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음식
제4화 음식
우연히 명동에 갔다가 명동소바를 먹었다. 차가운 감각으로 혀를 감싸오는 소바를 먹으니, 예전에 그와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 날은 그가 비즈니스 접대이후 만난 토요일 11시쯤이었다. 그는 시원한 국물로 해장하고 싶어했고 우리는 같이 명동소바집으로 향했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집보다는 국물이 시원한 소바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먹성을 가졌고 반찬을 골고루 먹는 예의가 있었다. 음식을 조금씩 먹는 듯 마는 듯 하는 나보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는 그는 어디 가서나 이쁨을 받았다. 음식점 아주머니들한테도 너스레 농담을 건네고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인간과의 관계가 완만했고 누구든 자신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리 없다는 확신이 있어보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몹시 달랐다. 나는 부끄럼을 타서 처음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성격검사에서 E였지만 나는 어쩌면 E를 가장한 I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I였음에도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런 그는 나아게 마치 연극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친근함을 무장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어쩌면 그가 나에게 말해준 성격유형이 애초에 잘못된 정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돌아보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지극히 적다.
소바를 먹은 날 우리는 사진을 찍으러 다른 곳으로 이동했었다. 그 날은 날씨가 더워서 가는 길에 열무냉면을 먹었다. 그 전날 무리한 술접대로 그의 위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날따라 그는 다양한 먹거리를 사먹었다. 찐 옥수수도 먹고 찐 술보리빵도 사먹었다. 3년간 만났지만 그날 제일 주전부리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나에게 간식을 사주기까지 했다. 우리가 사귄지 2년만의 일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나에게는 다소 친절이 부족했다. 비록 내가 그와 다르게 이과쪽 일을 하고 있어도 나는 여자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아쉬움만 남겨주는 행동을 했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었으나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오면 뭔가 기분이 상하는 일이 발생한다. 어떤 때는 그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어떤 때는 나에게 핀잔을 주어서 어떤 때는 우리 데이트에 다른 사람이 끼어 들어서 어떤 때는 같이 쇼츠보다가 기분 상해서 등등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나의 에고(ego)에는 큰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가 본능적인 것인지 학습에 의한 것인지 내가 기분 상한 것을 금방 눈치챈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었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식당에서 찍거나 집에서 만들어서 나에게 사진으로 보내왔다. 그는 내가 그에게 마음을 접고 돌아서려고 할 때마다 음식과 같은 진부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본능을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언젠가 팬션으로 놀러가면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우리 둘은 몹시 바빴다. 그리고 둘의 시간이 맞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이제 겨우 대학원 석사 연구를 마친 뒤 대기업 2년차 인턴 연구직이었고 그는 대기업에서 1년차 대리직을 맡고 있었다. 둘 다 회사 일을 하는 입장에서 바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의 야심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그를 항상 더 바쁘게 만들었다. 나 역시도 내 커리어가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가 3년 동안 만난 회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략 30여번일까. 그나마 그 횟수는 내 시간을 쪼개서 만난 시간이었다. 그것을 후휘하진 않는다. 나는 그 동안 충분히 내 나름대로 그를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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