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았거든. 할머니. 한동안 괜찮았어요. 마음이 생각이. 모든 게 다.
이불을 탈탈 털었어요. 먼지 같은 게 떨어져 나가라고 햇빛에 좀 말려놓으려고요. 이불을.
요즘 캐나다는 햇볕이 좋아. 그래서 이불을 넣어놓으려고 했어.
이불을 털다 17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 거실에서 이불도 못 덮고 누워 잠든 할머니가 생각났어. 그날 난 스타벅스 알바를 했거든. 집에 오니까 새벽 한 시가 넘었어. 날 기다린 걸까. 할머니. 현관 불이 꺼질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할머니를 봤어요.
삶이 되다. 사는 게 힘들어. 고작 이 불 한 장 꺼내서 덮지도 못할 만큼 삶이 힘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싸우는 게 아니라 나가 죽어라 욕하는 게 아니라요. 할머니.
저녁엔 뭘 먹었고 요즘엔 뭐가 재미있고 뭐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그럼 나는 적어도 할머니사랑을 받은 어른이니까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거든 그럼 사회에 나가서도 꿇리지 않으니까. 할머니.
가끔 주저앉을 때가 있어. 나는 여전히 미역처럼 여기저기 휩쓸려 다녀요. 그래도 할머니가 날 사랑해 줬다는 걸 기억해. 밥 굶지 마라 했을 때. 난 내 맘대로 그게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사랑받은 기억으로 힘든 날을 버텨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