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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고 2만 원, 캐나다 취업사기의 정말. 전말.

by 캐나다 부자엄마

사기를 당했다. 돈을 날렸다. 홀랑.


아니, 벌 때는 쌍코피가 터지도록 온몸을 갈아 돈을 벌었다. 돈이 없어지는 건 정말 쉽더라. 눈 감으세요. 하나 둘 셋. 그 셋을 다 말하기도 전에 사라졌어. 그게 돈이더라.


천만 원을 날렸어. 그게 어떤 돈이냐면 하루에 세네 시간 자고 그래, 어떤 날은 두 시간도 못 자고 번 돈이었어. 먹고 싶은 통닭을 참아가며 피자 콜라대신 피자에 물을 마셔가며 모은 돈. 쪼그리고 앉아 변기를 닦으며 번 돈이었거든. 이름 모를 누군가의 노랗고 누런 오줌방울을 닦아가며 번돈.


새벽 4시 청소로 시작해서 8시에 유치원 출근 오후 6시에 스타벅스 출근 스타벅스 마감이 끝나면 새벽 한 시 정도 되거든. 그리고 집에 가면 신발에서 썩은 내가 나는 거야. 얼마나 빨빨거리고 뛰어다녔는지. 그렇게 번돈이었어.


내가 겨드랑이 암내가 없던 사람인데 그때 이후로 암내가 생겼다니까. 정말이야.


주말에는 계란 공장에 가서 돈을 벌었지. 닭똥냄새가 얼마나 역했는지 알아? 샤워하고 초록색 오이 비누를 머리통에 박박 문대도 닭똥냄새가 안 빠져. 어떤 날은 내가 닭똥인지 사람인지 헷갈렸다니까. 그렇게 번 돈이었어. 쇠 빠지게. 근데 그걸 다 날린 거야. 마술인지 알았다니까.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마술. 흔적도 없이.


캐나다에서 취업을 시켜준디야. 첨엔 돈을 650만 원을 내면 된다고 해서 줬거든. 다음엔 뭐 홈스테이 비용이니 픽업비용이니 돈을 계속 달라는 거야. 믿었지. 철석같이 믿었지. 내가 예수님 부처님도 안 믿는데 그 인간이 하는 말은 철석같이 믿었거든. 왜 믿었냐고? 캐네디언이니까. 백인이니까. 설마 거짓말하겠어. 캐네디언은 착하다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쏘리를 잘한다며.


지랄.


아무튼 그게 나야. 취업사기 당하고 돈 날린 애. 아니 무슨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흉한겨. 눈뜨고 차마 볼 수가 없어. 하긴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 불만 보면 뛰어드는 오징어처럼 그냥 뛰어든겨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나는 오징어여. 인간 오징어.


일단 한국에서 들고 온 물건을 다 팔았어. 친구들이 사준 부자김이며 고추참치도 다 팔았어. 책이며 옷이며 돈 되는 건 다 파는 거야. 그 와중에 깎아달라는 아줌마는 뭐여. 아니 여보세요. 헬로우. 같은 동포끼리 좀 도와줍시다. 아무튼 길가에 버려진 캔도 좀 줍고 가지고 있는 돈을 싹싹 긁었어, 쇠 숟가락으로 반쪽짜리 수박을 긁는 것처럼 바닥까지 싹싹 긁었어.


그 돈으로 뉴펀들랜드 비행기표를 끊었지. 계획이 있었냐고? 아니. 나는 무계획이 계획이야. 사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잖아. 내 계획에는 취업사기 같은 건 없었다고 그때부터 난 계획이 없어. 그게 내 계획이야. 계획 없이 살기.


뉴펀들랜드에 오고 나서 반지하를 구했어. 젤 싼 거. 집 보러 간 날 반지하 문을 여니까 벌레가 있더라. 그 발 많은 애들 알지? 울 엄마는 걔네를 돈벌레라고 불렀어. 걔네들이 뽀르르 사라지더라. 그런 벌레는 안 무서워. 난 사람이 더 무섭더라. 암튼 그렇게 반지하를 구했어.


한 달에 $550불. 한국돈 오십 오만 원 정도. 방 한 개짜리 반지하. 가구가 하나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반지하. 바닥 카펫이 다 해진 그곳에서 난 살았어.


일단 팀홀에서 젤 싼 핫초코 한잔으로 자축을 했어. 핫초코가 한국돈 천오백 원도 안 하더라. 그걸 마시고 컵을 집으로 가져왔어. 그걸로 물도 마시고 양치컵도 했어.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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