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 코 앞에서 열린 다른 문
"기세 좋아! 요즘~"
나의 하나뿐인 친구가 나의 행운을 볼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약이 안 들으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낮추는 약을 강제적으로 써야 될 것 같아요. 아마 항정신성계열이라 조금 셀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최근에 나아지지 않는 나의 신체증상을 보고 한 말이었다. 너무 상반되지 않은가?
우울은 언제 오는가? 왜 오는가? 고민을 하였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서였다.
주변에 웃고 애교가 많지만 타인의 소식을 자주 전하는 사람을 멀리하라. 사실 멀리하는 것으론 안된다. 미친 듯이 당신을 쫓아와서 끌어내리려 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고 당신도 전력질주로 도망가라. 그는 자신과 비슷한 불행한 이들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당신을 자신이 있는 시궁창으로 끌어내리려 할 테니까.
이러한 작동원리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인스타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아마 책 이름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책이었다. 나르시시스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는 바로 "Truth teller"라고 말이다. 직역하면 진실을 말하는 자, 번역을 하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들. EQ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바로 나르시시스트들을 정확히 알아본다고 한다.
그럼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교묘함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 Truth teller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려 들 것이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속이는 나르시시스트의 세상이 안전하니까.
사실 Truth teller도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문제는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이 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단에선 Truth teller가 어떤 짓을 해도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발생한다.
아무리 숨겨도 Truth teller가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최소한만 드러내도 나르시시스트는 우리 사이에 별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테니까.
그렇게 두 달간 해야 하는 일까지 방해받으니까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자신이 가도 넌 철저히 망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말에 얼굴에 경련이 오기 시작했지만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떨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자신의 방법이 먹힌다는 사실을 안 채 또 다른 타인을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 지독한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가 지키고 싶었던 유일한 타인이 그들과 놀고 와서 정말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인간 주제에 나의 롤모델이자 유일한 안전핀이었다. 중심을 잡으라던 그가 한 말대로만 살면 나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를 본 순간 나의 세계는 벽돌 하나 없이 처절하게 무너졌다. 나의 마음의 지대는 깊이 파이기까지 했는데 그가 나를 지키는 노력이 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단 하루만 버티면 누군가는 떠나는 날이었다.
'제발, 웃지만 말지...'
'행복해 보이지만 말지...'
나는 오랫동안 그를 동아줄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표정, 행동, 생각들을 관찰해 왔다. 그의 웃음은 티 없는 진심이었다. 감히 인간을 동경하고 존경했던 나의 세계는 그렇게 무너졌다. 그리고 지옥인지 지옥문 앞인지 모르는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미친 듯이 불안했고 손이 떨렸고 말이 꼬였다.
"말은 죽음과 맞닿아있어요. 결국 말하셔야 돼요. 환자분"
다행히 Truth teller 옆에 좋은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저 말은 내 속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