 번뇌는 무게를 더하여 허영과 허식과 과시 욕을 덜어내지 못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산에서 벗어나 느티나무에 세워두었던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만 하루도 못 버티어내고 벗어나려고 했던 그 세상 속으로 돌아와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대 위에 섰었다.

국제적 규모의 공연은 내 예상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신문 연예란은 내 모습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신문기자며 잡지사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주요 신문과 독자층이 넓은 잡지사만을 엄선하여 인터뷰에 응했다. 모든 질문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 기자가 집요하게 오늘날의 바탕이 된 유미라 대타 역할을 했었던 것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모든 것은 사실 그대로 답변할 수 있었다.

“유미라가 실종되었을 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혹, 끝까지 유미라가 나타나질 않길 바라진 않았나요?”

머뭇거리는 내 태도를 보고 다른 기자들도 가세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미라가 죽기까지 바랐었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가시밭을 걸어가는 듯한 인터뷰가 끝나고 내게 시련은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곳을 가나 톱 발레리나로 대우를 받았다. 각종 선발대회는 물론 연말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대중의 일부분만 나를 알아보고 시선들을 던지었으나 이젠 어디를 가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한 번만 쳐다보아도 견딜 만했다. 무대 위에선 당당했던 나는 그들 속에선 자연스럽게 걷지도 못했다. 늘 긴장을 꾸며낸 미소 아래에 묻어두고서 부자연스러움을 모면하려 했다. 술을 마신 후에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다음엔 신문이나 잡지에 술 마신 것까지 기사화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 의식을 마비시키고 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디에 있으나 내 몸짓은 하나하나가 열에 들뜬 듯했다. 항상 머뭇거리며 마음은 편치 않고 갈피를 잃었다. 나는 어디에도 있었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무대 위가 아니라고. 꿈속 세상에서처럼 잠시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시선의 끝에 나를 매달곤 줄을 당겼다 놓았다 했다. 그 끈을 벗어버릴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막연히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꼭두각시 인형처럼 또 연습을 하기 위해 연습실로 들어갔다. 촛불을 켜고 한참을 연습하는데 내 몸의 기를 끊으며 쏘아보는 것이 있다. 연습실에 올 때까지 수없이 확인할 때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가 돌아보는 순간 꼬리를 감춘 것이 있었다. 분명 회색빛이 섞인 붉은색이다. 그 붉은빛은 분명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았던 그녀의 눈빛과 닮았다. 고양이 눈 같이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지금 이 순간 떠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저것들은 지금 잠시 머뭇거리고 있지만 곧 내 목을 휘감은 다음 서서히 조여 올지도 모른다. 두려움 때문에 다리는 마비되고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푸석 주저앉았다. 더 이상 아무 동작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세상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젠 돈다. 어지럽다. 하늘에서 검은 휘장이 내려와 내게 덮친다

작가의 이전글아버지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