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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6. 2022

계집애라는 이유로

에피소드 1-나는 딸이었다

오늘부터

 브런치 작가로서 주제별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많이 서툴 거예요.

하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용기를 내어 브런치를 새로 시작합니다.





“응애! 응애!”

학교 관사에 계시다가 토요일이라서 집에 오신 유 선생님은 집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쁜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어찌 된 일이오?”

“저, 아버님께서 딸이라고 아비에게 알리지 말라고 해서요.”

“이렇게 예쁜 딸이 태어났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소.”

 유 선생님은 아기가 너무 예뻐 안고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초등학교 교사이신 아버지께서는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시다가 토요일에 가족이 있는 집으로 내려오시고, 어머니께서는 중풍에 걸리신 할머니를 돌보시며 집안 살림을 하시기 때문에 시댁에 남아 계셨다.  

   

 나는 1959년 5월 14일 강원도 명주면 오봉리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나자 어머니께서는 더 바빠지셨다. 평소에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집안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기를 업고 우물에 물을 뜨러 다녔고 식사 준비도 하셨으며,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또한 지저분한 것을 못 보는 성미라 집안도 늘 깨끗하게 청소하셨다. 빨래할 때는 우물가에 아기인 나를 나무에 기저귀로 묶어놓고 하셨으며 밤에 아기가 울면 시끄러워 시부모님이 깰까 봐 등에 업고 앉아서 주무시기도 하셨다. 다행스럽게 아기는 순해서 누여놓아도 울지 않고 잘 있었다고 한다. 아기 때 너무 많이 누워 있었고 더군다나 첫아기여서 한쪽으로만 누여놓으면 머리가 비뚤어진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 머리는 뒤쪽이 납작할 뿐만 아니라 약간 비뚤다. 이러한 현실에서 내가 태어난 지 2년 후인 1961년 3월 23일에 남자 동생이 태어났다.     


 계집애라는 이유로 할아버지께서 호적에 1년 늦게 올리는 바람에 1960년생이 되었다. 나이를 이야기할 때면

 “사실 59년 돼지띠인데 호적에 한 살 줄어서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되었지만 할아버지 덕(?)에 한 살이 줄어서 정년퇴직을 1년 뒤에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남자 동생을 보았다고 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나를 예뻐하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서 어르신들은 아들을 선호하였지만 지금은 딸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데 아들만 있는 어르신들이 딸만큼 부러운 게 없다고 하신다고 늘 말씀하신다. 어르신들이 아들들이 있지만 혼자 원룸 같은 데서 지내시며 주간보호센터에 오셔서 식사 등을 해결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남동생이 두 명 있지만 사정이 있어서 어머니를 모시지 못해 결국 우리 집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어머니도 딸인 우리 집에 계시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신다.

      

우리 집도 아들만 둘이라 노후를 걱정하게 된다. 가끔 남편 보고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아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맙시다.”

 라고 말한다. 요즘은 딸로 태어난 것이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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