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 내 짝꿍은 1부 성가대 대장님이다. 그것도 8년 차 대장님이다. 주일이면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교회에 도착하여 교회 문을 연다. 성가대 대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완벽하게 연습 준비를 해둔다. 나이도 많은데 힘들다고 한 번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팔 년째하고 있다.
우리 교회 1부 성가대는 7시 30분 1부 예배 때 찬양을 하기 때문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늦어도 6시 30분까지 교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하고 가려면 여자 대원들은 적어도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성가대 대원으로 의욕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몇 번 연습하다 보면 힘들어서 그만두는 성도들도 많다. 1부 성가대 대원들은 정말 믿음이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2년 반 정도 짝꿍을 내조하느라 1부 성가대를 섬겼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 없는 것이 노래 부르는 거였지만 성가대를 하며 발성 연습도 하고 찬양을 많이 부르다 보니 노래가 조금씩 늘었다. 이제 배에서 소리 내는 것도 알 것 같고 예전에 비해 정말 노래가 많이 는 것을 느낀다. 성가대를 하며 초등부 교사도 겸하였었는데 쌍둥이 손자가 태어나면서 육아로 그만두게 되어 많이 아쉽다.
1부 성가대 대원 수는 늘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지만 지금은 28명에서 30명 정도 유지된다. 40명 정도까지 된 적도 있지만 일찍 나오는 것이 힘들다 보니 2부나 3부 성가대로 가는 분들이 있어서 찐 믿음을 가진 분들만 남았다. 짝꿍이 성가대 대장을 하면서 힘든 점은 지휘자가 사정이 생겨서 그만둘 때인 것 같다.
벌써 팔 년 동안 다섯 명이나 지휘자가 바뀌었다. 우리 교회는 외부에서 지휘자를 초빙해 오지 않기 때문에 성도님 중에서 음악적 재능이 있으신 분들이 보수 없이 봉사로 사명을 감당한다. 지휘자가 갑자기 그만두면 대장님이 지휘자를 섭외하느라 힘들다. 물론 교회에서도 알아봐 주긴 하지만 가장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대장님인 것 같다. 이번에 임명된 지휘자님께서 오래 봉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짝꿍은 아버지가 장로님이셨고 사촌 중에 미국에서 목회하는 분도 있는 기독교 집안사람이다. 모태 신앙으로 학창 시절에도 교회에 열심히 나갔고 청년 시절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정말 열심히 다녔다. 청년 선교회 활동을 하며 경찰서 유치장에 전도를 다닐 정도였다. 나도 두 번 정도 따라갔었는데 설교 후에 주님을 영접하실 분들은 일어나라고 하면 신기하게 일어나는 분들이 있었다. 유치장에 있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이유 없이 들어오진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들어온 분도 있었을 것 같았다.
짝꿍은 믿음이 컸지만 30대 후반부터 취미 활동으로 사진 작가회 활동, 골프 등에 빠져서 꽤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골프도 사진도 직장에 다니기에 주말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골프로 이글, 싱글, 트리플버디도 하게 되어 더욱더 재미있어 교회는 점점 더 멀어졌다. 하지만 교회에는 안 나갔지만 나와 아이들에게는 교회에 나가라고 당부하며 주일 헌금을 늘 챙겨주었다.
하나님을 아주 떠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주위에 유혹이 너무 많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살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생겼다. 걱정이 많았지만 짝꿍은 처음으로 경매에 대한 공부를 하였고 우리가 낙찰받는 것이 가장 손해를 덜 보는 것임을 알고 어렵게 낙찰받았다. 그래도 없는 돈에 손해를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주님께 돌아오지 못했다.
2000년에 서울에서 살다가 아파트를 분양받고 인천으로 입주하였다. 이사를 오며 몇 년 동안 우리 가족은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그러던 중 내가 먼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처음 교회에 등록하면 새 가족 교육 과정을 이수한 다음에 알파를 한다. 내가 먼저 알파를 하였고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나도 알파를 하면서 믿음이 더 커진 것 같다. 내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걸 알면서도 짝꿍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믿음이 돌아오지 않아 내 마음만 애가 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짝꿍이 교회에 함께 가겠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서울에 있을 때도 장로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같은 장로교회라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처음 교회에 간 날 짝꿍은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많은 눈물을 흘렸고 목사님의 설교가 모두 자기를 두고 하는 말씀 같다고 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숨어있었는지 거의 6개월 동안 울면서 예배를 보았다. 신기한 일은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디모데회로 함께 친하게 지냈던 형님이 우리 교회 장로님으로 계셨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짝꿍이 너무 반가워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시작된 남편의 신앙생활은 알파를 통해 빛났다. 즉 알파를 통해 거듭났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동안 피우던 담배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 알파를 이수한 후에 스스로 1부 성가대를 찾아가서 봉사하겠다고 했다. 사실 남편은 중학교 때 성악을 배우다가 가정 형편 때문에 그만두어 늘 찬양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부 성가대 대원이 되었고 2015년 1월 11일 임직식에서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으면서 1부 성가대 대장님이 되었다. 너무 자랑스러워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많이 힘들 텐데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봉사한다. 더군다나 알파를 할 때마다 리더로 게스트를 섬겼으며 마음이 온통 교회에 가 있는 듯하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주 토요일에 모여서 찬양 연습을 하였다. 1부 성가대는 2, 3부 성가대에 비해 대원이 적어서인지 늘 연습하는 장소도 열악하였다. 옆방에서 의자를 가져와서 연습을 하였다. 짝꿍은 성가대 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몸도 조금 뚱뚱하여 민첩하지도 못하다. 무릎도 부실해서 늘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 그럼에도 제일 일찍 가서 의자를 옮겨와 세팅을 하고 마이크 시설을 점검하며 연습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둔다.
1부 성가대를 위해서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한다. 젊은 남자 대원들도 있는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면 그런 짝꿍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끔 안쓰럽다. 그래도 본인이 즐거우면 되는 거니까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였다. ‘대장님’이란 호칭도 너무 좋았다.
짝꿍이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고 성가대 대장이 되던 해 2015년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창립 25주년 기념 부흥회가 있었다. 세계로 교회 김명호 목사님께서 강사로 오셨다. 우리는 3일 내내 부흥회에 참석하였고 특히 남편이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말씀 중에 솔로몬 왕의 일천 번째 설교를 듣고 부흥회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일천 번째를 시작하였다. 주 3회 주일과 수요 2부 예배, 목요 철야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새벽 예배도 매일은 아니지만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본인과 아내, 아들 둘 이름으로 일천 번째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일천 번째는 2021년 10월 말에 끝났다. 우린 일천 번째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짝꿍은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는데 한 달 만에 다른 회사 부사장으로 재취업하게 되었고 아들 둘도 결혼 비용이 부족한 가운데 무사히 결혼시키게 되었다. 특히 큰아들은 지난 12월 초 코로나19로 어려웠지만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결혼하여 아들 손자도 세 명이나 보았고 나이 칠십인데도 아직 회사에 나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짝꿍이 기도에 힘쓰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즈음도 기도할 때 짝꿍이 1부 성가대 대장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건강 주시라고 기도한다. 나이도 곧 일흔이고 팔 년이나 했으니 좀 더 젊고 잘할 수 있는 분에게 대장을 맡기면 좋겠다고 말하면 짝꿍은 목사님께서 임명하시면 아멘~하고 순종하며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10월 마지막 주에 2023년 사역이 발표되었다. 짝꿍은 2023년에도 1부 성가대 대장님으로 임명을 받았다. 다시 시작되는 사역도 분명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봉사할 것이다. 어쩌면 내 짝꿍은 1부 성가대 대장님으로 10년을 채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짝꿍이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짝꿍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