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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국은 날 싫어해.

by 캐나다 부자엄마

스물아홉.


한국은 날 싫어한다. 하긴 지방대 자퇴생에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날 누구라도 좋아할 리가 없다. 나 빼고 모두 다 잘난 사람들. 가장 친한 친구 영지는 증권회사를 다닌다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중학교 동창 석준이는 분당에 집을 샀고. 난 방구석에 앉아있고 세상을 원망한다. 한국은 날 싫어해.


여기서는 방법이 없다.


스무 살의 마지막. 스물 그리고 아홉. 난 곧 서른이 된다. 모은 돈은 없다. 얼굴도 예쁘지 않고 몸매도 뭐 별로다. 피부도 안 좋고 이도 누래. 거울 앞에서 입을 벌려본다.


조목조목 내 얼굴을 뜯어본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나는 별로인 사람. 별로인 사람은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


난 유치원에서 일을 한다. 월급은 130만 원. 그래도 많이 오른 거다. 처음엔 90만 원을 받았다. 아니 95만 원이었던가. 기억이 안 난다. 먼지처럼 월급은 늘 사라지니까. 기억에 없다.


한 달에 130만 원을 받는다. 핸드폰비로 3만 5천 원이 나간다. 알뜰폰을 쓴다. 교통비는 5만 원. 되도록이면 걸어 다니려고 해. 운동 겸 돈을 아낄 겸 해서 걸어 다닌다. 난 늘 한 번에 두 가지를 해야 해. 가성비를 늘 따져야 돼.


뭐라도 될까 등록한 영어학원은 20만 원을 낸다. 돈이 무서운 게 돈 때문에 돈 덕분에 영어 학원에 한 번도 빠지진 않았다. 옷은 이마트 매대에 있는 걸 사 입었다. 나도 멋 부리고 싶다. 돈이 없으면 멋 부리는 대신 꼴을 부리게 된다. 식비에 생활비에 뭐 비싼 것도 안 사 먹는데 50만 원이 훌러덩 갯돌 위에 올려진 빤스처럼 미끄러져 나간다.


난 미래가 없다. 난 돈도 없다.


한국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로또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권을 샀냐고? 아니, 돈 아까워서 안 샀다. 그래도 내가 로또에 당첨되길 바란다. 있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되는 꿈을 꾼다. 나는 엄마말처럼 이상한 애다.


한국은 날 싫어해.


유치원에서 같이 일하는 신시아에게 말했다. 걔는 나랑 동갑내기 영어 선생이다. 캐나다에서 왔다고 했다. 캐나다에선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였는데 한국에선 영어를 가르친다. 나는 걔의 몸종과 시녀의 중간. 청소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해준다. 그래도 난 130만 원을 받고 걔는 350만 원을 받는다. 걔는 사는 곳도 받고 비행기표도 받았다.


그것 봐. 한국은 날 싫어해.


신시아가 말했다. 그럼 캐나다로 가봐. 캐나다는 널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럴까? 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했지?

팔랑거리는 귀에 온몸이 요동친다. 남의 말 한마디에 모든 걸 건다. 그래. 캐나다는 날 좋아할 수도 있지.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캐나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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