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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때그대 May 28. 2021

#20. 더 늦기 전에

 주말친구에게 제주는 어떤 곳일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 그 이상의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때로는 내가 여보 우리 그냥 제주에 살자고 조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단지 제주가 좋아서 인지, 회사 그만 두라는 말이 듣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제주가 좋고, 제주에서 잘 지내는 우리가 좋아서 매주 오는 것이겠지.

 정말 한 주도 빠짐이 없다. 한 두 달 오다가 안 올 거라 장담했던 사람들 그리고 집으로 친구를 불러 편하게 놀거라고 기대(?)했던 바로 그 친구들 모두 틀렸다. 부산에서 토요일 결혼식이 있어도 남편은 우리와 하루밤을 보내려고 곧바로 날아왔다. 나라면 오랜만에 엄마와 주말을 보낼 찬스라고 생각했을거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이 자기의 빈자리를 느끼지않는 것 같을 때 몹시 서운해 한다.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아이가 놀이에 집중하고 있어 대답이 시큰둥하면 귀엽다 말하면서도 눈썹이 삐죽해진다. 아빠가 필요 없어서가 아니고 아이라서 그럴 수 있는 것을 알지만 섭섭한 모양이다.

 

 우리 셋이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에 남편은 안심할까, 당신을 보고싶어 하고 원하는 것에 더 큰 위로를 받을까. 시소에 태운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여야 할까. 내가 혼자 지낸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일년 지낼 제주집을 계약하기 전 날 밤. 나는 남편이 나 혹은 아이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염려한다는 것을 눈치챘었다. 외롭고 쓸쓸할 시간에 대한 걱정과 산란한 마음이 다 보였다. 말로 해주지. 그랬다면 보듬고 안아주었을텐데. 약한 모습은 감추고 싶은 사나이의 본능이었는지 아내에게 남편 걱정까지 얹기 싫은 배려였는지 몰라도 입술만 옴싹거렸다.

 내일 집 계약하지 않아도 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당신 혼자만 희생한다고 생각이 든다면 우리 제주살이는 없던 일로 하자 했다. 아이들도 잘 다니던 학교와 어린이집을 옮겨 새로 적응해야하고 나는 물론 익숙하고 편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족 모두 각 자 잘 해내야 하는 몫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를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솔직하게 자기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 생길 때 나를 탓할 것 같았다. 네가 가고 싶어 간 거 잖아. 힘들다 소리도 안들어 줄 것 같은 거다.

 이날 밤 제주에는 비가 왔었다.


 다음 날 먼저 깬 남편은 숙소의 커튼을 확 열어 제꼈다. 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색이고 공기가 맑았다. 새가 짹짹 거리는 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아침이었다. 나는 전 날 밤 꼬리가 흐린 남편의 말투와 갸웃거리는 고개, 샐쭉거리는 눈썹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느라 잠을 통 못잤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게 다섯시였나.

 너무나 상쾌한 목소리로 집을 계약하러 가지고, 그리고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사람. 어제 밤과는 딴판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너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해 잠을 설쳤는데 어이가 없었다.

 나 좀 외로울 것 같긴 해.

 활짝 열린 커튼 가장자리에 서서 남편은  하고 진심을 던졌다. . 안심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남의 어려운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부부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어제 밤 남편의 태도에 못마땅했던 거다. 남편은 외롭겠지만 중요한  그게 아니라서 자긴 괜찮단다. 앞으로 나는 제주에서, 남편은 서울에서 힘들고 그리운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만나면 안아주고   있겠다 싶었다.


 실은 그 날부터 생각했다. 남편의 휴직에 대해서. 셀프 안식년을 주고 조금 쉬어도 괜찮지않나 진지하게 이야기 했었다. 다시는 없을지 모르는 우리의 시간을 잘 보내야하니까. 경제적인 걱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우리의 행복을 미루지않아야 한다는데에 뜻이 통했다. 열살, 여섯살.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는 것도 용감해진 또 다른 이유가 됐다.

 말이 쉽지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게 여러가지로 눈치가 보이더라. 드디어 마음을 정한지 일년만에 회사에 휴직 계획을 알렸다. 지금이다. 때가 왔다. 더 늦어지면 재충전의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회사에서는 반길리가 없을테지만.


 육아휴직이란 게 정당한 권리인데도 왜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지. 내가 큰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일년도 아니라 소심하게 십 개월을 적었는데 돌아오면 자리가 있겠냐는 둥 누구는 삼개월을 쓰고도 한 달만에 왔네 어쩌네 소리를 들어야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지 슬펐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십개월이 뭐냐 오개월만에 집 앞 카페로 찾아온 팀장을 만나 아기를 안은 채 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위로가 조금도 안되는 위로금으로 대출금을 일부 갚아 월납입금을 줄인 것을 위안으로 여겼더랬다.

 나에게 육아휴직은 축복이 아니라 불안의 시간을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남편은 쉬웠으랴.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조직은 더디 변하고 익숙한 방식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아 있기 마련이다.

 그 눈치 코치를 다 받고 비아냥을 들어도 우리는 제주에서 행복하기로 했다.

 아침에 커튼만 열어도 기분까지 환기되어 긍정의 말이 나오는 곳. 잠 들기 전에는 아이들이 매일 그렇듯 오늘 정말 행복했다고 자기 어깨를 끌어안고 흐음 소리내며 눈 감는 곳. 이 충만한 기쁨을 함께 느끼는 날을 기다린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가족이 제주에서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언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귀하다는 것을. 차곡차곡 잘 쌓아두었다가 돌아가서 힘을 내야할 때 꺼내 먹는 추억이 될 것이란 말이다.

 퇴직한 것도 아닌데 매일 남편과 붙어지내면 꼴보기 싫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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