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대행 서비스

Thanks for GPT

by 빵파카


원래 나란 사람은(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지만), 고집이 꽤나 센 편이다. 가로로 막히면 세로로라도 길을 뚫어야 직성이 풀리는 두 사람이 만났으니, 의견 조율이란 건 사실 누가 먼저 귀찮아지느냐로 결판이 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본인은 나름대로 집안일을 예전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지만, 내 눈엔 그저 '시늉' 정도로 보였던 탓일까. 결국 감정이 상한 채 잠들었고, 오늘 아침엔 눈도 안 마주치고 각자 출근했다. 30 년 동안 따로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태교 하듯 다정하게 살 순 없는 노릇인가 보다.


비슷한 문제로 최근 몇 번 티격태격해서 지칠 만큼 지쳤던 터라, 이번만큼은 감정 소비 없이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에서 사과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그때 숏츠에서 봤던 에피소드가 문뜩 떠올랐다. 바로 ChatGPT에게 사과 문구 스크립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


솔직히 나도 안다. 화해라는 게 원래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정을 꺼내놓고, 정리하는 게 '강호의 도리'라는 걸. 하지만 떡하니 보이는데 안 써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별 기대 없이, 그냥 가볍게 한 번 툭 요청해 봤다.)


"어제 남편이랑 청소 문제로 싸웠는데, 기분 안 나쁘게 사과하면서 저녁 외식 제안하는 문장 좀 짜줘."


사과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써주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 답이 바로 튀어나와 화면을 채우더라. 솔직히 내가 평생 가도 입 밖으로 못 꺼낼 다정하고 세련된 문장들이 화면을 채웠다. 혹시 남편이 거절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 B 스크립트까지 덤으로 얹어주더라.


사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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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확실히 감정이 덜 피곤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게 말로만 듣던 AI 시대의 효율인가 싶더라. 물론 약~간의 가책은 느꼈다. 그래도 이 상황을 빨리 매듭짓고 싶어 그대로 카톡을 보냈다. 10분 뒤, 남편에게서 답장이 왔다.


"알았어, 나도 미안해..."


성공이다. 우리의 화해는 단 0.1%의 감정 낭비도 없이, 아주 ‘깔끔하게’ 완료되었다. 내 고집은 지켰고, 평화는 되찾았다. 뇌를 쓰지 않으니 인생이 이토록 쾌적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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