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붉은 나눔

4부 가을: 수확의 계절

by 오소리

〈12장. 붉은 나눔

  방학을 며칠 앞둔 아침, 텃밭은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햇빛을 머금은 방울토마토가 잎 사이에서 구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줄기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약간 처져 있었고, 이슬을 머금은 열매들은 떨어질 듯 말 듯 흔들렸다. 아이들은 텃밭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선생님! 진짜 많아요!”
  “이거 다 우리 거예요?”
  정원은 웃으며 작은 바구니를 나누어 주었다.
  “응. 이제 딸 시간이야. 준비됐니?”

“네에”
  아이들은 서로 먼저 따겠다고 손을 뻗었지만 곧 질서를 잡고 줄지어 토마토를 따기 시작했다. 상희는 손끝으로 열매의 상처를 살피며 “이건 조금 더 익히자.” 하고 조심스레 내려놓았고, 승욱은 잎 사이 깊숙이 숨어 있던 토마토만 골라내며 “여기요!” 하고 외쳤다.

 승욱이 토마토 바구니가 무거워 흔들리자 상희가 조용히 다가와 잡아주었다. “이거 떨어지면 아까워.” 말은 퉁명했지만 승욱이의 안색을 살폈다.

수영은 말없이 바구니를 들고 따라다니며 무거워진 바구니를 제 풀밭 쪽으로 옮겼다.
  한참을 따고 나니 바구니는 금세 가득 찼다. 작은 방울토마토들이 서로 몸을 부딪히며 딸깍 소리를 냈다. 정원은 텃밭을 바라보다가

“얘들아, 이렇게 많이 따버렸잖아. 어떻게 할까? 우리끼리만 먹을까, 아니면 나눠 먹을까?”
  정원이 묻자 아이들은 금세 웅성거렸다.
  “나눠요!”
  “교무실이랑 행정실이랑 교과전담실에도!”
  “어디부터 줄지 투표하자!”
  칠판에는 세 장소가 적혔다. 만장일치제로 진행했다.
  교무실 / 행정실 / 교과전담실

이 순서로 나눔을 하기로 하고 포장을 했다. 플라스틱 통에 토마토를 담고 “5학년 2반이 키운 토마토입니다”라고 한 글자씩 꾸며 라벨을 붙였다. 모둠마다 한 아이는 스티커를 자르고 다른 아이는 정성스레 붙였다. 뚜껑을 닫자 승욱이 말했다.
  “선생님, 토마토 냄새가 고소하네요. 싸요. 싸요. 오늘만 꽁짜예요.”
  아이들이 동시에 웃었다. 잠시 텃밭 전체가 웃음으로 흔들렸다.


  정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문 앞에서 아이들은 잠시 멈칫했다.
  “선생님… 우리가 직접 드려도 돼요?”
  “그럼. 이건 너희가 키운 거잖아.”
  정원이 문을 열자 교무실 특유의 정적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통을 올려놓았다.
  “드세요… 저희가 키웠어요.”
  정 교감과 김 행정실무사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 너희 웬일이야?”
  “와, 이거 진짜 반짝이네.”
  두 사람의 표정에는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이 스쳤다. 정원은 문틈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뒷태에서 우쭐함과 흥분이 복도까지 전해졌다.

나는 이 아이들 덕분에 다시 교무실 문을 자연스럽게 열고 있구나.


  교과전담실에서는 음악 전담 선생님이 웃으며 통을 받아들었다.
  “얘들아, 고마워. 너희 덕분에 오늘 간식 생겼다.”
  행정실에서도 “애들이 키웠다고? 맛있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통이 비워지는 동안 오히려 행복이 차오르는 듯했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 수영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그는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올랐다.
  정원은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너희는 이제 뛰어오르는구나.


  학기 초 텃밭을 시작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정원은 “그냥 자라고 싶어서”라고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수영이는 내 말을 "자연이 우리를 뛰어 오르게 해주니까요."라고 답해주는 듯했다.

늦여름 햇빛이 교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우리 몸 안으로 스며들어 아이들을 가볍게 뛰어오르게 하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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