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전설
봉숭아 꽃 / 로나 박
외할머니가 백반을 찧고 계신다
야트막한 담장 밑 한 귀퉁이
튼실한 다리로 버티고 서서
봉긋한 꽃봉우리 막 터트리는
하양, 분홍, 살구색 꽃잎이
바람에 조심스레 흔들린다
어느새 할머니 손톱 밑을
물들이는 백반 냄새와 꽃잎의 비명
내 손톱 위에서 소리치고 있다
형태가 없어지고 색과 냄새만 남은 꽃
“첫눈 올 때까지 물이 안 빠지면
첫사랑이 온다지“
외할머니의 그 말을 잊지 않고
살아왔건만
첫눈까지 내 빨리 자라는 손톱은
내 첫사랑을 애써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