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5일] 백약이오름도 우리도 휴식 중
"바람이 가는 길이 보여요"
상균이 말했다.
안개라고 해야 할지, 구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낮은 미세한 입자들이 바람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그 문장이 너무 예뻐서 오름에 오르는 동안 계속 되뇌었다.
'바람이 이 길로 가고 있네.'
'바람이 우리랑 다른 길로 가고 있네.'
새벽 4시 5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다.
날이 흐려서 오름에서 내려오기 전에 비를 만날 수도 있지만 오늘은 꼭 가리라 마음먹었기에 아이들을 깨웠다.
한 번에 벌떡 일어나주는 아이들이 사춘기라기에는 너무 이쁘다.
차에 타려다 현관을 보니 지붕 위로 달이 예쁘게 떠 있었다.
아직 비몽사몽인 나는 밤인지, 새벽인지 헷갈리지만 그대로도 너무 설레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높은 오름이나 용눈이 오름도 선명하게 잘 보였는데 백약이 오름에 도착하니 어쩐지 오늘 뷰는 없을 것 같았다.
완만하지만 잘 정비된 오름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내가 꼴찌다.
'역시, 저 에너지 충만한 아이들이랑은 비교 불가구나.'
바람이 많이 불다 보니 구름이 바람에 밀려 한 번씩 파란 하늘도 보여주고 또 가려버렸다.
정상에서 일출봉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백약이오름의 정상부 일부는 휴식 중이다. 그 부분은 휀스로 잘 차단되어 있는데 둘레길을 도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분화구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해가 떴구나 싶었다.
일출을 보려고 했었지만 오늘은 아닌가 보다.
뭐, 아직 제주살이가 많이 남았으니 이 오름, 저 오름, 오르다 보면 일출도 보고, 일몰도 보고 하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벌써 제주살이 1/3이 지났다는...)
날씨가 이러니 빨간 국물에 밥 말아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화에 사신다는 제이님이 가르쳐 준 현지인 맛집 '비지곳뼈다귀해장국'으로 갔다.
나만 좋아하는 메뉴라 전화로 포장 예약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집에 프라이팬이 별로라 계속 웍으로 요리하고 있는데 나는 계란말이도 웍으로 한다.
이게 뭐라고 잘 말아지니 기분은 좋다.
해장국은 거의 육개장 수준으로 진한 국물에 고기도 딱 맛있다.
석균이도 뼈다귀 하나 뜯고 상균이도 살 발라 조금 먹었다.
이렇게 아침식사까지 끝.
지금부터 휴식시간이다.
나는 설거지 끝내자마자 잤다.
오늘 분리수거는 플라스틱을 하는 날이다.
제주에서 계속 생수를 사 먹고 있어서 페트병이 꽤 많이 나온다.
드라이브 나가면서 분리수거를 하고 나갔다.
제주는 분리수거를 요일별로 해서 잘 챙겨뒀다가 그때그때 맞춰서 해야 한다.
음식물이랑 일반쓰레기는 매일 배출 가능하다.
지난번 남편이 알려준 토스트가게가 있다.
구좌하나로마트 입구 쪽에 닭강정집이 있고 가운데 만두집이 있고 제일 왼쪽 끝에 토스트가게가 있다.
간판도 '듬뿍토스트'.
진짜 깜짝 놀라게 듬뿍 준다.
우린 셋다 치즈 듬뿍을 주문했는데 만드는 모습보고 완전 감동했다.
만드는 동안 하나로마트에서 귤이랑 고기랑 새우, 우유 장보기.
그리고 바닷가 식당을 찾았다.
평대해변을 살짝 지나 해안도로 한편에 있다.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배경으로 정말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디저트로 마트에서 사 온 요구르트까지 마시고 나니 환상의 점식식사였다.
오후엔 과일 먹으며 올림픽응원을 했다.
탁구 남자 단체전은 브라질을 이겼다~~!!
일찍 저녁 먹고 산책을 가려했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로 내렸다.
잠깐 망설이다 맥주 한 캔 했다.
남편 가고 첫 맥주다.
완전 맛있다.
배불러서 고기도 남길 줄 알았으나 더 줬어도 남지 않았을 것 같다.
고기는 역시 언제 먹어도 진리다.
뒷정리하기 내기 원카드를 했으나 오늘은 기름진 거니까 엄마가 치우는 걸로.
아이들은 낮잠도 안 자서 많이 피곤해 보인다.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갔다.
나도 오늘은 일찍 마감하고 일찍 잠들기.
내일 새벽엔... 나가,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