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도착하다. 드디어

by 캐나다 부자엄마

밴쿠버에서도 젤 싸다는 방이었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 사람들은 바퀴벌레같이 득실거리며 서로 엉켜 살았다. 나도 그 중하나였고.


개의치는 않았다. 제일 싼 방. 한 달에 50만 원짜리 방이었으니까.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다. 어디 나라 사람인지 이름이 뭔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한국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얇은 커튼 한 장을 치고 가운데가 푹 꺼진 누레질 대로 누레진 이케아 매트리스에 한국에서 가져온 수건 하나를 깔았다. 목적은 돈이다. 일단 돈을 모으고 무엇을 할지 캐나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각하기로 했다.


단순한 게 좋다.


계획 없는 삶. 살아가는데 꼭 계획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원래 삶이란 건 그렇잖아. 계획이 없으니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으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지금은. 아직까지는.


그 집에서 난 주황색 노란색 꽃이 그려진 커튼 뒤에 살았다. 사람들이 집에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밥도 먹고 샤워도 했다. 작은 집에 일곱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나면 나도 그제야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닥까지 다 가려지지 않은 커튼 틈으로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흰색 양말을 신은 발. 햇빛에 그을린 검은 발. 언제 다쳤는지 모를 상처가 있던 발. 나는 사람들 얼굴대신 그들의 발을 보며 살았다.


처음 한 두 달은 느닷없이 거실에 불이 켜지고 문이 있는 힘껏 닫히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이 깼다. 짜증이 늘었고 언제 커튼이 젖힐지 모르는 불안감에 갇혀 살았다. 그 덕분에 일을 하나 더 구했다. 몸이 피곤하니 커튼 밖에서 난리굿이 나도 난 잠에 취해 있었다. 좋다. 잠을 잔다는 게 어떤 상황에서도 잠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게.


내가 사는 집에서는 모든 것이 각자였다. 화장실 휴지. 쌀. 샴푸니 치약까지 우리는 무엇하나 나누어 쓰지 않았다. 어떤 날 화장실에 내 두루마리 휴지를 깜빡 놓고 온날에는. 퇴근하고 저녁때가 돼서 들어가니 아침에 놔둔 휴지는 몇 칸 남지 않아 있었다.


각자 쓰는 것이 편하다. 누군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것이고 그럼 휴지나 주방세제를 쓰는 빈도도 더 늘어날 테니까. 내가 사는 곳은 같이 살지는 않지만 집주인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룸메가 나가거나 새로운 사람이 집에 들어올 때 집주인을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화장실 쓰레기를 버리고 주방쓰레기를 버리는 조건. 그리고 룸메들이 밤늦게까지 술파티를 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에게 알려주는 조건으로 방값을 $250불만 내기로 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욱 돈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살고자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고자 한다면,


정말 마음만 먹으면 어디라도 숨 쉴 구멍은 나타난다. 그것이 또 나아가는 힘이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잘 살기로 마음을 먹은 지금 변명은 필요하지 않다.


방한칸짜리 집. 거실을 커튼으로 반을 갈라 그곳에 살았다.


사실 내가 사는 곳은 문제가 아니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꾸려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새벽 2시 거실에 놓인 전자레인지에 누가 음식을 데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잔다. 잠으로 도망치자. 일단 잠을 자. 열심히 살았잖아. 오늘은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거야. 그렇게 하루를 정성껏 사는 거야.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는데 그럼 뭐라도 변하지 않을까.


일단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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