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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Nov 17. 2022

친정엄마의 라떼

금화규 꽃

"라떼 말이야, 저런 것은 일도 아니었어."


TV를 보시며 친정엄마는 늘 이렇게 말하고 싶으실 것 같다.


친정엄마는 정말 총명하고 건강하셨다. 목소리도 어찌나 청청하신지 모르는 분은 전화받는 분이 젊은 사람인 줄 아신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강릉에서 혼자 생활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시면 엄마표 요가를 누워서 30분, 일어나서 30분, 매일 1시간씩 하셨고 스탭퍼도 천 번을 하셨다. 나도 돌리기 어려운 두꺼운 훌라후프를 매일 천 번씩 돌리셨다. 어느 날 다리가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무거운 훌라후프를 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훌라후프를 그만두셨다.     

  

친정집이 주택이라 겨울에 외풍이 있어서 추웠다. 그리고 기름보일러라 기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인지가 나빠지기 전에도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매년 겨울을 보내고 내려가셨다. 11월에 친정아버지 기일이 있어서 모두 모여 기일을 보냈다. 아들딸이 올라가면 집 정리하신 후 12월에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서도 우리 집을 늘 찾아오셨다. 12월에 올라오시면 우리 집 김장을 해주셨다. 카드와 현금을 조금 드리면 김장 배추를 비롯해서 김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사다 놓으셨다. 그때 나는 서울로 출근하고 있을 때여서 친정엄마가 다 준비해주시면 주말에 김장을 하였다. 어찌나 손이 빠르신지 나는 고춧가루 넣으라면 넣고, 새우젓 넣으라면 넣는 보조역할만 했었다.    

  

친정엄마가 건강하시기 때문에 김장하는 것을 자세히 배우려고도 안 했다. 매년 친정엄마가 김장을 담가 주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 그래서 후회가 된다. 김장 담그시는 것을 차근차근 배울 걸 그랬다. 올해는 내가 며느리 데리고 김장을 담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총각김치도 뚝딱, 파김치도 뚝딱, 어머니 손만 가면 모든 게 도깨비방망이처럼 해결이 되었었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벌써 저녁도 다 준비해 두셨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도, 내가 좋아하는 도라지 무침도 금방 해주셨다. 정말 친정엄마가 건강해지셔서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12월 초에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겨울을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가시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더 계시다 가시라고 자꾸 붙들었다. 어떤 해는 3월에 내려가시고 어떤 해는 벚꽃이 핀 후 4월에 내려가시기도 하셨다. 1년에 4개월 정도는 늘 우리 집에서 보내셨다. 고향 집은 보일러를 자동으로 맞추어 놓으면 추울 때만 보일러가 돌아가기 때문에 보일러가 얼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늘 친하게 지내는 윗집 사모님께서 가끔 내려가셔서 집을 살펴주시기 때문에 집 걱정은 덜 되었지만 그래도 친정엄마는 늘 걱정을 하셨다.

“사모님, 내려가려고 하는데 우리 딸이 아직 추우니 조금 있다가 내려가라고 하네요.”

“사모님, 집은 아무 이상 없으니까 천천히 내려오세요.”

윗집 선생님과 선생님이셨던 친정아버지 두 분이 다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서로 사모님이라고 부르신다.

지금도 윗집 사모님께서 친정집을 살펴주시고 주민세 등 고지서가 날아오면  미리 내주시고 연락하신다. 너무 감사하다.


강릉은 겨울에는 오히려 따뜻하고 3월이 바람도 불고 정말 춥다. 꽃샘추위가 장난이 아니라 그 핑계로 한 달 정도는 어머니를 더 잡아두곤 었다. 부지런한 친정엄마가 계시면 집에 손댈 게 하나도 없었다. 식사도, 청소도 심지어 다림질까지 잘하셔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나는 정말 친정엄마가 계시는 동안은 너무 편했다. 내가 친정엄마를 우리 집에 더 계시라고 하는 것은 편함도 있지만 강릉에 가시면 혼자 계시니까 조금이라도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렇게 우리 집에서 지낸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인지가 나빠져도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고 하는 것 같다.



친정엄마육십 대 중반까지는 산악회에 가입해서 매주 등산을 다니셨다. 산악회에 50,000원씩 회비를 내면 매주 수요일에 전세버스를 대절 내서 회원들이 함께 많은 곳을 다니셨다. 지금은 어림없지만 옛날 관광버스 풍경은 처음부터 도착할 때까지 마이크로 쉬지 않고 노래 부르고 중간 통로에서 몸을 흔들며 도착할 때까지 몇 분은 자리가 필요 없었다. 친정엄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유행가 부르는 것을 좋아하셔서 라디오를 하루 종일 틀어놓고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체력도 좋으셔서 산악회 회원들 중 5등 안으로 먼저 산 정상에 오르실 정도 날렵하셨다. 설악산 대청봉, 제주도 한라산도 거뜬하게 오르셨는데 지금은 동네 뒷산에도 못 가신다. 세월이 참 야속하다.  


TV를 시청하시다가 등산하는 장면이 나오면

"젊었을 때는 말이야. 나도 등산 많이 했는데."

하시며 기억을 되짚어 보신다. 자세하게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등산 다니던 기억이 나시는 모양이다.

"엄마, 제주도 한라산 다녀오신 것 생각나지요?"

"글쎄, 갔다 온 것도 같고."


친정엄마는 심심할 틈이 없으셨다. 운동삼아 매일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셨다. 장도 보고 아울렛 옷가게를 자주 가셔서 단골손님이 되었다. 놀다가 옷도 사 오시지만 이야기보따리를 풀러 가시는 거다. 거기서 강릉 소식은 다 날라 오셨다. 우리 집에 모시고 오느라고 친정엄마 옷을 챙기는데 화려한 무늬 옷이 너무 많았다. 겨울 옷도 알록달록 무늬, 봄 여름 가을 옷도 다 무늬가 있는 화려한 옷이다. 우리 집 붙박이 장 한 짝 위아래가 꽉 찰 정도로 많다. 옷가게에서 늘 옷을 사 오시며

"세일해서 싸게 샀어."

하시며 나도 하나 주고 며느리도 하나씩 챙겨주셨다. 나는 단색을 좋아하는데 친정엄마가 사다준 옷은 화려한 무늬 옷이라 맘에 안 들지만 예쁘다고 받아 왔었다. 그래야 엄마가 좋아하시니까.


친정엄마 라떼는 정말 많다. 이제 하나씩 글로 써 보려고 한다. 아버지가 친정엄마 48세에 돌아가셔서 혼자 산 세월도 크시다. 평소에 부부애가 좋으셨던 부부 셔서 더 힘드셨을 것 같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극복하고 사셨으니 지금도 잘 견디시며 인지가 점점 좋아지실 거라고 믿는다.


"라떼말이야~"

이런 말씀을 자주 해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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