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된 유괴 사건
꽃이 지고 난 자리마다 연두 잎이 피는 4월의 끝쯤이었다.
6. 7세 유아 20명 혼합연령으로 운영되는 해님 반의 담임으로 학급을 운영할 때였다. 유아의 개성과 발달단계의 격차가 커서 차이로 운영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오뉴월 하룻볕’이라는 유아들의 성장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다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하룻볕이 아니고 2년 즉 730일 볕의 차이가 나는 아이들 20명이 함께 생활하니 황당하고 난처할 때가 자주 생겼다.
2023학년도의 혼합연령의 학급당 유아 수는 16명이지만 불과 2000년까지 20명에서 25명까지 구성하였다.
이야기 나누기, 노래 부르기, 동화 등 유치원 교실에서의 활동은 교사 1인이 20명의 유아와 활동하기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입학하여 5월까지 유치원 생활 중 가장 어려운 활동은 점심 급식이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기에 유치원 교실에서 손을 씻고, 실내화를 신은 다음 초등학교의 긴 복도를 지나, 본동과 후 동을 연결하는 긴 도복 도를 걸어가 급식실에 도착, 차례로 줄을 서서 식판에 음식을 받아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 것이 유아들에게는 어려운 임무였다. 식탁에 앉아서도 수저를 놓치는 유아, 자기 자리를 못 찾아서 우는 유아, 편식이 심한 유아, 먹는 속도가 너무 느린 유아 등 음식의 선호도, 먹는 속도가 다른 유아들이 함께 같은 음식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런 유치원 급식 시간과 허둥대는 교사를 보며 급식실의 왕언니 조리사님의 덕담 한마디 날리곤 하셨다.
“아이고 우리 유치원 선생님 저 아수라장에서 애들이랑 밥 먹어도 살만 잘 찐다. 용해다 용해”
초등학교 형님들의 급식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 먼저 급식을 마친 열 명을 하모니 선생님이 출근하며 교실로 데려가고, 늦게 밥을 먹는 유아 열 명은 내가 데리고 유치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식 운영의 방법이었다.
교직 생활 중 최고의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식판을 정리하는 유아를 도와주고 먼저 식판을 정리한 유아들이 줄 서는 곳으로 갔을 때, 우리 반 개구쟁이 F4 중 2명이 없어진 것이었다. 교실로 먼저 간 것 같아 서둘러 교실에 가보니 교실에도 없었다. 하모니 선생님께 유아들을 부탁하고 다시 급식실로 초등학교 교실로 운동장으로 유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세 바퀴 돌아도 재현이와 은재는 찾을 수 없었다. 유치원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어서 유괴에 대한 염려는 없었으나 차도와 가까운 문제가 있어서 늘 교통안전교육을 중시하였다. 안전사고는 이른 시간에 조치하여야 한다는 안내서에 따라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차도까지 유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다. 어느 곳에서도 유아들은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부모님께 연락 해 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유괴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시골 마을이라는 안도의 마음과 세상에 일어나지 못 할 일은 없다는 불안한 마음이 교차하였다. 머리카락이 선다는 말을 체험한 40분의 시간이 지나고 마을 이장님께서 방송하자 거짓말처럼 두 아이가 유치원으로 뛰어왔다.
안전하다는 반가움과 학교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행동에 원망을 섞어
“재현아 은재야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화가 난 교사의 말에 심각함을 인지한 두 아이의 눈은 놀란 토끼눈을 하였다.
“급식실 앞에 하얀 강아지가 와서 강아지 따라갔어요”
“너희들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 들었어? 못 들었어?”
“들었어요” 약속이나 한 듯이 둘이서 동시에 대답하였다.
“야 그런데 왜 대답 안 했어?”
“못 들은 척하기로 했어요.” 이런 제안을 한 유아는 동참한 유아보다 잘못이 크다는 생각에 난 그렇게 하자고 제안한 녀석을 더 혼내려는 보복의 마음으로 집요하게 물었다.
“누가 먼저 그러자고 했어?”
“마음이 그러자고 했어요.” 은재의 대답
“야 선생님이 시 쓰지, 니가 시 쓰냐!” 이 사건은 은재의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정직한 대답이 나에게 알 수 없는 영감을 주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래 마음을 꼬여 데려가는 것이 “유괴”의 뜻이라면 재현이와 은재는 강아지에게 유괴당한 것이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유괴당할 때가 있었다. 사시사철 변신하는 이름 모를 들꽃의 변화, 1년 동안 애쓰고 키워 낸 열매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 휴식하는 대지를 천사의 날개로 덮어 눈이 많은 날, 자연이 아니어도 열정을 다하는 가수의 노래 한 소절에.
그러나 이런 것보다 큰 마력이 있는 것이 따로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유괴당해 본 적 있는 그 첫사랑의 설렘. 주말을 지나며 이 사건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급식실, 운동장, 이층에서 일층으로
아랫마을 큰길까지 찾아 헤맸다
마을 방송을 듣고 돌아온 아이들
강아지를 따라갔었다고 했다
누가 먼저 그랬냐고 윽박지르자
절박했던 마음을 단번에 허무는
작은 입술의 마법 같은 주문
“마음이 그렇게 하재요”
순간,
바람 한 줄기가 잠든 나를 깨웠다
너의 꿈이 될 수 없다며
마음만 꾀어 데려간 사람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이름을 불렀다
<마음이 그렇게 하재요>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