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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Sep 20. 2023

눈물 닦으며 쓰는 희망일지

나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샘

 “부장님 저 내일 사표 낼래요. 언니가 우체국에 한자리 났대요.” 

 교직 30년 동안 입학식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 해 재직했던 유치원은 일반학급 5 학급, 특수학급 1 학급으로 한 나이 당 1-2명의 특수교육 대상 유아가 있었는데, 일반학급인 원적 학급이 있었고, 개별화 교육과정과 급식은 희망반에 모여서 생활하는 특수학급이 있었다.

 비장애들은 4월쯤 되면 유치원의 규칙을 알아 간다. 비슷한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한 학급당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특수교육 대상자들은 개인마다 지체 정도가 다르기에 한 명당 하나의 교육과정이 필요한 개별화 교육과정이다.     

 눈물의 입학식은 5살 완이와 현이, 초임으로 발령받은 특수교사 도선생이 처음 유치원에 온 날이기도 했다. 유치원의 입학식 날 유아들은 부모님과 함께 등교하는데 보육시설에 1~2년씩 다닌 경험이 있어서 부모님과 떨어져 정해진 의자에 앉아서 짧은 입학식을 한다. 물론 잠깐씩 울기도 하고 심하면 부모님이 안고 입학식을 하기도 한다. 입학식이 끝나면 부모님들은 다목적실에 따로 모여 부모교육을 받았고, 유아들은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가서 교실 탐색의 시간을 갖는다. 길어도 한 시간 정도 소용되는데 내가 담임한 현이와 완이가 교실로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정신없는 입학식 후 교실로 간 유아들과 나는 듣는 이들이 관심도 없는 규칙을 나열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지. 태어난 지 겨우 36개월이 지나서 유치원에 왔더니 엄마 아빠와 떼어 놓고 화장실 갈 때 줄 서기, 휴지 4칸씩 쓰기, 가방은 자기 사진이 있는 사물함에 넣기 등 재미 하나도 없는 이야기만 하는 아줌마가 매력적일 수 없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방과 후 교사에게 유아들을 부탁하고 희망반에 갔다.     

 도선생은 5살 완이와 현이를 양팔에 안고 셋이서 누가 누가 잘 우나 대회를 하고 있었고, 실무원 선생님은 마구 뛰어다니는 6살 지민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더구나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오시지 않은 날이라 7살 현우는 아주 매트에 누워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곧 부모님들이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도선생님! 선생님부터 울음을 그쳐야 애들이 그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요?”

“부장님 저 내일 사표 낼래요. 언니가 우체국에 한자리 났대요.” 우체국을 경영하는 집 딸이라던가 친척이라던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교무실로 전화하여 인력지원을 부탁하고 현이를 받아 안고 달래며 

“유치원 입학식 날은 다 눈물 잔치야. 적응 기간 끝나면 좋아져요. 처음은 모두에게 두려운 것이니까요.” 도선생을 위로 겸 반협박으로 달랬다. 

  국가고시를 통과한 교사들이 현장이 어렵다고 교직을 떠나는 것을 가끔 보았다. 대학에서 배운 전문적 지식과 사랑만 있으면 행복한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이론과 혹독한 책무성이라는 현실이 간격을 좁히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함께 비를 맞는 위로를 실천하지 못하고 우산을 들어 위로해 주는 선배들이나 관리자들의 책임도 한 부분 있었으리라. 어떻게 하면 암담한 교직 첫날의 무거운 책임감을 위로할 수 있을까?      

 다행히 도선생님은 사표 대신 사랑과 책무성을 선택하여 선생님이 되어 가기로 했다. 3월 내내 현이와 완이의 울음은 계속되었다. 담임인 나와 도선생은 두 아이를 업기도 하고 안 기도 하고 수업을 이어 나갔다. 일반 유아들은 귀를 막고 놀이를 하거나 “엄마 보고 싶어요.” 하며 울기까지 하였다. 도선생이 가끔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어떤 때는 어깨를 토닥여 주고 때로 모르는 척해 주며 4월 말이 되었다.

 4월은 모든 교육기관에서 장애 이해 교육이 있는 달이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시켜 마음을 열고 어울림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장애 이해 교육의 목적이었다. 도선생은 클라우스 바움가르트너의 “귀 없는 토끼” 동화를 들려주고 독후화 활동을 하며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소중해요”의 메시지를 유치원 전체 유아에게 교육하는 장애 이해 교육을 주관하였다. 유아들은 귀가 없는 토끼에게 모자를 그려주기도 하고 머리띠로 귀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으나, 귀가 없어도 다른 동물들과 사랑하며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듯하였다. 우체국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던 도선생님이 특수교사로 점점 변신해 가는 시간이었다.      

  이전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특수교사들의 초능력을 자주 보았다. 장애 학생들에게 가능할 것 같지 않던 기악 합주, 텃밭 가꾸기, 문예 창작 능력까지 끌어내는 교사의 역량에 감동하였다. 특수교사들을 칭찬하며 어떻게 그런 교육이 가능하였나 물으면, “저는 그 학생의 관점에서 관찰하였고 비장애인들과 다르지만, 학생 고유의 능력을 현재에서 조금 향상하는 개별 교육과정을 운영하였습니다”라는 모범 답안을 이야기할 뿐이다. 자신들이 한 명 한 명의 학생들에게 어떤 색의 영혼을 얼마만큼 갈아 넣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차마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한 바가지의 눈물을 쏟아야 하니까. 당신을 생각하면 우는 날이 많았다는 시 구절처럼.     

 현이가 기저귀를 떼고, 완이가 울음을 그친 학년말 우리 반은 보통 5살 반의 수업이 가능해졌고, 도선생은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샘이 되어가고 있었다. 또 한 학기를 마치고 6살이 된 현이와 완이는 형님 반이 되어서 나와 작별하였다. 형님 반을 훔쳐보는 습관은 그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그 친구들이 7살이 되었을 때 도선생님도 고향이 가까운 곳으로 전근하였다. 도선생과 이별에  현이와 완이가 반응이 없었지만, 나와 도선생은 웃으며 때로 울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교사로 성장한 도선생과 선배 교사로 성장한 나를 서로 격려하였다. 따뜻한 레몬차를 마시며. 달고도 신 작별하였다.     

7살이 되어 최고 형님 반에서 새로운 특수교사와 만나 현이와 완이는 아기티를 벗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는 희망둥이가 되었다. 모두 다 꽃이야 동요 가사로 벽화작업을 한 이 해의 장애 이해 교육도 의미 있는 교육이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어떻게 자라는 것인지 보여 주던 희망둥이들의 졸업식 날이 되었다. 

도선생도 코로나 이전이라서 우리 유치원의 졸업식은 교육장님과 지역신문 기자가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있는 행사였다. 졸업장을 받는 유아의 이름을 부르면 대형 스크린에 학사복을 입은 멋진 개인 사진이 비추어지는 졸업식 중 현이의 졸업장 받는 순서가 되었다. 나는 현이의 졸업장 번호와 이름을 부르다 울컥하며 순간 눈물을 보였다. 의젓하지 못한 감정을 빨리 추스르고 졸업식을 마치기는 했었다. 졸업식이 끝나도 현이 엄마와 나는 한참을 손을 놓지 못하고 마주 보다 헤어졌다. 이날 도선생도 첫 아이들인 현이와 완이의 졸업 안부를 전화로 챙겼었다.      

  유치원 교사를 제자가 없는 선생이다. 짝사랑의 선수들이라고도 한다. 자신을 기억해 주지도 못하는 아들에게 온 마음을 바치니 말이다. 짝사랑 중에 더 애달플 때는 희망이 들을 만났을 때이다. 자식을 키워본 나는 희망이 부모님의 어려운 마음에 공감하게 되니 더욱 눈물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현이와 완이가 졸업한 다음 해 입학한 연희는 약간의 언어 장애 외에는 밝고 영리한 유아였다. 

  연희의 입학식에서 엄마는 말이 없는 너그러운 인상이었다. 두 달이 지나 상담 기간에 연이 엄마의 절뚝이는 뒷모습을 처음 보았다. 시 한 편 같은 연희 엄마와의 세 번째 만남은 봄 체육대회였다.     



석회길 달리기 준비 후루룩

덩달아 뛰는 엄마들의 다리

운동장을 한 번도 뛰어 본 적 없는 

소아마비 연희 엄마는 

결승선을 향해 뒤뚱거리고

응원으로 끌고 햇살로 밀어

아이들은 아지랑이로 달려온다.

1등으로 결승선 밀고 들어오는 연희가 

엄마 목을 감고 환호하면 

웃는 엄마의 속울음 

그대로 꽃이 되는 새봄     

     <새봄>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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