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끝할배
돌잔치하기 너무 힘들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내 딸의 딸'의 돌이 되었다.
내 딸이 약 3달 전 그달 1일 10:30 돌잔치 예약을 해야 한다며 온 식구들이 대기했다가 동시에 전화예약을 신청하게 했다. 남산에 있는 식당인데 워낙 신청자가 많아 전화연결되는 선착순으로 예약만 가능하단다. 이 무슨 소리지?
주말에 뷔페 하는 곳에서 조그만 방하나 빌려서 대충 돌잡이 하고 끝나는 게 지금까지 보아온 돌잔치였고, 최근 우리나라 출생률이 세계 최하위인 데다, 젊은 친구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 후에도 아이도 낳지 않아 문제인데 왜 그렇게 예약하기 힘든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 전 청주에서 처조카 아이의 돌잔치에 참석하였을 때도 대충 한정식으로 점심 먹고, 기념수건 한 장씩 받아서 왔는데....?
하여간 나머지 식구들은 전화연결에 다 실패하였는데 '내 딸의 딸' 삼촌이 전화 3백 여번 만에 드디어 연결되어 원하는 날짜에 예약하였는데 내 딸은 기적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남산에 있는 돌잔치나 결혼식에 가족모임 특화된 호텔부속 식당인데 사진 찍기도 좋고, 분위기가 좋아서 예약을 하기가 무척 어렵기로 유명한 곳이긴 하였다.
내 딸과 사위는 돌잔치 전날 우리 집에 오지 않고 내일 아침 화장을 해야 한다며 자기 집에서 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돌잔치를 제2의 결혼식이라고 한다나!?
우리 보고는 '내 딸의 딸'을 데리고 돌잔치가 12시 시작인데 집에서 8시에 출발하여 9시 30분까지 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주말 밀리는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하여 남산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입구에서 깜짝 놀랐다.
주차비 1시간에 12,000원... 이런 흉악한 곳이 있나?
하여간 제시간에 도착하였고 10시부터 '내 딸의 딸'은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으면서 사진촬영을 시작하였다.
참여하는 사람들을 세어보니
돌잔치 특화된 사진작가 2명... 아기들 집중을 위한 손바닥 '딱따기' 필수
돌잔치 특화된 아이 돌봄이 20만 원/일.... 어떤 아이도 달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보유, 노래, 장난감, 떡뻥 등
돌잔치 특화된 꽃장식 인원... 방을 생화로 예쁘게 꾸며주며 사용된 생화를 손님들이 돌아갈 때 조그만 꽃다발로 만들어 나누어 준다
이 모든 행사과정 별도로 멀리서 지켜보면서 영상으로 기록하는 또 한 명의 사진작가..
난리도 아니다. 왜 비용이 많이 드는지 알겠다.
시골에서 친척들이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12시 전에 식당에 도착하였고 제법 많이 기다렸는데, 공지된 행사 시작 시간인 12시를 한참 넘기고 있는데 아직도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미 '내 딸의 딸'은 몇시간째 강행군에 파김치가 되어 울다 지쳐 콧물까지 나오는 상태에서 정신없어한다.
하지만 한 장면 구하겠다고 우는 아이를 앉혀놓고 사진을 계속 찍어댄다. '내 딸의 딸'이 안쓰러워 아내가 이제 그만하라고 하였지만 사진작가들이 오늘은 모른척하라며 멈추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여기서 갑은 내 딸이다. 돈을 주는 왕초가 만족하고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찍어야 하는 것 같다.
시골에서 온 친척이 배고프다고 한 상태에서 '내 딸의 딸'이 드디어 울기 시작하였고, 12시 45 분이 지나서야 사진 촬영을 마쳤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그만 풍선들과 1개에 10만 원 하는 왕풍선까지 대령하여 돌잡이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 '내 딸의 딸'이 흥미를 잃어 아무것도 잡지 않아 시간을 한참 끌었지만 마침내 '청진기'를 잡았다. 의사가 되드니 어쩌느니...!
이제 밥 먹나? 아니다.
케이크 위에 촛불 켜놓고 '생일 축하합니다' 떼창 후 컷팅과 동영상 시청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딸과 사위의 어린 사진부터 '내 딸의 딸'의 최근모습까지 내 딸이 직접 편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잘 만든 것 같았고 아들놈은 보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진상을 떤다.
오후 1시가 한참 넘어서야 드디어 점심식사가 시작이 되었다
맘 편히 밥도 못 먹는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내 딸의 딸'에게 한 마디씩 하란다.
코멘트에 대한 평까지 하면서..
그사이 '내 딸의 딸'은 피곤하여 다행히 유모차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자기 생일날 무려 5시간 이상을 못 자서 피곤했던 것이다.
지난번 '현명한 유키 님'의 조언에 따라 나도 돌 선물을 준비하였다. 아이들이 사진관에서 예쁘게 찍은 사진 말고, 평소 내가 집에서 '내 딸의 딸'이 목욕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생활하는 사진을 찍은 것으로 2장씩 인화를 한 다음 앨범을 사서 붙여가며 2권으로 정리를 하였다.
하나는 '내 딸의 딸' 돌선물이고, 또 하나는 사돈네 선물이었다. 평소 사돈에게 카톡으로 보내는 사진들은 내 딸과 사위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식당을 하시느라 손녀가 생활하는 모습을 많이 못 보시는 사돈네가 안타까워 똑같은 앨범을 하나 더 만들어 선물로 드렸다.
사돈네는가 "어떤 선물보다 가장 큰 선물"이라고 좋아하신다.
돌잔치 참석한 손님들에게는 수저세트가 선물로 준비되었다. 확실히 체계를 잘 갖춰놓고 가족들이 모임을 거질 수 있는 장소이기는 한 것 같다. 밥 먹고 집에 가나 했더니 아래층 커피숍에서 또 차를 마셔야 한다고 했다.
한참 후 시골에서 올라오신 친척의 기차시간이 도래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이미 오후 4시가 넘고 있다.
나오다 보니 다른 아이 저녁식사팀의 돌잔치 사진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작가들이 프로다운 솜씨로 똑같은 자세를 이끌어 내고 있었고 지쳐가는 아기의 모습도 보인다.... 그다음 상황이 그려진다. 고생들 하시겠다....!
수원에 있는 집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고 있었다.
아들놈은 거의 녹초가 되어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자고 있고, 돌잔치 행사에 우는 '내 딸의 딸' 달래느라 아내도 녹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자기 첫 번째 생일날 사진 찍느라 '내 딸의 딸'이 가장 힘이 들었다. 수고했다.
딸아이가 하는 말이 돌잔치가 힘들어서 돌잔치를 마친 엄마를 위로하며 '돌 끝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도 '돌 끝할배'다.
* '내 딸의 딸'은 약 5개월 될 때 내 딸이 사위와 함께 해외출장을 가게 되어 잠시 맡아 주기로 하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데 13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눌러앉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