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이다
언제부터였는지 태어날 때 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없이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가던 길엔 바위도 있었고 나무도 있었다
낙원같이 물살이 없는 구간도 있었다
바람에 몸을 실어 이리~저리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도
나의 존재를 확인하곤
" 아 맞아! 나는 여기 있으면 안돼 "
하며 굳이 내려가길 반복했다
무얼 원하는지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나는 그렇게 또 바위를 만나 부딪히고
나뭇가지를 만나 상처 입으며
때론 쓰레기를 만나 더럽혀지기 까지 했다
사람들은 나를 짓밟고 지나가기도 하며 때론
돌멩이를 던져 나의 고통을 즐겼다
그렇게 흐르다 보니 또다시 물살이 없는
굳이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는 구간이 나왔다
'더이상 힘들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내면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흐르던 물은
그렇게 하염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상처받는 일 따위 없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와
나를 밝고 돌을 던지고 쓰레기를 버려두고 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꽤나 아팠던 바위와의 충돌
내 몸이 찢겨질 것 같았던 나뭇가지와의 만남은 없었으니.
이대로라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흐르던 시간이 어느샌가 나에게
초록색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꾸리꾸리한 냄새와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은 옷을 입혔다
사람들이 더이상 날 밟지도 돌을 던지지도 않았다
이젠 나를 그냥 무시하기 시작했다
죽은 개는 걷어차지 않는다 라고 했던가? 난 좋았다
더이상 밟히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테니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몸에서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점점점 갈색빛이 돌더니 나에게 났던 쿰쿰하던 냄새가
사람들이 던진 쓰레기와 비슷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놀던 물고기 친구들도 더이상 내게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더이상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거지........'
'난 그저 상처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갑자기 주마등처럼 옛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 바위에 부딪혀도 할 수 있어! 라는 말과 함께 다시 나아가고
나뭇가지에 큰 상처를 입어도 괜찮아! 하며 다시 회복하고
나와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물고기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하며
즐거워했던 나의 모습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던 바다에서 온 연어 아저씨의
판타지 같았던 바다에 대한 이야기.
잊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떠올렸다
"나는 바다에 가고 싶었던 물이었어!!"
그렇게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물살로 뛰어들었다
거뭇거뭇해졌던 나의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고 투명한 옷으로 바뀌었고
절망에 빠져있던 나의 표정은 이제 갓 태어난 물처럼
밝고 명랑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다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다시 한번
바다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우린 원래 망각의 동물이니까
잃어버린 건 다시 찾으면 되지.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