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여름: 덩굴의 계절
〈8장. 덩굴이 자라다〉
텃밭의 방울토마토는 어느새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몇 주 전만 해도 연약해 보이던 줄기들이 이제는 서로를 감싸며 넓게 뻗어가고 있었다. 잎사귀는 햇빛을 듬뿍 받아 짙은 녹색으로 변했고, 줄기 곳곳에는 작은 털들이 반짝였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텃밭으로 탄성을 질렀다. 땅 가까이 웅크려 덩굴을 들여다보던 상희가 먼저 말했다.
아이들은 텃밭으로 달려와 얽힌 덩굴을 보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이거 완전 살아 있어요!”
정원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이제 줄기도 많이 자랐네. 이름을 붙여주면 어떨까?”
“이름이요?”
순식간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상희는 손을 들까 말까 하다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괜히 말했다가 또 누군가의 얼굴이 굳어버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먼저 스쳤다.
“선생님! ‘토마토킹’ 어때요?”
“좋네. 다른 의견은?”
선생님의 맞장구와 달리 상희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승욱이 손을 들었다.
“저는… ‘용사’요. 꼭대기까지 올라가니까.”
수영은 줄기 옆에 쭈그려 앉아 덩굴을 손으로 살살 넘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원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수영아, 너는 어떄?”
잠시 고민하던 수영이 조용히 말했다.
“…얽희요. 얽히니까… 얽희.”
아이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상희가 말했다.
“어? 괜찮은데?”
정원이 상희를 보자 상희는 살짝 시선을 돌리며 덧붙였다.
“얽히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서로 기대는 거잖아요.”
몸을 맞대며 기대는 동작을 하며 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 재미있어!”
“이름 특이한데 예쁘다!”
순식간에 ‘얽희’는 덩굴의 이름이 되었다.
상희는 잠시 덩굴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제일 먼저 예쁜 이름을 말하고 반 친구들이 환호해주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수영이 조용히 낸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훨씬 ‘우리 반’ 같았다.
상희는 속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맞장구만 쳐도 더 좋네. 이런 것도 괜찮네.
상희의 작은 변화를 눈치채고 “상희도 예쁘다고 해주니 좋네” 라고 말했다.
“그럼 얽희는 너희가 돌봐야지. 서로 얽힌 만큼 같이 키우자.”
아이들 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덩굴이 바람에 흔들렸다. 꼭 그 이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정원은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려보았다.
얽희… 얽히면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나.
“그래, 우리 덩굴 이름은 얽희야.”
말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 가볍고 따뜻한 기운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덩굴을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붙였다.
“얽희야, 오늘 물 많이 마셨지?”
“얽희 줄기 꼬였어! 내가 잡아 줄게.”
서로 웃고 떠들며 작은 생명을 돌보았다.
정원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땀에 젖은 아이들의 이마가 햇빛 아래 반짝이고, 덩굴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수영이 줄기를 쓸며 말했다.
“얽희도 더워요.”
정원이 다가가 물었다.
“덩굴은 혼자 자랄 수 있을까?”
수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붙잡을 데가 없으면 쓰러지잖아요.”
“그래. 서로 기대야 버티는 거야.”
그 말이 덩굴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수영의 얼굴에도, 아주 미세하지만 지난 봄에는 없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일기를 펴며 정원은 조용히 한 줄을 적었다.
얽희— 서로 얽히는 존재. 가지가 가지를 밀어내지 않고, 감싸며 자란다. 아이들도, 나도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