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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부자엄마 Nov 16. 2024

6살. 성추행의 기억.

성추행범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예요. 그때 아저씨가 성추행했던 여섯 살짜리 꼬마. 이제는 나도 40이 넘었어요. 3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니까. 아저씨는 60 아니면 70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새벽 3시. 불 꺼진 수영장에 가 본 적이 있나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은 찰랑거리는데 어디서 또-옥-똑 물방울 몇 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주위는 어두워요. 그때일을 생각하면 내 맘이 그래요.


사실. 이 말은 누구한테도 하지 못했어요. 나는 피해자니까. 근데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잖아요. 피해를 본 건 난데 나는 자꾸 숨었거든요. 그러다 결국 캐나다까지 숨어버렸네요.


나는 그때 여섯 살이었고 아저씨는 윗집 언니네 학습지 선생이었어요. 그날 나는 학교 끝나는 언니를 기다렸어요. 아파트 계단에서. 그때 낯익은 아저씨가 나한테 인사했고 내가 좋아했던 분홍색 팬티에 아저씨가. 손가락을 집어넣었었는데.


기억나? 아저씨? 


나는 그 기억이 자꾸자꾸 나. 한 달에 한두 번. 생리하기 전인가 보다. 몸이 좀 힘든가 보다. 그러면 꼭 그 생각이 나.


엄마랑 산부인과에 갔어요. 그날. 그때는 산부인과라고 했으니까. 그 조그만 애가 쇠막대에 다리를 올려놨어요. 여자 선생님이 약을 발라주었고 쓰라렸어. 앞부분에 작은 분홍 리본이 달린 팬티는 그날 버렸어요. 내가 아끼던 거였는데. 그날 이후 내 마음이 어떤지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부끄러운 건가 보다 잘못한 건가 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어요.


그것만 빼면, 정말 그때일만 썩은 감자처럼, 칼로 도려내면 나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나는 안될 거라고 선을 그었어요. 그러다가 손목에 선도 그었어요. 아저씨는 나를 그렇게 망쳤어요. 


사실. 아저씨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요. 누가 그러던데 너무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 마음속에서 지운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서 뭔가가 나를 보호하려고 했나? 기억이 안 나. 세세하게.


마음에 있던 오래된 낡은 매듭이었어요. 아저씨가 나한테 한일. 모든 건. 다 거기에서 시작을 했으니까. 글을 쓴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덕분이었네요.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궁금하진 않아. 다만 또 손가락을 잘못 놀리고 살지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은 있었지. 나는 당신에 대한 마음은 없어요. 절대 꺼내면 안 되는 기억이라 발로 꾹꾹 눌러 담았는데 그 기억이 나를 오랫동안 아프게 했어. 


그때 마음을 꺼내요. 마주하고 싶지 않던 기억인데, 이렇게 글로 쓰니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 나 혼자 더 무섭고 더 아프게 생각을 보탠 것 같아. 글을 쓰니까 알겠어.


나는 더 이상 불쌍한 여자애로 살지 않아요.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서도 살아가면서 내가 받았던,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들을 나는 이렇게 글을 쓰기로 했으니까. 어쩐지 단단해진 느낌도 들어요.


그 기억 덕에 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 마음 아픈 사람들. 사는 게 지옥이라 늘 죽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


몇 번의 기억을 더 씹고 몇 번의 글을 더 쓰면 마음이 편해질 것도 같아. 막상 꺼내보니 시시한 거였는데 나는 그걸 30년 넘게 마음에 품고 살았네.


마음을 태엽처럼 돌려. 시곗바늘처럼 돌리고 돌려. 그때로 돌아가. 내가 6살이던 그때. 불 꺼진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나를. 아직 국민학교도 못 간 그 어린애를 어른이 된 내가. 나이가 40 먹은 내가 안아줘.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 네 잘못 아니야. 토닥토닥 등을 토닥여줘. 눈물을 닦아줘. 얘기해 줘. 잘 견뎠다고. 혼자서. 이제는 괜찮다고.


아픈 마음을 꺼내. 가만히 들여다봐. 그랬구나. 아픈 마음을 껴안고 같이 사는 법을 배웠어.

아픈 마음도 나였음을. 그렇게 누르지 말아야 했는데. 나까지 나를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살았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안아줘. 괜찮다고.



변태새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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