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 두 가지 이야기
<사이코패스>
형은 이번은 정말 다르다고 했다. 나는 늘 생각했다. 형은 형사가 아닌 변호사가 되었어야 한다고. 마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이 악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달랐을 뿐이라고.
형이 말해주길 이번 놈은 형과 내가 자란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렇기에 동네 사람의 탄원서도 가득하고, 탄원서의 내용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놈을 죽기 직전까지 패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놈의 엄마는 놈이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도망갔다고 했다.
물론 놈이 멀쩡한 사람을 이어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갈기갈기 조각 내고 유기하고 반복했지만, 그를 이렇게 만든 사회 탓도 있지 않냐고 형은 말했다. 그러니 조서를 쓸 때 감안해야 되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가끔 우리 집에 왔던 너는 이해할 수 있지 않냐고.
‘그랬지.’ 나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형의 집으로 피신했었다.
형의 집은 아늑했고 화목한 부모님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밥과 국이 있는 저녁밥상이 늘 함께했었다. 난 형의 가족을 동경했다. 그런 환경이 형을 이렇게 사랑스럽고 정이 많은 인간으로 자라게 했다고 믿는다. 그때의 형은 내가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날 찾으러 다녔으며 갈피를 못 잡으며 방황하던 내가 벌인 사고의 뒷수습을 해주며 늘 괜찮다고 다시 잘 견뎌보자고 말해주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어른이 되면서 하나씩 무채색이 되어가던 감각도 형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엔 생기 있게 움직였다. 형의 말을 듣자 놈에 대한 확고하던 마음이 가장자리에서부터 흔들렸다.
아까 놈의 눈까리를 본 이후 나는 확신했으나 형의 진심 서린 변호가 닿았다. 이 상충감은 격렬하게 싸우더니 올라오는 구토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 구토감을 누르기 위해 담배를 피우러 나가야만 했다. 나는 형에게 그놈이 있는 조사실에 절대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사이코패스,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성격이 강하며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사이코패스는 진단명이 아니기에 정신질환이라기보단 기질에 가까워요. 그렇다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는 거죠. 다만 그게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경찰학교 시절 프로파일링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놈은 사이코패스가 확실했다. 수많은 과학기술보다 수백 명, 아니 천 명에 가까운 범죄자와 피의자를 만난 내가 가장 믿는 것은 놈들의 눈까리였다. 눈까리는 진실만을 진술했다. 예외는 없었다.
사이코패스와 나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99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 1프로가 다를 뿐이다.
늑대가 아닌 양으로 살아도 세상을 충분히 이긴다는 믿음. 그것이 다른 것이다. 오히려 어린양으로 살아야 세상을 이긴다. 악의 근원처럼 보이는 뱀의 지혜를 지니면서도 하얀 비둘기처럼 순결한 어린양 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로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내 어깨를 수많은 인원이 밀치며 지나갔다. 그들은 들 것을 들고 계단을 빠르게 주파했으며 주황색 옷을 입고 있었다.
‘설마…’
나는 나의 이 미치고도 싸한 촉을 혐오한다.
제발 틀리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쫓아갔다. 서 앞에 주차된 차에서 평소 듣던 것과 다른 종류의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형이 죽었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훼손된 채로, 조사실에서 놈에게 피습당해서.
형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오는 길.
장례식장 앞 빌라 계단에 앉아있던 박수무당이 나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신을 믿는 자가 스스로 구원자를 자처하니 인생이 고달플밖에…”
“하!”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조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으면, 내가 그때 말했겠지.”
30년 전 혜안동 놀이터. 그날은 함박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곳엔 두 명의 아이가 있었다. 한 아이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다른 한 아이도 맨발로 눈을 밟고 서있었다. 아이들의 발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아이들은 한 여름의 옷차림으로 덜덜 떨고 있었으나 적당한 거리감으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중 한 아이는 나였다. 나는 그 아이를 슬쩍 보았다.
나보다 상처들이 심한지 그 아이는 얼마나 맞았을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우리 집 아랫집이자 매일 새벽까지 싸우는 소리가 들렸던 그 집의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단 한순간조차 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 아이는 오른쪽 손에 돌을 쥐고 바닥을 계속 찧고 있었다. 그 아이가 찧고 있던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니 내장이 다 터진 쥐였을 것 같은 생물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를 뻔한 입을 틀어막고 그 놀이터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놈이 그 아이였다. 30년이 지났지만, 내가 잊지 못한 눈까리가 아이와 그가 동일인물이라 말하고 있었다.
“신은 인간이 구원받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했을 수도 있어. 끝내 자기 자신을 만나 받아들여 자유로워질 건지 또는 도망갈 것인지.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길 바라지만 말이야. 그래서 구원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의 자유의지일지 몰라. 알아?”
나는 섣부르게 나를 가늠하려는 이에게 일갈하고 그 자리를 떴다.
<이상한 학교>
아아. 오늘의 교내방송은 교장인 제가 해보려 합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에요. 그냥 내가 말하고 싶어서 그래요.
우리 학교는 참 이상합니다. 학생들의 연령도 제 각각이고 오히려 학우 여러분과 또래일 수도 어릴 수도 있는 제가 교장이라니 말이죠.
우리 이상한 학교는 졸업도 특이합니다. 학생이 먼저 졸업을 요구해야 졸업할 수 있다는 점이죠. 우리 학교는 다양성 속에 성장을 목표로 하기에 교육과정은 나날이 성장해 가지만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순전히 저와 여러분인 양쪽이자 각자의 선택이죠.
이상한 학교의 교장은 자유롭되 즐겁지 않으면 언젠가는 학교를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겁주는 건 아니고요. 언젠가는 그러한 순간을 마주할지도 여러분이 먼저 졸업할지도 모르기에 미리 얘기해 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았던 이 학교를 기억해 주시기를.
혼자 걸어가게 될 수도 있는 여정에서 나와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언어들이 모래알갱이처럼 흩어지는 일을 경험하더라도.
나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나와 당신을 갈기갈기 찢을지라도.
그럼에도 본연을 잃지 않기를. 태고의 말랑함 그 자체로 남아있기를.
녹슬지 않는 조개껍데기처럼 강인하기를.
당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다면 질투나 경쟁보단 당신의 스승으로 삼기를. 주인공과 조연 그 모두가 인간이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어떤 위치에서든 당신이 더 나아지는 길을 택하기를.
이러한 학교의 이상은 현실에서 조롱받을지라도,
이 학교는 역사 속에 쇠하여져 가도 당신은 여전히 흥하시기를.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을 가능한 오래 기억해 주기를, 고요한 내면의 깊은 고둥소리에 집중하기를.
영화의 첫 시작이 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주인공 칼은 야야도 아닌 에비게일도 아닌 그 모든 계급사회에서 도망치는 중이었을 수도 있음을. 다시 돌아가지도 머무르지도 않고 이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향해 삼각형을 벗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윌리엄스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아이를 발견하고, 또다시 자신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모든 가능성을 꿈꾸는 아이들을 과거와 미래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동정심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전쟁의 폭격의 잔해가 쌓인 죽음의 공간을 새로운 생명들이 활기차게 뛰놀 수 있는 놀이터로 바꾸는 일에 최선을 다했음을. 그 작은 일이 윌리엄스에게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상이었음을. 바뀐 것은 작고도 확고해진 마음가짐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교장은 이만 아침방송을 마칩니다.
체크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