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를 사랑하기에 유혹되어 따라간다
인간은 수(數)를 사랑하기 때문에 수(數)에 유혹되어 그것에 복종한다. 눈덩이의 크기가 작을 때는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굴리는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그 움직임을 통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눈덩이가 어느 정도 커지고, 스스로 크기를 키워 나가기 시작할 때, 더 이상 굴리는 사람의 힘이 그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사회나 종교 단체 조직의 속성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처음 단체를 만들어 어느 정도 성장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들어가지만, 조직이 스스로 커져 갈 수 있는 경계점 도달했을 때부터 조직은 알아서 스스로 커진다. 그때가 되면 인간이 조직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인간을 통제하게 된다. 처음에는 조직이 인간을 위해 존재했지만, 점차 인간이 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물론 조직의 규모가 얼마나 커지느냐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시대적(사회적) 환경, 구성원의 역량, 사회 윤리적 성격 등등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축복의 기준이 뭘까?
수(數)의 크기에 따라 신(神)의 은혜와 축복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단체의 구성원의 수(數)가 많으면 큰 은혜를 받은 것이며, 신(神)으로부터 크게 쓰임 받는 단체이고, 신(神)의 종이다(?). 그럼 구성원의 수가 적을 경우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렇게 수(數)에 따라 축복을 평가하는 종교인들의 신(神)은 '알라'나 '야훼'가 아니라 수(數)이다. 수(數)는 세속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어떤 기독교 신학자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 안에서 조차 수(數)를 찾아 의미를 분석하고, 수(數) 안에서 하나님을 뜻을 찾는다. 그리고 아주 크고 비밀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발표를 한다. 이런 신학자들은 성경조차도 수(數)의 시스템 속에 가두어 놓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현재 삶 속에서 과연 수(數)의 지배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이 수(數)로부터 얼마나 자유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수(數)의 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유목적 공동체 (Nomadic Eccl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