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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31. 2022

스크린 골프가 이제 싫어졌다

스크린 골프 화면

정말 오랜만에 짝꿍과 스크린 골프를 예약하였다. 짝꿍이 다음 주말에 라운딩이 잡혀있어서 가기 전에 몸도 풀고 골프채 거리도 측정하기 위해서다. 짝꿍은 구력이 20년이 넘는다. 나도 짝꿍보다 2년 늦게 시작했지만 제법 구력이 오래되었다. 인도어 골프연습장에서 연습해야 하는 것이 좋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린 라운딩 나가기 전에 스크린을  두 번 하고 나간다. 스크린에서는 남은 거리에 따라 골프채를 모두 사용하여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크린 골프를 좋아한다. 지인들끼리 모여 서너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웃으며 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풀린다. 많은 규칙을 정해 벌금도 내며 치다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벙커나 해저드에 빠져도 천 원, OB 천 원 등 점점 더 벌금을 많이 낼 규칙을 만들어 경기를 하다 보면 웃을 일도 많아진다. 모아진 벌금으로 게임비를 낸다. 몇 년 동안 스크린 골프를 정말 많이 치다가 코로나19 이후에는 지인들과 스크린 골프를 거의 하지 않고 가끔 짝꿍과 하게 되었다. 지는 사람이 스크린 비를 내고 끝나면 가끔 외식도 하고 들어가서 그날은 식사 준비에서도 해방된다. 그래서 스크린 하는 날은 늘 즐거웠다.


오늘은 짝꿍이 주말에 나갈 그랜드 CC를 코스로 선택하고 바람 약하게 그리고 프로 코스로 세팅하였다. 그리고 컨시드는 1미터로 하고 짝꿍은 화이트로 나는 레드로 티박스를 선택하였다. 첫 티샷을 힘차게 날렸다. 웬일인지 가운데로 잘 나갔다. 물론 오랜만에 치기에 비거리는 짧아졌다. 짝꿍은 첫 홀부터 러프에 빠졌다. 오늘도 내가 꼭 이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골프는 마지막 홀까지 쳐봐야 안다고 오랜만에 치니까 어프로치 거리도 들쑥날쑥이고 퍼터도 이자가 더 많았다. 이자란 퍼터를 쳤는데 남은 거리가 더 멀어졌다는 뜻이다. 짝꿍이 잘 사용하는 말이다. 


9홀 전반전을 쳤는데 벌써 11개나 오버이다. 해저드가 있는 홀에서 세컨을 3번 우드로 쳤는데 해저드에 번이나 빠져서 더블 파를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운딩을 가면 짝꿍이 잘 치지만 스크린에서는 한 번도 짝꿍에게 진 적이 없었는데 계속 밀린다. 연습도 안 하고 라운딩도 안 나가고 오랜만에 채를 잡아보며 잘하기를 바란 내가 교만이 넘쳤다. 오늘은 파만 나와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꿍도 힘만 들어가고 드라이브가 오른쪽 왼쪽 정신이 없다. 다음 주에 라운딩을 나가야 하는데 큰 일이다. 다행스럽게 후반에는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버디를 한 번도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짝꿍은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아픈 허리가 안 하던 골프를 그것도 잘 안 맞으니까 힘을 주어 치다 보니 더 아픈 것 같다. 공이 잘 안 맞으니 스크린도 재미없다. 지금까지 스크린 골프가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재미없다. 이러다가 골프를 아주 그만두는 게 아닐까 싶다. 18홀이 모두 끝나고 나니 짝꿍은 92타를 나는 94타를 쳤다. 내가 다. 당연히 오늘은 내가 스크린 비를 냈다. 저녁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외식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와서 짝꿍은 안 쓰던 근육을 쓴탓에 여러 군데가 아파서 진통제까지 먹었다. 짝꿍은 한참 열심히 칠 때 이글도 하고 싱글도 하여 우리 집에 이글패, 싱글패를 비롯하여 골프 관련 기념패도 여러 개 있는데 요즘 너무 오래 골프를 게을리한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고 결과도 좋으면 늘 재미있다. 그래서 다음에 또 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점점 잘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처럼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고 결과도 나쁘면 다음에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물론 오늘은 실패한 이유를 알기 때문에 앞으로 연습도 많이 하고 노력하면 다음에는 분명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문제다. 연습해서 앞으로 잘할 것인가 그냥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잘 안 맞아도 가끔 오락으로 즐길 것인가. 짝꿍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연습장 회원 등록을 해서 다시 운동하겠다고 한다.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해 며칠 더 생각해야겠다.   


스크린 가면서 마음이 즐거웠고 요즘 헬스 다니며 근육도 키웠으니 비가리도 좀 늘었겠지 생각했다. 골프 연습도 안 하면서 막연하게 요행을 바랐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끔 라운딩도 나가고 스크린도 하려면 연습도 좀 해야겠다. 골프채를 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걷기 말고는 골프라고 하니 짝꿍과 함께 운동하려면 골프를 아주 그만두는 것은 안될 것 같다. 골프를 그냥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즐기며 쳐야지 오늘처럼 욕심부터 내면 마음도 몸도 상한다는 것을 스크린 골프를 통해 배운 날이다. 그리고 나이 들었다는 것도 인정하고 아~옛날이여 하며 현실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중요할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스크린 골프가 재미없었지만 다음에는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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