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편
- 안녕, 기억 -
잠결에 그리운 사람이 쓴 아름다운 편지를 읽는다.
몸을 뒤척이며 체온이 닿은 자리와 닿지 않은 자리를 가늠해본다.
(중략) 벌써 편지의 구절들이 가물거린다.
한 번 더 꿈이 몰려든다.
그리고 다음은 아침이다.
- 황경신, 「나는 토끼처럼 귀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중.
오래전 선물 받았던 책을 펼치는데, 맨 앞장에 그가 나에게 남겨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유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골랐다던 그 이. 조금 의아했던 건, 그가 그 날의 날짜를 2017년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잘 못 적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당시에는 존재했던 의미를 내가 잊은 것일 수도 있겠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까지도(이제 겨우 2016년이지만) 여전한, 그의 엉뚱함과 발랄함이 꽤나 반갑다는 사실이다.
그 이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내게 더 없는 즐거움을 주다가도 사라지고, 또 느닷없이 나타나 본인이 만들어준 따뜻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뜬금없이 인연이 시작됐던 그 날도, 나는 알지 못했던 이유로 뜸해졌다가 돌아온 그 날도, 고작 몇 마디 문장으로 나타난 오늘도, 그는 언제나 담담하게 다가왔으며 무심하게 떠나갔다.
매일 곁에 두고 지켜볼 수 없음이 아쉬웠던 적 있지만, 오히려 이쯤 되니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짧은 시간,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진 그가 이다음엔 또 어떤 모습으로 분하여 나를 찾아오려는가.
바람이 부는 토요일 오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달뜬 마음으로 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