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굳었다.
블랙 프라이데이 11월 29일.
길가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5시 15분에 퇴근을 했다. 5시 반까지 딸아이를 데이케어에서 픽업하기 위해 빨리 걷다 못해 뛰는 중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다운타운에 행사가 있는 날인가?'
유모차를 밀고 상점 몇 개를 지나칠 무렵. '블랙 프라이데이 50% 할인'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오늘 블랙 프라이데이구나.' 오래된 그릇을 바꿀까? 일할 때 신는 신발을 바꿀까 하다가 집에 있는 물건들이 생각난다. 집은 조그만데 짐은 어찌나 많은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사는 것이 아니고 비우는 것임을 깨닫는다.
캐나다에서 직장을 잡고 돈을 벌던 해. 그해의 블랙프라이데이나 박싱데이에는 뭔가에 홀린 듯이 뭔가를 샀다. 팔목에 4~5개의 쇼핑백을 주렁주렁 걸고도 무엇을 더 살까 다른 상점에 들어갔었다. 그때 샀던 옷 중에 대부분은 아직도 이고 지고 살고 있다.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참 돈은 힘들게 벌고 쓰는 건 쉽다.
아이덕에 쇼핑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모차를 밀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상점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다.
아이덕에 이렇게 돈을 아낀다. 무언가를 사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직장이며 육아며 집안일에 지친 나는 쇼핑할 에너지가 없다.
무엇보다.
50% 세일이니 60% 세일 보다 안 사는 것이 100% 세일임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