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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7. 2022

이모를 엄마로 알다

      에피소드 1-나는 딸이었다

 아버지께서 성산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묵호에 있는 초등학교로 발령이 나셔서 우리 집은 묵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곳은 대관령 아랫동네인 산골 마을이었는데 묵호는 바닷가 마을인 어촌이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배가 있는 바닷가가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 날 이모와 바닷가에 놀러 나갔다가 이모가 잠깐 생선을 사고 돌아보니 아이가 없었다. 깜짝 놀란 이모는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며 아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 요만한 여자아이 못 보셨어요?”

 “아까 저쪽 배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같았소.”

 이모가 배 있는 곳에 가보니 아이가 태연하게 서서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미래야, 왜 여기 있니? 이모가 얼마나 찾았는데……”

 “어! 이모. 바다에 새가 참 많지?”

 갈매기를 가리키며 아이는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걱정도 없었고 무엇이든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는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여섯 살이 되던 봄이었다.

 “아주머니, 우리 집에 지은이같이 고추 달린 아기가 태어났어요.”

 동네에서 만나는 아주머니마다 새로 태어난 동생 자랑을 하였다.

 “너네 엄마, 배도 부르지 않았는데 언제 아기 낳았니?”

 이렇게 둘째 남동생이 태어났다. 지금도 아이 키우기가 많이 힘들지만 그때도 연년생 아이 셋을 혼자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동생들 때문에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셔서 나는 강릉에 있는 외갓집에 보내져서 그곳에서 많이 지냈다. 외갓집에는 결혼하지 않은 이모가 둘이나 있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모를 엄마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외갓집은 강릉 시내에서 경포 바닷가 중간쯤에 위치한 배다리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는데 뒤쪽은 산이라 감나무와 밤나무가 많이 있었다. 앞쪽은 논이 있었는데 논 앞으로는 냇가가 있었다. 여름에는 논을 누비며 빈 병에 메뚜기를 잡아서 볶아 먹었고 냇가에서 물놀이하던 일도 생각난다. 외갓집은 초가집이었고 집 주변에 있는 밭에 시금치 등 채소를 키워서 팔았으며 가마니를 짜서 팔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송아지를 사서 잘 키워서 소가 되면 팔아 대학에 다니는 외삼촌을 뒷바라지하였다. 외할아버지는 약주를 너무 좋아하셔서 늘 술을 드셨다. 내가 6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정말 키도 크시고 인물도 좋으셨다. 약주만 많이 안 드셨어도 오래 사셨을 텐데.     


 어릴 때 나는 배냇머리부터 자르지 않고 길러서 머리가 아주 길었는데 머리 감는 것도 너무 싫어해서 머리 한번 감기려면 온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약도 잘 안 먹어서 약을 먹이는 일도 큰일이었다고 이모들이 나중에 많이 놀렸다.      


 나는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6학년부터 고3까지 외갓집에서 지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이모들과 함께 지냈기에 이모가 곧 엄마였다. 하지만 이모가 모두 돌아가셔서 지금은 만날 수가 없다. 이모가 그립다.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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