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로 떠난다. 다행히 창가 쪽에 앉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을 때 창문으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본다. 높았던 빌딩이며 아파트들이 점점 작아진다. 그러다 점으로 변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아무것도 아니네 정말. 점점 작아져 구름이 덮어주네. 모든 것을. 더럽고 흉한 것들을. 과거를 아픈 지난날을.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이렇게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 난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를 했을까요. 엄마가 없다는 게 아빠가 알코올중독이라는 게 아니 내가 임대주택아파트에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건데 나는 내가 만든 작은 틀 안에 나를 끼워 넣었다. 그 안에서 삐져나온 가난 같은 걸 나는 감추려 애썼다.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으려 나는 날 치장했다. 웃음으로 과장된 몸동작으로.
생각이 무거워진다. 흠칫 고개를 돌려 내 주위를 둘려본다. 누구라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런 내 마음을 읽을까 두렵다. 흠흠 헛기침을 하고 비스듬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다.
마음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 몸속 어딘가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얼굴표정처럼 드러난다면 그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아픈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사람들이 내 마음상태가 어떤지 알 테니까 그럼 나는 날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난 거짓말쟁이라 짓이겨 찢어진 마음을 감추고 괜찮다 말했다. 괜찮다고 늘 말하던 어느 날은 내가 나까지 속일 수 있었다. 사실 난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 한다고 강요를 한 거였어 내가 나한테.
그래. 난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 혜영이 얘기는 그렇게 잘 들어주면서 막 박수까지 치면서 들어주면서 한 번도 난 내 마음의 소리는 듣지 않았다. 아니. 그냥 괜찮다고 삐져나오는 마음들을 큰 돌 몇 개로 누르며 살았다. 삐져나오지 못하게 울음 같은 게 아픔 같은 게.
"괜찮니. 이제 하나야? 살만해? 이젠 내가 날 아프게 하지 않을게."
새벽 커피숍 알바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했다. 새들도 울었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었다. 나도 모르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을 들었을까 목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아니 뭐 어때 욕한 것도 아니고 나쁜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여긴 캐나다잖아. 나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곳. 그럼 괜찮지. 더 이상 사람들 기대에 날 맞추지 않아도 되잖아.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되고. 포기하지만 말자.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다신 날 아프게 하지는 말자."
고개를 쑤욱 빼들었다. 분명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하늘도 햇살도 모두 어제와 같았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벌컥벌컥 올라왔다. 잘할 수 있다는 마음. 난 열심히 사니까 이렇게 계속 살면 뭐라도 되겠단 마음. 그런 마음들은 처음이었다. 너무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들 속에 온몸이 간질거렸다.
에취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렇게 살면 되는 거였어. 내가 날 믿고 무슨 일이든 날 믿고 하면 되는 거였는데. 난 그걸 몰랐네. 내 감정보다 마음보다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잖아. 점심 먹을 때도 먹고 싶은 음식메뉴도 이야기 못했잖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생의 큰 비밀을 캐나다에 와서 알아버렸네. 혼자 웃음이 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높다. 하늘. 나는 저기 위를 비행기를 타고 왔었지 한국에서 모든 걸 다 놔두고. 하루에 한 번씩은 하늘을 올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