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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Nov 21. 2022

친정엄마표 우리 집 보약

조금 남은 엄마 보약


나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지인 모임에 가면

"나 아직 염색 안 해. 이거 내 머리야."

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나는 60이 넘었는데도 흰머리가 별로 없어 염색도 아직 안 한다. 물론 머리를 들추면 흰머리가 한 두 개 보이긴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유전자가 좋아서일까? 영양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일까? 나도 궁금하다. 남동생 둘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흰머리가 제법 있다. 같은 남매라도 다른 것 같다.


우리 집은 내가 맏딸이고 정확하게 2년 터울로 남동생이 두 명 있다. 막내 남동생이 의사인데 머리가 가장 먼저 희어졌다. 의사는 늘 환자를 만나야 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머리가 빨리 희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주치의처럼 생각하고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도 50대 중후반 정도인데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그런 걸 보면 의사가 가족에게는 좋지만 본인에게는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어야 하니 늘 힘들 것 같다.



친정엄마는 늘 부지런하셨다. 어느 해부터인지 가족의 보약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1년 동안 약재를 모아 말려서 다락에 쌓아두셨다. 친정집이 옛날 주택이라 안방에서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이 있다. 키가 큰 동생은 물건을 찾으러 올라갈 때마다 머리를 부딪혀서 내려올 때면 아파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락은 천정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락은 물건을 보관하기에는 너무 좋은 곳이다.


친정엄마는 약재가 많은 정선에 가서 약재를 직접 구해 오기도 하고 재래시장에 가서 사오시기도 하셨다. 가끔 가까운 산에 가서  따오기도 하고 친정엄마약 만드시는 걸 알고 시골에 사시는 친구분들이 약재를 가져다 주기도 하셨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약재만도 꽤 많다. 오가피, 인진쑥, 인동덩굴과 꽃, 하얀 민들레, 산수유, 도라지, 더덕, 홍화씨. 약쑥. 정종 쑥, 솔순, 오가피, 청출, 백출 등 종류도 많다. 거기다 검정콩, 쥐눈이 콩, 다시마 등 몸에 좋은 건 다 넣으신다. 친정엄마가 4~50가지 정도 들어간다고 하셨다.


그렇게 모아진 약재는 단골 한의원에 가지고 가면 의원에서 약재를 더 추가하여 분쇄하여 환을 지어 다. 약을 만드는데도 몇십만 원이 들지만 친정엄마는 그 일을 거의 20년 가까이하셨다. 약을 만들면 2년 정도 먹는 것 같다. 커다란 봉지에 넣어서 엄마가 드실 것만 남기고 우리 삼 남매에게 나눠주시며

"몸에 좋은 거니까 누구 주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꼭 먹어라."

당부하셨다.

우리는 그 환을 엄마 보약이라고 했다.


남동생들은 엄마가 만들어 주신 보약을 먹으면 술 마시고 다음 날 깨는 것이 확실히 다르다고 하며 열심히 먹었다. 친정엄마는 여행 가실 때도, 우리 집에 오실 때도 꼭 챙겨서 가지고 다니시며 드셨다. 보약 덕분인지 엄마는 늘 건강하셨다.  나도 엄마 보약을 먹으며 1년에 두 번씩 지어먹던 한약도 끊었다. 내 머리가 하얗게 세않은 것은 엄마 보약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보약이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 보약은 2020년을 마지막으로 만들지 못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가 보약 만드는 해인데 인지가 안 좋아지신 엄마가 우리 집에 계시니 앞으로 영영 만들 수 없는 보약이 되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엄마 보약을 보며 엄마의 은혜를 되새겨본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보약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행복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약이기에 더 귀하게 생각했다. 다시 만들 수 없는 보약이기에 더 그립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엄마 보약 대신 한약 한 제 지어 친정엄마에게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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