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다면

알다가도 모를 맛

by 박바로가

가끔 조용필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누가 아름답다 말했는가?"라는 묻고 싶다.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하기 전에 치열하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 다른 타인들이 서로를 알아가기에 치열하고,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치열하게 알아서 메꿔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서로 마음껏 상대방에 대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녀의 표정이 심통 난 표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녀에게 조심하고 비위를 맞춰주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냥 생리통으로 고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남자가 잘해주지만 그것은 그녀를 사랑해서라기보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싶어서이다.

또한 사랑하기에 무엇을 해준다는 말은 위험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는 데다가 그녀나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정으로 모른 채, 그녀나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려고 한다는 자체가 언어도단(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알아도 배려하기 때문에 해주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준다는 말로 자신을 속여가며 무리해서 선물을 주고 그 무리한 만큼 상대방에서 무엇인가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되면 관계는 깨지게 된다. 상대방에게 압박을 하게 된 것이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취향을 밀어붙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은 자기본위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신. 이런 줄도 모르고 상대방을 자신의 욕망으로 괴롭히는 것은 몹시 씁쓸한 행동이다. 하지만 사랑을 처음 할수록 이런 상황을 모른채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들을 계속 겪으면서 상대방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씁쓸해하면서 쓴 맛을 되새김질한다.


하지만 사랑을 할 때 샘솟는 도파민의 중독일까?


결국 다시 그 쓴맛 나는 사랑을 다시 찾아 헤매 다닌다. 그 도파민이 원기소 영양제의 끝 맛에 나는 고소한 맛처럼 계속 사랑을 찾게 만든다. 그래도 사랑을 제대로 하면 영양제인 원기소처럼 자기중심이 생긴다. 배신을 당하고 사랑이 자신을 울리면 결국 자기 자신이 남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었지만 이번에 남는 자신은 현실을 직시하는 자신이다. 타인(다른사람)을 꾸며서 생각하는 자신이 더 이상 아니다. 현실적으로 변해간다.


그것이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진정한 지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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