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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09일] 날씨도 남편도 다시 제자리로
"스무 살 넘어 불만은 모두 네 탓이다."
시아빠가 예전에 남편에게 해주신 말씀이란다.
"니가 못살아도 니탓, 나라가 못살아도 니탓."
정말 내가 노력한다고 모든 것이 변할 거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남 탓 하지 말고 스스로를 더 돌아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형제자매 간의 우애와 부모님에 대한 도리, 효도 등을 이야기하다가 신랑이 말했다.
"내 탓이네.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네~"
우리 남편, 짠~하면서도 너무 멋있다.
아침부터 관자도 굽고 소라도 삶고, 흑돼지김치찌개도 끓여서 찰진 밥이랑 배부르게 먹고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타고 평대 - 월정리 - 김녕 - 함덕 - 조천 - 삼양을 거쳐 공항까지 갔다.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돌아가는 여행자의 기억을 새롭게 바꿔줬다.
그래도 흐린 날씨 덕분에 여행하는 동안에는 덜 덥고 낮시간에도 잘 다닐 수 있었으니, 어쩌면 운이 정말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올라가는 중에 제일 좋았던 곳은 김녕해변이다.
사실 내가 지금껏 봤던 김녕의 모습 중에도 단연 탑이다.
이른 시간 탓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물도 적당히 들어와 있어서 색과 높이의 조화라고나 할까.
물론 푸른 하늘이 열일했다.
잘 놀고, 먹고, 쉬고...
오늘 낮 비행기로 남편과 시엄마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커피 한 잔 사서 용담해안도로 한 바퀴를 돌며 헛헛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왔다.
집에 오니 일주일치 살림이 쌓인 느낌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가기로 했다.
균스형제랑 약속했던 도서관에 가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세화 하나로마트 옆에 토스트가게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토스트 먹으려 했는데 이 더위에 앉아서 먹을 마땅한 곳도 없고, 차에서 먹기도 애매해서 맛있는 '호자' 돈가스에 한 번 더 먹으러 갔다.
2시를 갓 넘겼는데 거의 다 솔드아웃되고 등심이랑 치즈만 남아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하지만 진짜 맛있게 먹었다.
2번째 동녘도서관.
반납하고 책을 빌리는데 비밀번호가 자꾸 에러가 떴다.
이번에도 완전 친절한 사서선생님이 다 해결해 주심.
나, 여기 너무 좋아~~
책소독기도 있어서 소독도 해 봤다.
석균이가 읽기에 좀 어려운 책을 골라 왔길래
"너, 괜찮겠어? 이거 이해하기 좀 어려울지도 몰라."
했더니 사서선생님 왈.
"고등학생인가요?"
우리끼리 빵 터져 웃었다.
초딩한테...
그래도
"어려우면 어때요, 그냥 읽다가 어려우면 반납하고 다음에 또 읽으면 돼요. 일단 도전해 보는 거죠."
라고 우문현답 해주셨다.
작은 책꽂이에 책이 넘쳐나니 또 맘이 부자가 된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또 해안도로.
세화해변도 오늘 제일 예쁜 모습을 보여줬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것들로만 저녁을 간단히 먹고 저녁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한라산 정상도 예쁘고 노을도 순해서 우리끼리 보기가 아쉽다.
이런 제주도의 흔한 저녁풍경이라니.
소파가 두 개라 거실이 너무 답답해서 위치를 변경했다.
거실에서 바깥풍경 보며 밥을 먹자고 식탁은 거실로 옮겼다.
작은 소파는 주방 쪽에 놓고 티타임이나 게임할 때 쓰기로 했다.
식탁이 냉장고랑 가까워서 불편할 것 같지는 않다.
제주 와서 밤 10시 반 이전에 처음으로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완벽한 여름성수기에 있는 요즘.
당분간 우리는 차분하게 거리 두기를 실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