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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립 Aug 18. 2024

카페에 대하여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카페인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나서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사실 성인이 되고 한 동안은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불안 증세가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기 시작한 후로부터, 나는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들을 강박적으로 줄여나갔다. 그리고 그 요소 중 하나가 커피였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아가다 보면 카페에 가야 할 일이 꽤 자주 생긴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이야기할 것이 있거나, 잠깐 쉬고 싶거나 할 때 습관적으로 카페에 가는 것 같다. 그럴 때 카페는 커피나 차를 마시러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편안함을 위해, 또는 편안함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해 찾는 공간인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카페에 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편안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가 티타임을 하자고 제안한 것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갈 때도 있다. 그럴 때 방문하게 되는 카페는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티타임을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아마도 조금이나마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카페에 가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는 실제로 편안함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편안함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해 찾는 공간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늘도 사실은 카페에 다녀왔다. 파트너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양재역에 새로 생긴 테라로사라는 카페에 방문했다. 카페는 깔끔했지만, 음료가 비쌌다. 아마도 좋은 자리에 있으니 임대료가 비싼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음료보다도 샌드위치 하나의 가격이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이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직접 먹어보면 그만한 값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전시 샘플을 봐서는 절대 만 원이 넘는 샌드위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 샌드위치를 먹어보지 않았으므로 그 가치에 대해 논할 만한 자격이 없을 것이다. 나는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바질 같은 것이 첨가된 좀 독특한 레모네이드였는데, 사실 나는 카페에 가서 마시는 음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음료에 들어가는 재료나, 어떤 맛이 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매장 내부 창가 쪽에 앉아 있던 한 남녀였는데, 아마도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무엇보다도 소개팅을 하는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어색함과 설렘이 느껴졌다. 거리가 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여자가 크게, 그리고 자주 웃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남자는 별로 웃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내 쪽에서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잘 웃거나, 다른 사람을 잘 웃게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물론 나의 아주 아주 단편적인 인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그렇게 잘 웃는 이유가 난 개인적으로 궁금했고, 그래서 그 남녀에게 정신이 팔려버린 것이다. 아마도 남자의 외형이 그 여자의 마음에 쏙 들었거나, 그 외에도 남자가 가진 어떤 종류의 특성이 여자를 그토록 웃게 한 것일 테지만, 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그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저 그 여자가 평소에 아주 잘 웃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격증 공부에 내 정신의 40%, 그 남녀에 정신의 60% 정도를 쏟다가, 카페 안의 에어컨 공기가 춥게 느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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