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살아가고 있을 거야. 어디에서든
에세이_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세워주는 일.
그게 내가 그 독서모임의 잔상이 오래 남는 이유였다. 2022년 김승옥 문학상을 읽고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중 앞에 배치된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다.
결국 사람을 세워주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고. 서로를 세워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이미 두 달이 되어버려 내가 그분의 말을 미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밤은 뭔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그러나 눈물이 차오르다 명치에 걸려버린 듯한 느낌이다. 마치 이 지점에서 어떻게 다음 문장을 적어야 마음의 담긴 것을 언어로 풀어낼까 고민하는 마음처럼 커서는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깜박이고 있다.
2년 4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는 일, 내일도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소설 [밝은 밤]에서 주인공이 큰 어려움을 겪은 후 희령이란 도시에 가서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에게 새로운 도시는 밝은 밤의 주인공과 반대로 절망을 선사했고 나는 이 도시에서 수십 번의 잠들지 못한 밝은 밤을 마주했다.
한 해를 이겨내고 나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은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소문 때문일까. 나의 피해의식 때문일까. 다음 해도 변치 않게 지독한 미움을 받았다. 그리고 세 번째 해인 올해 부단히 애써 두 달간 행복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복귀하였고 나는 다시 밝은 밤을 마주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나를 아끼고 꾸미기 위해 실천한 일들이 어떤 이에겐 내가 이성을 꼬시고자 하는 일들로 치부가 된다. 사실여부와 상관이 없이 나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더 어려운 문제는 내가 그들의 생각이 너무 빤히 보인다는 것이다.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에 걸렸는데 발버둥을 칠수록 거미줄은 더 엉겨 붙거나 반복적으로 감겨온다는 점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10시간 이상 함께 있어야 하는 이들의 다수가 이 거미줄을 치는 작업에 몰두하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심히 지친다. 특히나 그 거미줄이 나를 포획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을 땐 할 말을 잃는다.
그래서 요즘 한동안 불행이 너무 미웠다. 잘못이 없는 타인이 공감받기를 바라는 불행조차 아니꼬워져 버린 상태에 이르렀다. 그 계기는 자신의 불행으로 남을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가진 희망의 최대치를 꺼내야 숨을 쉴 수 있는데 그들은 본인들의 불행을 쉽게 지나치고 들여다보지 못한 채 새로운 흥밋거리를 계속 찾아 헤매였고 나는 지쳐버렸달까.
어쩌다 보니 나도 힘든 상황에서 내 소문의 상대방까지 지키고 있다. 지키는 방식은 단단한 신뢰로 그에게 응원을 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웃어 보이는 일. 여전히 사소하게 장난을 거는 일이다. 이를 보고 그들은 "봐, 좋아하는 게 맞잖아."라는 의견에 대한 확신과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래서 나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을 해보았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오." 그것도 스스로를 속인다고 비난한다면 "아직, 저와 그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렇게 까지 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어려운 자리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게 돕는 것. 어려울 때 옆에서 지키는 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이자 신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 눈에 개똥일지라도.
2년 4개월 간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참 많은 부정과 고독 속에 놓여있었다. "무시해. 그럼 돼.", "네가 그럼 그런 행동을 줄이면 그들이 안 그러겠지.", "결국 넌 혼자만 순전 무구한 거야?"라는 말들은 조언으로 삼고자 했으나 벌어지는 결과는 오답판정이 났고 나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난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행복감을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춤을 추고 여행을 떠났다. 그럴 상황과 여유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의 울타리를 세워간다고 믿었다. 울타리는 세워진 것이 맞으나 여전히 거미줄은 나의 울타리를 부서트리면서 말한다. 네 울타리는 무력하다고.
나만의 케렌시아를 지켜내지 못할 거라고.
2년 4개월을 지나치고 있는 오늘 나는 깨달았다. 불행과 불안은 어느정도 지니고 가도 된다는 것.
행복하면서도 마음의 반절은 불행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게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행복한 감정이 유지가 되거나 해야 정상이 아니라 행복감과 불행감과 불안은 같이 존재해도 된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도 잠들려 하지도 말라고.
어느 순간이 되면 행복감으로 채워진 순간이 나의 오늘의 안녕을 빌어줄 것이며 지금의 2년 4개월이 흐릿해지는 시기도 올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렷하고 굵은 대나무는 꺾이지 않고 오래 사는 경우도 있다고. 나라는 존재도 내 삶도 타협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굽히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가끔 울타리가 무너져도 울타리를 세우는 일. 그것을 써 내려가고 표현하는 일은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나.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가서 닿을 거라고. 그러니 끊임없이 쓰고 추고 읽고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서로에게 닿는 일이자 잠시 넘어진 누군가를 일으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쓴다.
결국 나의 밝은 밤들은 따뜻한 햇살이 위로처럼 다가오는 아침을 맞이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