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동안 진짜 우울했는데 오랜만에 진짜 행복했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지어도 될 만큼 행복했다. 사실 그런 행복을 즐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선 나를 괴롭혀오던 사람, 사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윙윙 울렸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정의 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순도 100프로의 감정이 아니라면 나는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80프로라는 수치에 집중하게 되었다.
1. 나는 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 열리는 댄스수업을 좋아한다. 특별히 토요일 오후 1시 30분의 수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에게 있다.
나의 토요일 선생님은 나보다 2살 정도 어리다. 대학에서 전공은 건축을 했지만 결국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인 춤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변명을 하지 않기 위해 대학 전공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내가 신기하고 동경하던 지점이 여기였다.
아마 그가 대학에서 전공한 계열의 직업을 선택한다면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이 그려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치열하게 탐구했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춤의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의 수강생을 아끼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무용 전문 학원으로 소문난 학원에서 비전공자인 그를 선생님으로 발탁한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그의 수업을 계속 들어가고 있었고, 이번주에는 수업이 끝나고 용기 내서 궁금했던 점을 그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언제부터 춤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하셨나요?"
그렇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의 답변이 내가 선생님을 관찰한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믿은 것이 맞다고 증명되는 순간을 말이다. 이 날 나는 선생님과 3주간 연습했던 블랙핑크 안무를 완성했다.
2. 학원을 나와서 서둘러 메이크업 샵으로 향했다.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 있게 도착했겠지만 난 학원에서 보낸 모든 순간에 만족했다. 원래 이 날 메이크업은 언니와 함께 받기로 했다가 언니가 나보고 혼자 가라고 했다가 돈도 내가 내라고 해서 마음이 불편했던 일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메이크업을 받고 이후 일정을 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담당해 줬던 선생님의 밝은 호응에 나는 점점 신이 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선생님들과 스몰톡을 하며 요즘 우울하다고 했더니 선생님들이 서비스로 머리도 땋아주시고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블링한 메이크업을 해주셨다.
그러던 찰나에 언니가 생일선물로 메이크업 비용을 결제해 주겠다고 서울까지 한 시간 반 거리를 올라왔다.
참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사랑받는 삶이다 생각했다. 메이크업을 받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언니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메이크업 담당 선생님과 헤어 선생님은 메이크업 과정 중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며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같이 응원하겠다며 배웅해 주셨다.
메이크업 샵을 나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오늘 받은 사랑으로 다음 주를 넉넉히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다.
3. 마지막으로 친구가 나를 위해 예매해 준 프라우드먼 공연을 보러 갔다. 스트릿우먼 파이터에 나온 모니카가 이끄는 프라우드먼의 공연은 매우 핫하고 도파민이 가득할 정도로 재밌었다.
그러나 20프로의 불안과 답답함이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 마음을 스쳤다. 주말이 지나면 다시 문제의 상황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불안이 올라오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최근에 증상이 심해졌지만, 정신과 약은 세니까 조금만 견뎌보자던 내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으며 버텨오고 있지만 이 증상은 심리적인 요인이 확실했다.
공연을 잡아준 친구는 나의 회사 친구였는데 대화를 마친 후 친구는 회사생각이 주말에도 난다고 했다. 근데 희한하게 나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다들 똑같구나. 억지로 생각 안 하려 하는구나. 생업의 무게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무겁구나.
80프로의 행복을 기록해 두면 20프로는 어느새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럼 오늘의 행복은 100프로 이상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