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여름: 덩굴의 계절
〈9장. 벌레의 계절〉
한여름의 공기가 텃밭 위에서 반투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울토마토 잎사귀는 짙푸르게 무성했고,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한 흙냄새와 풀잎의 진한 향이 섞여 났다. 그런데 얽희의 잎사귀 몇 장이 이미 검게 타 있었고, 덩굴 사이에는 반투명한 작은 점들이 반짝였다. 상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얽희에 벌레 생겼어요!”
정원은 덩굴 사이로 몸을 낮췄다. 잎 뒷면에 작은 초록 구슬 같은 진딧물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햇빛이 스치면 젤리처럼 반짝였고, 가느다란 다리들이 잎맥 위를 촘촘히 기어 다니며 잎의 즙을 빨아먹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렸다.
상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선생님, 이거 다 죽여야 해요!”
정원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다른 아이가 말했다.
“그냥 옆 모둠 얽이에 붙이면 되잖아. 거긴 물 많이 줘서 튼튼하다던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잎을 건드려 진딧물 무리가 ‘후두둑’ 다른 줄기로 옮겨 붙었다.
“하지 마!”
상희가 소리쳤다.
“그러다 다 퍼진다니까!”
“네가 흙을 너무 뒤집어서 생긴 거잖아!”
“아니거든! 네가 물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약해진 거야!”
“너네 모둠이 문제라니까!”
“그만!”
정원의 목소리가 아이들을 멈췄다.
“얽희는 우리 반 모두 거야!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건 아무 소용없어!”
정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늘에서 쉬던 아이들까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상희는 진딧물이 번진 잎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겨울방학 때 유튜브로 식물 키우는 영상을 보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해야 해”라는 말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말이 점점 커지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원이 “그만!” 하고 소리쳤을 때 상희는 누구보다 크게 움찔했다.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잠시 알 수 없었다.
“이런 날에 누가 텃밭 해요.”
“여기 그냥 벌레 밭인데요.”
“그냥 다 뽑아버려요.”
투덜거리던 아이들은 그늘 쪽으로 흩어져 삼삼 오오 부채질하며 장난질을 쳤다.
정원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덩굴 사이에 몸을 낮추었다. 손끝으로 잎의 뒷면을 하나씩 닦았다. 진딧물 몇 마리가 손등에 들러붙었다. 투명한 다리가 피부를 더듬는 촉감이 섬뜩하게 생생했다.
나 또 혼자 남았구나.
손바닥을 털어내는 순간, 익숙한 공포가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
수영이었다.
그는 벌레를 피하지도, 뒷걸음치지도 않았다.
“더러워!”
“진딧물 옮는다니까!”
아이들이 비웃었지만, 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흙을 움켜쥐어 삽으로 고르고, 쓰러진 줄기를 조심스레 세웠다.
“나는 괜찮아요.”
정원은 고개를 들었다.
땀에 젖은 수영의 얼굴 위에 묘한 단단함이 떠 있었다.
“수영아… 덥지 않아?”
“괜찮아요. 얽희는 아직 살아 있어요.”
상희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다. ‘뭐야. 내가 틀렸다는 거야?’ 부끄러움이 얼굴에 잎맥처럼 드러나 있었다.
정원은 모종삽을 땅에 세워두고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흙냄새가 폐 깊숙이 차올랐다. 상희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날 늦은 밤에 깨어나 정원은 일기를 적었다.
벌레보다 더 무서웠던 건 사람의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다. 햇살을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영이 흙을 만지던 손을 떠올렸다…. 그림자가 아주 조금 옅어지는 걸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