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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티 Apr 07. 2024

소속감을 잃어버렸던 나날

대학교 안에서 길을 잃었다

 인간은 갈 곳이 너무 많아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면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갈 곳이 없다는 말이나 갈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이나 나에게는 같은 말이었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목표 상실이라는 문제를 마주했다.


십여년간 또래와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공부하며 같은 일과를 마무리 했었다. 나에게 학교란 당연한 세상이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싶었다. 대학교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나를 고등학교 생활 내내 괴롭혔던 진로 고민을 접었다. 나는 막연하게 교사를 준비했었고, 결국 내가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3 말미에 깨닫고 어찌어찌 성적에 맞추어 생각지도 못한 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찌 보면 참 편한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현실을 맞닥뜨려야 해야 했다. 대학 생활은 이전까지의 생활과는 사뭇 다르다고. 학생 신분이긴 하지만 어엿한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삶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했다. 내 인생을 책임질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깨닫자 나는 더이상 막연한 낙관에 나를 내맡길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아야 했다.


20대 초반에는 대학교가 너무나도 커보였다. 대학교 밖의 세상은 나중이었다. 당장 나의 대학교 안에서 경외감을 느끼는 시기였으니까. 학과도 너무 많고, 수업도 너무 많고, 도서관에 책 종류도 엄청나구나. 동아리도 정말 많고 세상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나는 코로나로 인해 대학교를 가지 못한 2년의 시간동안 내가 경제학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방황이 시작됐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고 나를 찾지 못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경험이 너무 부족하니 뭐든 대학교 안에서 경험해볼 수 있었고, 나의 도장깨기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3학년때 아동복지학과로 전과를 했다. 학과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 아동복지학과 홈페이지에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에 뭔가 가슴 한 켠이 찌르르 한 것이 느껴진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의미있는 무언가를 어떻게든 배우고 싶었던 나는 복지, 인간학, 심리학이 한데 섞여있는 수업 커리큘럼을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문학적인 지적 소양을 기르고 싶었다. 정말 막연했다. 전과 면접 때 교수님이 학업 계획서를 보시고 진로가 너무 막연하다고 하셨다. 이 학과에서는 보육, 아동, 복지와 관련한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격증은 커녕 너무 막연하게 겨우 방향을 다잡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비어버린 나의 가슴을 채워줄 것이 무엇인지 대학교 안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결국 아동복지학과 전공에도 조금씩 열의가 떨어져갔다. 대체 무엇을 공부하러 매일 강의실을 드나드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당시에는 휴학할 용기가 없었다. 학교를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학교에 가야지만 무언가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점점 수업에 흥미를 잃었고, 내가 자주 향하던 곳은 동아리였다. 동아리에서 나의 열정을 찾았다.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피아노 협주자를 했었고,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에 도전했고, 버스킹 동아리에서 피아노 세션 반주와 노래도 해봤고, 흑인음악 동아리에서 작곡한 곡으로 노래도 불렀고, 창문학 동아리에서 글 한쪽도 써보았다. 그리고 내가 음악에 열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아리 생활은 모두 재밌었지만 한학기, 길어야 1년 활동을 했고 깊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대학교 자체에 말이다.


왜 유독 대학교 안에서 나의 방어기제가 커지고, 사람들과 깊게 친해지기가 어려웠을까, 왜 나의 소속감을 부정하려 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오히려 내가 대학교에 큰 집착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교라는 틀, 집단이라는 틀에 나를 옭아매어 그 속에 있는 개개인들의 가치를,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미처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나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고, 나이다. 내가 없다면 나를 둘러싼 피상적인 틀은 그저 무늬만 화려한 껍데기일 뿐이다.


내가 대학교 안에서 길을 잃었었던 이유는 대학교가 너무 커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그릇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대학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란 환상과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으러, 나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휴학을 하고 가끔 떠다니는 느낌을 받지만 그것이 나의 집착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떠다니는 것은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품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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