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편
- 궤도를 이탈한 행성처럼 -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기어이 살아 있고, 황홀하게 살아 있고, 봄날의 속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으니, 우리는 사랑을 하자.
- 황경신, 『밤 열한 시』중.
몇 겹의 어둠이 쌓여
별빛 한 줌 새어 나오지 않던 밤에
너는 궤도를 이탈한 행성처럼
내게 쏟아졌다
네 중력에 이끌려 다가서자
흐르던 풍경은 멎고
너는 물감처럼 나를 적시며
진하게 또 깊숙하게 번져간다
그리하여 나의 우주는
모두 네 것이 되었다가
너 하나로 남았다가
기어이 너를 향해 침몰하고
나는 오직 너의 위성이 되어
너를 맴돌고
너를 사랑하고
황홀하게 사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