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냐. 임마?
"야, 오늘도 경운기 타고 왔냐? 소똥냄새, 지린다. 지려."
너 기억나?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 땐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내가 분당에서 살다가 용인으로 이사를 갔고. 그때 네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에게 말한 거야.
탈탈탈탈탈. 네가 입으로 경운기 소리를 내며 나를 한 바퀴 빙 돌아가며 히죽거릴 때 사실 나 너 죽여버리고 싶었어. 성가셨거든. 짜증 나고.
우리 반에 잘 나간다는 일진 애들이 있었잖아. 그리고 한 학년 꿇였다던 우리보다 나이가 한 살인가 두 살 많은 오빠도 있었고. 걔들이 너를 돼지새끼니 뭐니 하면서 심부름시키고 할 때 쩔쩔매던 네 얼굴을 나는 내 책상에 팔을 포개고 누워서 다 봤어. 재밌었거든.
너는 그런 애였잖아.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등치는 곰만 한데 하는 짓거리라곤 4살짜리 여자애만도 못한.
우리 아빠가 너도 알만한 대기업을 다니다가 관두고 그렇게 된 거였거든. 용인으로 이사 간 게. 나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 집에 돈이 없다는 게. 용인에 사는 애가 분당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게 약점이 되고 놀림이 된다는 게. 난 그때 한창 예민한 고등학생 여자애였으니까.
내가 그때 너 덕분에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 부자가 돼서 분당 아파트에 다시 사는 게 내 꿈이었다. 웃기지?
너는 어떻게 지낼까?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되었을까? 그래서 아직도 분당에 살고 있을까? 나는 캐나다에서 살아. 여기서 산지 15년이 되었어. 몇 년 전엔 아이슬란드 백팩킹도 갔거든. 세상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넓더라. 거기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그때 했던 고민들. 그때 내가 너에게 품었던 나쁜 감정들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세상은 넓고 내가 하는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아직도 너보다 약하고 만만한 애들 괴롭히고 다니니? 나이 40 넘어서?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궁금해졌어. 너는 무얼 하고 살까?
분당이 세상 전부였던 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랜만에 네 기억이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