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이야기해요. 잘될 거라고 잘 살 거라고 내가 나에게 말을 해요. 무거운 슬픔에 가라앉는 내가 나에게 나에게 내가.
더듬더듬.
갈라진 손 끝으로 희망을 찾아요.
죽지 말자. 죽지 말고 오늘만 살아보자. 희망을 말해. 엄마, 아빠한테 맞아서 고막이 터진 엄마 얼굴을 보고 희망을 말해. 사랑을 말해요. 나아진다고 나아간다고.
찢어진 커튼 사이로도 별은 볼 수 있단다.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어요. 한쪽 귀를 붕대로 감고서. 들을 수 없어도 말할 수는 있잖아. 엄마.
우리 힘들고 엉망진창인 모습이라도 엄마가 그리고 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부둥켜 안 자고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어 아픈 맘이 조금은 괜찮아질 때까지 우리 그렇게 꼭 부둥켜안고 살자고.
엄마가 날 버린 날. 집을 나간 날. 난 엄마를 한참이나 기다렸어요.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올까 봐. 엄마. 바쁘게 나가다가 한쪽 손으로 애기 기저귀가방을 들고 한쪽손으로는 젖먹이 동생을 둘러업고 그렇게 바쁘게 나가느라 날 잊었다고 내가 날 위로했어요. 고작 여섯 살짜리가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자기를 위로했죠.
내 손을 잡아줄 엄마 손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올 거라고 어디다가 가방을 놓고 누구한테 동생을 맡겨 놓고 날 찾으러 올 거라고. 엄마. 엄마가 다시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았어요.
아빠가 때리는 것도 할머니가 욕하는 것도 견딜만했어요. 어차피 엄마가 오면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살면 잊힐 거니까. 그게 희망이었고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거든요.
엄만 일 년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강당에서 나는 혹시나 엄마를 기다렸거든. 나는 주위가 어둑 거릴 때까지 경비아저씨가 얘 너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해라고 할 때까지 엄마. 나는 그렇게 엄마를 기다렸어요.
근데 엄마는 오지 않았어. 그때부터였어. 엄마를 기다리지 않은 것 같아. 사실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엄마.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라도 우연히 라도 날 보면요. 아는척해요. 엄마.
나는 한국을 떠나요.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요. 아마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래도 그전에 엄마. 엄마 얼굴을 봤으면 좋겠어요. 그냥 잘 살아달라고 밥 한 끼 먹으면서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우리 서로의 숟가락으로 감자탕 국물만 떠먹어도 엄마 나는 그동안 내가 했던 고생들 모든 게 다 잊힐 것 같아 엄마. 그만큼 그리워해요. 내가 엄마를.
다 놓고 떠나고 싶어. 미운마음은 무거우니까 자꾸자꾸 날 가라앉게 만들잖아. 엄마.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들을 다 놓고 떠나려고 해요. 엄마.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더 이상 가라앉고 싶진 않아요. 가라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엄마. 내 주변은 새까매요. 엄마 소리는 들리지 않아. 나는 떠오를 수도 없게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아요. 그러다 잊히겠죠. 엄마로부터 아빠로부터.
잊힌다는 건 죽는 거예요. 아무도 날 찾지 않을 테니까. 엄마. 그럼 내가 선택을 해야 했어요. 선택하지 않으면 죽어요. 내가 그래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나 대신 선택을 해주겠죠. 그럼 난 또 그 선택에 날 끼워 맞춰 숨을 맞추고 살겠죠. 엄마. 난 이제 그만 그렇게 살래. 설사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모하다고 해도요. 엄마 나는 내가 선택한 인생에 책임을 지고 살래.
그래서 엄마, 좋은 것만 좋을 것만 생각하고 싶어. 우리 너무 힘들었잖아 엄마. 너무 오래 힘들었어. 정말 길었잖아요. 이제 그런 거 그만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는 거예요. 나중에 정말 나중에라도 우리 다시 만나면 그래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엄마 내가 마지막 용기를 내요.
나를 찌르고 내 살갗을 벌리며 벌벌 기어 나오던 악한 것들을 보는 대신 엄마. 난 그 용기로 날 죽이려던 맘으로 엄마난 떠나요. 모든 걸 놔두고 떠나기로 했어.
그래서 떠나요.
돌아오는 비행기 표는 끊지 않을 거예요. 돌아오지 않을래요. 엄마. 아픈 것들 봉선화 꽃잎처럼 다 짓이겨 뻘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것들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아요.
엄마 괜찮아. 난 엄마 이제 안 미워해요. 그 말을 해주고 싶어. 혹시라도 내가 엄마 미워한다고 생각할까 봐. 그런 날카로운 마음을 끌어안고 살까 봐 엄마. 아물어지지 않은 마음에 엄마가 또 상처를 낼까 봐서 엄마. 나. 엄마한테.
나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보내지 못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그날 저녁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물론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끊지 않았다. 달려보자. 숨이 터질 듯이 바닥을 치고 다시 떠올라. 훨훨 날아라. 가슴속에 날개가 찢긴 새 한 마리를 품고 살았다.
이젠 그 새를 저기 끝 모를 하늘에 한없이 멀리 날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