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시크릿 #1] 지정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러시아의 '뎁스'
몇 년 사이 가장 시끄러운 나라 러시아.
2022년 시작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며 긴 소음을 내고 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전쟁 4년 차인 현재 러시아 측 사망자는 9만 5천여 명.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친러 민병대 숫자를 더하면 2만 명을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곰국'이라는 별명처럼 국제무대에서 힘깨나 쓰는 나라지만 지속된 전쟁으로 불곰도 지쳐가는 모양새죠.
Ⅰ. 뎁스의 나라; 러시아의 전략적 종심
지정학적 시각에서 볼 때, 러시아는 뎁스가 좋은 나라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러시아의 크기는 1,700만 제곱킬로미터.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80배. 미국, 중국의 2배쯤 되는 뎁스를 갖고 있습니다.
군사, 지정학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전략적 종심이 깊은 나라라고 말합니다.
좀 어렵게는 'Strategic depth'라고 하는데요. 광활한 영토는 침입자의 공격을 지연, 분산시키고 아군이 대응할 시간을 벌어줍니다. 천연가스를 비롯한 풍부한 자원은 전쟁 수행의 지속력을 뒷받침하죠.
세계를 휩쓴 무적의 군대라도 러시아 땅에 들어서면 첩첩산중, 점입가경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막강했던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러시아의 전략적 종심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죠.
서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Petersburg)부터
중앙아시아 → 동토 시베리아를 지나 → 사할린을 건너 → 알래스카가 닿을 듯한 극동의 추코트카 자치구(Chukotka)까지. 지도를 보면 그 뎁스가 가히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집니다. 바로 그게 오늘날까지 러시아를 지탱해 온 근간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러시아 땅이 또 있습니다. 밖으론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땅이죠.
이미 어마어마한 땅부자가 다른 곳에 투기라도 한 걸까요? 러시아에서 유럽을 향하는 길. 발트해에 접한 땅, '칼리닌그라드'이야기입니다.
Калининград
Kaliningrad
Ⅱ. 우리 땅 밖 우리 땅; 러시아의 월경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7시 방향으로 내려오면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만납니다.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는 그 바로 아래, 정확히는 리투아니아 남부와 폴란드 북부 사이에 있죠. 뭔가 좀 생뚱맞게 끼어있는 모양새입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월경지입니다. 월(越), 경(境). 말 그대로 경계 너머의 땅이라는 뜻이죠.
월경지(越境地): 특정 국가나 행정 구역에 속하면서, 본토와는 떨어진 곳. 그 주변이 다른 나라 행정구역에 둘러싸인 곳.
사전에서는 월경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고립지, 포위지역이라고도 하죠.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말고도 벨기에의 바를러 Baarle-Hertog, 아제르바이잔의 나흐츠반이 대표적인 월경지입니다.
'나라 밖의 나라 땅'은 왜 생기는 걸까요?
소위 말하는 알박기도 아니고, 한창 남의 땅들 사이에 왜 우리 영토가 불쑥 끼어들어 있는 건지 의아합니다.
사실, 요즘처럼 국가의 개념과 국경이 확정되기 이전에는 그리 낯설지 않던 일입니다.
중세 때만 해도 그랬죠. 봉건사회의 영주들, 특히 힘이 센 영주들은 A라는 본토를 다스리면서 그곳과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영토 B를 할양, 상속받아서 동시에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그림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옅어집니다.
각자의 경계와 행정구역을 명확히 갖춘 국가가 등장했고, 국제사회의 질서와 규범이 점차 확립되면서 생뚱맞은 땅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는 욕심이 상당한 영주입니다.
세계 육지의 11%를 본토로 차지하고 있으면서 거기서 떨어진 곳에, 작은 땅까지 또 가지고 있으니까요.
칼리닌그라드의 면적은 우리나라 강원도 수준.
러시아라는 땅부자 영주가 이 작은 영지까지 얻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이 아담한 부동산에 집중하는 이유를 짚어봅니다.
Ⅲ. 쾨니히스베르크, 독일의 자존심
원래, 고대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발트계 원주민인 '프루센 종족'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고유 언어인 발트어를 사용했고 농경과 어업으로 생계를 이었죠. 자연 신앙, 애니미즘을 진리로 따랐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땅의 성격이 변한 건 13세기, 신성로마제국 시절입니다.
당시 교황청은 이 지역에 관심을 두면서 '십자군'을 파병합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교도의 땅을 흡수해서 자기들의 패권을 강하게 하려던 의도였죠.
이교도와 잘 싸우기로 유명한 독일의 '튜튼 기사단(Teutonic Knights)'이 프루센 정벌에 앞장섭니다.
중동, 예루살렘으로만 간 줄 알았던 십자군이 '북방 십자군(Northern Crusades)'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까지 미쳤다는 사실. 그렇게 기독교 권력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을 들쑤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북방 십자군은 프로센족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지우고
1255년, 그곳에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는 거점을 세웁니다. 이교도를 물리친 자리에 자기들의 기지를 구축한 셈이죠.
이후 중세가 되면서 튜튼 기사단은 해체됐고
쾨니히스베르크 지역에는 프로이센 공국이 들어섭니다. 동프로이센이라고도 하는데요.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에서 이 땅의 원주민 프루센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공국(Duchy)'이란
왕보다 낮은 통치자, 즉 공작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 의미대로 당시 프로이센 '공'국은 폴란드 '왕'국 아래에 속했죠. 공국, 왕국, 제국의 차이를 간략히 짚어봅니다.
공국: 왕보다 낮은 군주인 공작(Duke)이 다스리는 독립, 반독립 국가
왕국: 왕(King)이 통치하는 독립 국가
제국: 왕 위의 왕 황제(Kaiser)가 통치하는 거대 주권 국가. 여러 민족, 지역을 다스림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난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는 훗날 소련군대가 들어올 때까지 독일 중에서도 독일의 정체성이 짙은 지역으로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Northern Crusades → Königsberg
→ 프로이센 공국 → 프로이센 왕국
다시 시간이 흐르고 프로이센 공국은 신성로마제국 산하에 있던 브란덴부르크와 합병되면서 프로이센 왕국이 됩니다. 하나 흥미로운 건, 그 왕국의 대관식이 브란덴부르크의 중심인 베를린이 아닌,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열렸다는 거죠.
왜 동프로이센이었을까요?
① 당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신성로마 제국 산하였기 때문에
② 자체 왕국이 되려면, 황제의 결재가 있어야 했습니다
③ 여러 조건들이 협의되면서 황제는 왕국을 인정했지만
④ 자기들 영토 밖에서의 왕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⑤신성로마의 영토 안에서는 왕국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성로마제국 산하의 브란덴부르크 지역이 아닌, 동프로이센 지역에서 프로이센왕국의 왕 즉위식이 열리게 된 겁니다. 당시 그쪽은 신성로마가 아닌, 폴란드 왕국 산하 공국이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이런 흐름 속에서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의 상징성은 한층 커집니다. 정치적으로, 또 군사·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말이죠.
쾨니히스베르크에
게르만이라는 페인트가 두껍게 칠해지다
그렇게, 프루센 족이 누비던 발트해 근처의 땅은 십자군의 침투, 그리고 공국과 왕국을 거쳐서 마침내 1871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고 게르만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합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칼리닌그라드의 과거, 독일 땅이었던 쾨니히스베르크의 스토리죠.
자 그렇다면, 쾨니히스베르크는 어떻게 칼리닌그라드가 됐을까요? 이제부터는 소련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Ⅳ. 게르만에서 슬라브로, 함락된 쾨니히스베르크
19세기 후반,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전역의 공국, 왕국들을 통합해서 독일 제국을 이뤄냅니다.
독일 역사상 최고의 외교력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받는 그 유명한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중심에 섰죠.
제국 시절, 동프로이센의 수도가 된 쾨니히스베르크는
게르만 스타일을 상징하는 도시로 담장을 높입니다.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라는 페인트가 두껍게 칠해졌죠. 게르만의 정체성이 도시에 오롯이 담깁니다.
하지만, 독일의 자부심이던 이곳도 전쟁을 피해 가지는 못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두 번 모두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 침입합니다.
사실 1차 대전에서는 독일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죠.
당시 러시아군은 부대를 1군과 2군, 두 그룹으로 편성하고 각각 다른 쪽에서 동프로이센 땅으로 침입했는데요. 탄넨베르크 전투(Battle of Tannenberg), 마주리안호 전투(Battle of the Masurian Lakes) 같은 굵직한 싸움에서 독일에 완패합니다.
독일은 이 승전을 <동프로이센의 수호>라고 명명하면서 단결을 도모했고 이 지역의 상징성과 자부심은 더 높아졌죠. 그 시기에 강렬하게 자라난 '게르만 우월주의'는 이후 나치 정권의 '반슬라브' 코드로 연결됩니다. 과잉된 자의식이 웃자라 재앙을 부른 셈입니다.
East Prussian Offensive
동프로이센 대공세
두 번째, 2차 대전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1945년 소련이 된 러시아는 '동프로이센 대공세'에 집중합니다. 이 작전은 1945년 1월부터 4월까지 이어졌는데요. 소련군은 제1 발틱 부대(1st Baltic Front)와 제3 벨로루시 부대(3rd Belorussian Front)라는 두 개의 군단급 제대를 편성해서 프로이센을 공략했습니다.
게르만의 상징이던 동프로이센은 여기에 격렬하게 저항했죠.
그에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붉은군대의 손실이 많았고, 소련의 포격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요. 이후 공격 경로의 전환, 포위작전 같은 소련군의 전략이 먹혀들면서 결국 독일의 요새, 쾨니히스베르크를 빼앗습니다. 이 쾨니히스베르크를 점령하는 시가전에만 사흘이 넘게 걸렸다는 점에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1945년 4월 9일 독일 수비대는 소련군에 항복을 선언합니다. 소련이 독일 본토를 처음으로 점령한 거죠.
점령 이후 소련은 그곳의 독일물을 철저하게 빼냅니다.
게르만 스타일과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었으니까 그만큼 더 게워내고, 자기들 스타일로 바꾸려 애썼던 거죠.
우선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라는 간판부터 떼어냈고 그 자리엔 러시아식의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후로는 도시 철거/재건 프로젝트가 돌아가죠. ①눈에 거슬리는 독일 스타일의 교회, 성문 같은 건축을 주저앉혔고 ②수십만의 독일계 시민들을 강제 추방하는 동시에 ③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사람들을 칼리닌그라드로 이주시킵니다.
게르만의 땅, 칸트의 도시에 붉은군대가 들어온 겁니다.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를 칼리닌그라드로 가져와버린 러시아는
2차 대전 이후 차디찬 냉전의 시기, 또 급변하는 현대 세계질서 속에서도 이곳을 잃지 않습니다. 사수하려 부단히 노력했을 겁니다.
현재 칼리닌그라드주의 인구는 100만여 명. 면적은 15,000 제곱킬로미터.
면적은 러시아 연방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하지만, 인구수로는 중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게 이 땅은 광활한 본토만큼이나 중요한 지역일 겁니다.
서구세력에 대한 완충지대이자 세계를 향한 통로로서 말이죠.
글 = 이상엽 ⓒ 3POINTS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