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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미 Nov 02. 2024

아주 잠시 로그오프 된 휴식

우연히 발견한 해방의 자유

그날도 일정이 있어 바쁘게 나갔는데 왠지 모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상념에 잠겼다. 그 상념에 잠긴 집 근처 지하철역에 가는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생각의 범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커졌지만 그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너무 흥미로웠다. 그렇게 상상 속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갔다. 개찰구에 다다랗을 무렵 교통카드를 꺼낼 겸 이제 이어폰도 끼면 일상과 같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어폰을 꼈는데 연결됐다는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처음엔 이어폰 케이스의 배터리가 나갔나 생각했는데, 정작 없는 것은 바로


핸드폰이었다. 


나는 핸드폰 대신 왼쪽에 차고 온 시계를 보면서 핸드폰을 가지러 가면 일정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고 그대로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러나 개찰구를 통과하면서 든 기분은 시원한 해방감이었다. 해방감을 느끼자 나는 직감했다.


'아, 나 사실 핸드폰 없이도 살 수 있구나.'


그리고 핸드폰 없이 걸어왔던 길이 짐짓 신나고 흥미로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정을 수행하는 내내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느끼는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일정을 잘 마치고 나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나의 집까지 가는 길엔 청계천이 있다. 나는 그곳을 몇 년 간 지나다녔기에 이 시기가 되면 청계천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외울 정도다. 


졸졸 흐르는 강물 옆에 책과 담요를 갖다 놓고 난간 사이를 연결한 낚싯줄엔 절에서 볼 법한 풍경이 달려있는데 바람이 풍경을 치며 청아한 화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잠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풍경 속 일부가 되어 보았다. 


코로나가 풀린 탓인지 한류 탓인지 많은 외국인들이 놀러 와서 한국여행을 추억할 만한 사진을 남기고 있었고, 아직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잠시 그들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평소 듣던 음악 대신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들으며 걸었다. 그리고 아침에 했던 생각보다는 가벼운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그러니 점점 나의 기분까지도 산뜻해졌다. 


핸드폰이 없을 때 조금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는 거 보면 사람들은 연결되어야 하지만 요즘엔 오히려 너무 쉽고 넓게 연결되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압박과 조급함이 조여 오는 것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그랬다. 좋았다. 앞으로는 종종 나 자신을 로그오프 하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가끔 로그오프 될 자유가 필요한 것일 수 있겠다.


번외) 어제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어떤 앳된 여학생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도를 아십니까? 나 사이비 종교일까 경계했는데 요즘 자신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무엇이라 할 거냐고 자신이 취업준비를 하는데 이 항목이 너무 어려워서 물어본다고 했다. 음...일단 대답하기 전 내일 아침 시험이 있다고 말하고 떠오르는 즉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 두 번째는 꾸준히 하는 것이요. 그러자 여학생의 눈이 반짝이면서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살 때 행복했거든요." 여학생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머뭇거리면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음... 그냥 가는 거 보니 왠지 사이비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쿨하고 밝은 톤으로 인사했다. 


"잘 되실 거예요. 파이팅!"


나는 길거리판 끌어당김의 법칙이 잘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버스에서 친구들이 다 같이 앉아있어도 취객이 내 무릎에 앉는다던지. 맞은편에서 씩씩거리면서 오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내가 저 아저씨 왠지 나한테 뭐 할 것 같다 하자마자 친구와 나중에 갑자기 나에게 화풀이하듯 소리를 지르고 간다던지. 


그러나 어제는 이상한 종교단체 사람이던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이건 꼭 나에게 말을 걸어야만 했을 것 같은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건 느낌이었다. 내가 바뀌고 이제 다른 삶을 살 시기가 도래했는지 길거리판 끌어당김도 좋은 기운으로 바뀐 것 같았다. 여학생의 눈의 미세한 흔들림이 내가 그녀가 찾던 질문에 필요한 도움이 되었다는 확신의 표시였길 바란다.


내게 묘한 기분을 들게 했던 번외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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