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제주 아침 '다랑쉬오름'
[제주 07일] '오름'에 대하여
다랑쉬 오름에 도착해서 가파른 계단이 눈에 들어왔을 때 '조금 쉬운 오름으로 갈 걸 그랬나'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르는 길이 많이 어렵지는 않다.
내가 체력이 이렇게 좋았었나 싶다.
땀은 많이 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중간중간 힘들어질 때 딱 쉴 수 있다.
사람들은 정상의 목표를 정하면 목표만 보고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잠시 쉬며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왜 정상에 오르고 싶은지 알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정상이 아니어도 충분할 때도 있다.
간혹 올라온 길을 내려다도 보자.
힘들게 올라 온만큼 성취감도 크고 더 높이 올라가는데 힘이 되기도 한다.
아침 5시 40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세수하고 선크림만 바르고 출발했다.
한동스테이에서 다랑쉬오름 주차장까지 17분 거리다.
앞장서서 걷다 보니 정상부까지 20분 정도 걸렸다.
날이 흐려서 한여름인데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구좌쪽 오름들 중에는 제일 높은 오름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다랑쉬오름을 닮은 작은(아끈) 다랑쉬 오름도 보인다.
우도와 성산 일출봉 너머로 이미 해가 떴지만 전혀 덥지 않았다.
남편한테 카메라를 주고 각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내 다리가 이미 내 다리가 아니게 늘려서...사진도 찍었다.
역시 나이 들면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다.
집 나가기 전에 밥은 해 뒀고,
어제저녁에 끓여 놓은 해물 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고 1100 고지 들러 산방산 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산으로 오르니 급격한 온도 변화가 느껴졌다.
엄마가 불편해하셔서 1100 고지 휴게소도 내리지 않고 안갯속 드라이브만 하면서 내려왔다.
남편이 일산에서부터 노래 부르던 산방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거 엄마랑도 함께 먹고 싶어 왔는데 계단이 휠체어가 넘기에 너무 불편하다.
사장님은 여기저기 기부도 하시는 것 같은데 장애인이나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도 해주시면 좋겠다.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했는데 30분이 다 되도록 밀면이 안 나왔다.
직원들은 따로 물어보기 전까지 설명도 없고, 큰 소리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대화하기 바쁘다.
참다못해 직원을 부르니 면 삶는데 오래 걸린단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이라 테이블이 꽉 찬 것도 아니고,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지만 엄마도 앞에 계시고 해서 꾹 참고 기다렸다.
다 먹어갈 즈음...
직원들끼리 분주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테이블이 계산을 했네, 안 했네, cctv를 돌리네, 마네.
내가 주인이라면 한 테이블에 만 얼마를 계산했네, 안 했네가 아니라 치킨배달보다 늦게 나오는 면가게 민원이 더 이슈이어야 할 텐데 말이다.
손님들이 다 보고 듣는 가게에서 손님 뒷담화 같은 발언을 큰소리로 하는 건 더더욱 볼성사나운 것이었다.
우리야 어쩌다 제주에 한번 오면 들를 밥집이고 맘에 안 들면 또 안 오면 그만이다.
즐겁자고 온 여행에 괜히 음식맛도 덜해지는 상황이라 조금 속상했다.
가까운 거리에 마노르블랑 카페가 있다.
수국이랑 핑크뮬리가 유명한 카페인데 나에게는 제비가 더 기억에 남는다.
테라스 위, 어딘가들에 제비집이 여러 개 있다.
대부분의 수국들은 다 져버리고 유럽수국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사실 이 시기에 볼거리는 별로 없다.
휠체어 타고 다니기에도 힘든 면이 있어서 전망 좋은 자리에서 커피 한 잔씩 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래저래 먼 거리를 다시 돌아오니 해가 졌다.
그래도 마무리는 다시 숯불구이.
이번에는 돈마호크에 목살에 소시지도 굽고 라면도 끓이고, 맥주에 커피까지.
음악은 덤이다.
균스형제가 번갈아가며 피아노 연주도 해줬다.
역시 코로나시국엔 집밥이 맘 편하다.
또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힌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