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만 믿고 따라와.
"우리 아빠는 같이 안 살아. 그냥 그렇게 됐어." 그 가 말했다.
김밥천국에서 라볶이를 먹는 중이었다. 꼬들꼬들한 라면에 매콤 달콤한 떡볶이에 나는 김밥천국에서 천국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고,
"우리 아빠는 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바람 폈어. 수능 보기 전날. 바람피우는 아줌마를 만났어. 무슨 노래 주점이었는데, 미금역에 있는 거." 내가 젓가락으로 단무지를 찌르며 말했다. "다들 그렇게 산대. 죽지 못해서."
20살 턱걸이로 간신히 들어간 지방대에서 만난 그였다. 우리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나는 나와 닮은 그가 좋았다.
"나도 그래, 근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는 안 그러면 돼. 아빠가 그랬다고 나도 그런 법은 없으니까." 그는 우엉김밥을 씹으며 다짐 같은 걸 했다.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잖아. 나는 안 그럴 거라고. 나는 바뀌어야 한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살아. 걱정 마." 내가 우엉김밥이 담긴 접시를 걔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부모가 그래서 뭐 대물림이 된다는 말, 그 말 다 개소리거든, 우리가 예외가 되면 돼. 안 그럴 거라고 노력하고 살면 돼. 살아볼래. 한번? 우리 외국 가서 살아볼래." 내가 그에게 말했다.
"외국, 좋지. 나도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가 웃었다.
23살. 우리는 김밥천국에서 외국을 꿈꿨다. 가진 것도 없어서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꿈이었다.
29살. 나는 이민가방 두 개를 들고 캐나다로 떠났고. 우리가 30살이 되던 해 캐나다 뉴펀들랜드 반지하에서 동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