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Jan 18. 2023

공주라 불러주시던 아버지는 없다

별명 이야기

어릴적 사진


요즘 글 벗님이신 최명숙 작가님께서 별명 글을 시리즈로 쓰고 계시다. 별명이 다섯 개나 되는데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고 에피소드있어서 재미있었다.


작가님 글에 댓글을 썼는데 대답글로

'작가님도 공주, 예쁜 별명이네요. 공주를 글감으로 글 한 번 써 보시지요.'

라고 하셨다.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 번 써 볼까.'

마음 변하여 별명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름이 특별하지도 않고 튀는 학생도 아니어서 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에서 부르던 별명이 있었는지 생각은 안 난다. 어쩜 기억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학교 다닐 때 나는 별명이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붓벌레'라고 불렸던 것은 기억나지만 그걸 별명이라고 하긴 어렵다.


리 집은 내가 큰 딸이고 아래로 남동생이 두 살 터울로 둘이 있다. 보통 옛날에는 아들을 좋아했는데 아버지는 아들보다 나를 더 예뻐하셨다. 친정엄마가 요즘 인지가 조금 안 좋아지셨는데 가끔

"아버지가 우리 공주, 우리 공주 하며 예뻐하더니 우리 딸이 나를 잘 돌봐 주네."

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름이 있는데도 나를 '우리 공주'라고 불렀다. 친정아버지는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셨다. 묵호에서 근무하시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강원도 홍천군 산골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로 발령 나셨다. 한 달에 한번 교육청이 있는 홍천으로 선생님들 월급을 타러 직접 다녀오셨다. 교육청에 다녀오실 때마다 아버지 손에는 늘 예쁜 원피스가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아들들 옷은 안 사 오셔도 내 옷은 꼭 사 오셨다. 친정엄마 말씀을 들으면 아버지가 사 오신 원피스를 입고 나무에 올라가 옷을 찍 ㅡ찢어가지고 왔다고 한다.  늘 남동생들과 놀다 보니 나도 남자처럼 놀았던 것 같았다.


남동생들이 아버지에게

"왜 누나 옷만 사 주세요?"

라고 하면

"누나는 나중에 시집갈 거라서 사주는 거야."

라고 하셨다고 하는데 남동생들도 그렇게 샘을 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누나는 예쁜 옷을 입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늘 예쁜 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예쁜 원피스를 좋아해서 자주 입는다.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결혼하기 전까지 공주라고 불러주셨다. 집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사주셨다. 물론 내가 철없이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사 주셨다. 아버지가 공주라고 불러 주셔서 그런지 내 속에 공주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교사로 담임을 할 때도 가끔 우리 반 학생들이 '공주 선생님'이라고 했다.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들도 '공주과'라고 하셨다. 나는 안 그런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시고 공주처럼 대해 주셨다.


남편과 아들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들어올 때 현관에 서면 얼른 키를 눌러야 하는데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러면 남편이나 아들이 키를 누르고 문을 열어주면 들어간다. 아무래도 아직 내 안에 공주가 살아있나 보다.


우리 공주라고 불러주시던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신다. 내가 결혼한 해 겨울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워낙 약주를 좋아하셔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너무나 인자하신 좋으신 아버지셨다. 난 살면서 한 번도 아버지께 야단을 맞지 않았다. 가끔 엄마에게 꾸중을 듣긴 했지만 심하게 혼난 기억은 없다. 두 분 다 정말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지금 살아 계시면 친정엄마와 재미있게 사실텐데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주변에서 법 없이도 시실 분이라고 하실 정도로 착한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착한 사람은 천천히 데려가셔도 좋을 것 같은데 운명임을 믿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서인지 나는 마음이 약하다. 다른 사람하고 싸운 기억도 없다. 싸우려고 하면 눈물이 먼저 나와서 싸움이 안된다. 선생님들께서

"소녀 같으세요."

이런 말을 가끔 하셨다. 그래서 시인이 된 것 같다.


내 소원은 예쁜 할머니로 늙는 거다.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이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소녀 감성으로 시를 꾸준하게 써야겠다. 내 안에 살고 있는 공주도 꽉 붙잡고 나가지 못하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공주로 불러 주시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응원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글을 쓰고 보니 읽으시며 속이 울렁거리신 분도 있으실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작가님들. 오늘만 참고 읽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대표 기도는 늘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