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이별후에 07화

이별후에 06

기억

by 박바로가

제6화 기억


알람을 맞춰놨는데도 나는 알람보다도 일찍 잠에서 깼다. 아직도 그가 이별통보한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의 차갑고 건조한 메시지에 나는 뒷머리가 쮸삣쮸삣 서는 경험을 했다. 순간 나는 숨도 못 쉬겠고 그 앉은 자세로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몇날 며칠을 아무 감각도 없이 생활을 했다. 어른들이 “든 자리는 잘 몰라도 나간 자리는 표가 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막상 내 안에 이미 들어와있는 그를 내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하니 너무 어렵다.

그 이유인즉슨 그와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함께 하는 동안 여러 곳에 같이 다녔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머물렀던 공간이 주는 아픔이 크다. 그와 함께 갔던 식당, 그와 함께 갔던 커피숍, 그와 함께 갔던 영화관 등등 소위 추억의 장소가 내 숨을 조여온다.

숨이 편하게 쉬어지지 않고 옅은 숨만 쉬어진다. 늘 하던 일상도 심드렁해지고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가 비록 이기적인 사람이었어도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은 그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사실 그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그와 함께한 습관이 익숙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커피숍에 가면 그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메뉴를 한번 더 훑어보게 된다. 혹여나 커피숍 계산대에서 내가 계산할 때 누군가 뒤쪽에서 내 옆으로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반가움 마음으로 그 사람을 다시 살피게 된다. 혹여 차를 타고 가다가, 그와 함께 갔던 식당, 혹은 가려고 했지만 그 날 문이 닫혀 못 갔던 식당을 지나가게 되면 내 마음은 심하게 두근거린다. 그 식당 근처에서 그를 우연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 모를 기대감 때문이다. 내가 뜻 모를 기대감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는 끝난 관계이기 때문에 “뜻 모를”이란 단어를 쓴다. 관계를 정리해야하는 상황에 기대감이 솟는 것은 반칙이다. 영화관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영화를 좋아했던 그의 취향에 나도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다. 이제는 그냥 흥행하는 영화는 흥미가 떨어진다.

나는 어느새 그의 취미, 습관, 흥미에 길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제 만날 수 없다. 그런데도 그의 것들이 나에게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어디 같이 이동할 때, 커피를 두 잔 준비할 필요도 없고, 간단하게 도시락을 두 개 쌀 일도 없다. 가끔 밥 먹을 때 식당 아주머니에게 너스레 떨며 예쁨 받던 그의 능청과 농담도 더 이상 들을 수도 없다. 그의 매력적인 눈웃음도, 그의 차가운 말투도, 그의 산뜻한 체취도, 세련된 그의 몸짓도, 웃으면 치아가 가지드러나는 미소도 이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둬야 한다.

이제 나는 남은 것을 추억하거나 기억의 어딘가에 꽁꽁 묶어서 파묻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마음이 몹시 힘들것이라 생각된다.

사람이 나간 자리...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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